아이.
어느덧 눈에 넣으면 아플 만큼 커버린 아이. 아이 보러 가야 했다. 몇 년 키우면 알아서 할 것 같았는데 그 기대만 몇 년째였다. 챙겨 줄 것도 많고, 감정적 소모도 많고, 체력적 한계도 자주 느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경단녀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하면, 아이 보는 것보다는 회사 다니는 게 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 인생이 바로 이 아이를 낳으려고 태어났다고 느낄 만큼 아이는 내게 충만한 기쁨을 줬다. 안다. 식상하다... 하루하루는 전쟁이니까 저 감성은 보통 아이가 잠들었을 때 충만히 느껴진다.
경단녀 재취업에 가장 큰 조건은 아이를 보면서 일할 수 있는가였다. 유난히 파트타임 자리가 부족한 우리나라 취업 시장에서 그런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간혹 몇 개 있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엄마가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그리고 나는 또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좀 더 내 전공을, 내 경력을, 내 역량을 활용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런 일? 파트타임으로? 커피숍에서 친구 엄마들이 웃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너무 비현실적이었나? 같이 웃고 말았다.
그래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왜일까? 이런 기분은 아이 볼 때도 좋지 않은데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과 이야기해도, 인터넷에 찾아봐도, 책을 봐도 당장은 답이 없었다. 사업도 방법인데 아는 것은 없고, 경험도 없다. 결국... 공부를 해야 될 것 같은데 난 그렇게 똑똑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무슨 공부를 다시 할 건지...
수능을 보자니 대학 졸업까지 얼추 5년이란 긴 필요했다. 석사를 하자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고, 전문 석사는 아이 보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격증이라도 따볼까 하니 그 자격증이 확실히 취업을 보장해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부동산 공부를 해볼까 하니 자금이 문제고, 블로그나 인스타를 해볼까 하니 재주도 없고 누가 알아볼 것 같아 싫었다. 뭘 해야 할까...
일단 애 보러 가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가 제일 중요했다. 고민은 차차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