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최선을 다 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루하루의 삶은 이 공부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육아, 공부, 그리고 여력이 되면 하는 집안일. 밥 하면서도, 잠 자기 전에도, 아이 재우면서도, 남편 코 고는 소리 들으면서도, 아이와 놀이공원에 가서도, 여행에 가서도, 비행기에서도, 차에서도,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공부를 했다. 내가 봐도 미친 여자 같았다.
그렇게 해서 결국 끝은 왔다.
원하던 결과였다. 자격증을 땄고, 가족들의 축하를 받았다. 너무 신기한 것은... 합격의 순간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싫었다는 것. 안다. 미친 여자가 맞다. 그토록 기다리던 결과 아닌가? 왜 나는 그 합격을 마음 깊이 거부하고 있었을까?
새로운 자격증이 주는 새로운 기회가 전혀 내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었다.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지만, 끝이 왔을 때 마냥 기쁘지 않았다. 되려, ' 경단녀 탈출하고 싶다고 가족들 모두의 지원을 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되려나?' 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진심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갈망했던 곳에 왔을 때 그걸 원하지 않는 이 해괴한 심리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자격증에 있는 게 아니었나 보다. 경단녀라는 단어가 나에게 준 불쾌한 감정은 자격증 그 자체보다는, 그걸 따려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미 풀려버린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다시 돈 버니까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예상대로 아이도 그때보다 훨씬 커주어서 나만의 일이 생기는 것이 아이와 나 피차간에 나쁘지 않은 일이 된 것도 같다. 다시 일을 하니, 스타벅스 쿠폰도 빨리 모을 수 있고, 요즘엔 커피빈 쿠폰까지 모으게 됐다.
그러나 이쯤 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경단녀라는 단어를 학을 떼고 거부했을까 싶다. 누가 아무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데, 나 혼자 경단녀라는 틀에 나를 가두고 몹시도 괴롭혔던 것 같다. 그땐 왜 그렇게 다시 무엇이 되려고 애를 썼을까? 경단녀라는 딱지가 마치 주홍글씨로 나에게 남아버릴 것처럼, 괜히 혼자 초조하고 불안했던 시간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예쁜 아이를 가지게 되는 그 순간이 너무 부러워, 누군가 '경단녀'라는 단어로 어깃장을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에 제대로 말린 나는 그 소중한 순간들을 놓쳐버린 것 셈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부분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물론,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내가 재 취업을 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재 취업을 하든 하지 않든 내가 확실히 깨달은 한 가지는, 그 길의 끝에 내가 바라던 그것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혹시라도 지금 이 순간, 아이 재우고 밤에 혼자 공부하고 있을 나와 비슷한 '경단녀'가 있다면... 그냥 위로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적었다. 그녀를 응원하고 있는 가족들과 옆에서 자라고 있을 작을 아이에게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