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시간을 가지고 건강을 회복했다. 다행이다. 아직은 젊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 듯 공부할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경력 단절이고, 공부고 건강 앞에서는 다 필요 없었다. 더 이상 경단녀란 단어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러든가 말든가. 하루하루의 삶은 이미 그와는 많이 멀어져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을 그렇게 힘을 뺏나 싶었다. 그렇게 빠른 은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랬다. 은퇴였다.
단절이 아니었다. 단절이란, 이어져있던 것이 끊긴 상태를 말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였다. 재취업을 하지 않는 이상 단절될 것이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단절이 아니라 은퇴인 거고, 그냥 "끝"인 거다. 보통 은퇴를 60-70에 하니까 그보다 훨씬 빠른 은퇴자인 셈이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희망이 생겼다고나 할까?
나는 경단녀가 아니었다. 마음먹고 은퇴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12년간 애써서 공부한 것에 대한 끝이 생각보다 빨리 왔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위한 은퇴, 나쁘지 않았다. 한 동안 공부는 마음에 두지 않고 은퇴자의 생활을 누려보기로 했다. 여유 있는 하루하루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빠르게 회복시켜 줬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이 몹쓸 생각이 일을 벌인다. 은퇴하신 분들은 퇴직 후 무얼 하시더라? 나의 베스트 프렌드인 구글에게 물어봤다. 결과는? 경단녀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했다. 다만, '실버'가 앞에 붙었고, 나라의 지원이 조금 더 많은 정도? 나의 결론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였다.
다른 점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압박이 사라졌다.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거나, 시간이 길어지면 의미가 없다거나 하는 중압감들. 어르신들께 죄송하지만, 어쨌든 나이로 치면 경단녀는 매우 젊은 은퇴자였다. 통상의 은퇴자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뭘 해도 할 수 있고, 에너지도 많았고 시간도 많았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니 좀 힘이 났다.
그렇게 다시 한번 엔진을 밟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