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게 조건이라면 진급하지 않아도 괜찮아
10대 때 훌륭하진 않았지만, 나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성실하게 공부를 했고 4년제 대학을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던 직장에 취업도 했고, 이 직장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결혼하기 전, 직장의 여자 선배로부터 여자로서 직장에서 진급을 하는 문제에 대해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여자가 진급을 하려면 3가지 중 하나의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에이 무슨 소리야..'라고 웃어넘겼지만 이야기를 듣고 내 주변에 여자 선배들을 유심히 떠올려봤다.
1번, 2번, 3번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시거나, 가까이 살면서 돌 봐주시는 경우, 또는 입주 보모를 쓰는 경우 등 특수한 경우 등이 있었지만, 그런 여건을 가진 사람들조차 사실 살짝 3번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 이기 때문에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렸다.라고 할 순 없다.
나는 당시 결혼을 약속한 현재의 남편이 있었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는 것 또한 내가 이번 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1번과 2번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나에게 해당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3번. 아이가 엄마를 엄마 취급하지 않는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지만, 직장에서는 어떤 직책과 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내가 받는 금전적 대가는 적어도 그만큼은 그 직책과 일을 충분히 잘해 달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업무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다음 문제이고, 그 업무에 대해 익히고 습득하고 수행하고, 돌발적으로 들어오는 업무들을 처리하려면 어느 정도 직장에서의 시간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하원 시간을 맞춰야 해서, 아이들이 아파서 등 나는 야근을 할 수도 일찍 출근할 수도 없었다.
즉 절대적인 시간 조차 부족했다.
야근을 안 하기 위해서는 점심시간 조차 쉴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업무시간에 티타임을 갖는 것은 거의 내 월급 3개월치를 모아 명품가방을 하나를 지르는 돈 낭비와 같은 시간낭비에 가까웠다.
퇴근이 없는 출근만 있는 삶의 연속이었다.
이때 선배들은 나에게 3번을 택하라고 속삭였다. 바로 지방에 있는 '시댁'으로 아이들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좀 가슴 아픈데.. 적응하다 보면 괜찮아져.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만나면서 아이들 보면 오히려 더 잘해주게 되고, 나중에 지들이 크면 엄마 마음을 다 이해하게 될 거야. 너도 퇴근 후에 니시 간 갖고 좋지 뭘 그래?'
그 선배의 딸은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는데 외할머니를 보고 '엄마'라고 부른다고 했다.
정작 엄마가 갔을 때는 자주 오는 손님이 온 것처럼 오면 반가워했지만, 그냥 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시간을 갖는다는 조건은 좋았으나 내배 아파 낳은 내 새끼가 언어적으로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정서적 유대감 속에서도 엄마보다는 할머니를 더 편안하게 느끼는 건 딱히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하루에 30분을 보는 한이 있어도 내 새끼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나는 완전한 3번은 아니지만(아니라고 믿고 싶다;;), 3번에 걸쳐져 있는 걸치고 싶지 않아 하는 워킹맘이다.
내가 일하는 이곳에서 나는 직장의 한 일원으로써 목표한 바가 있고, 아이 때문에 이것을 포기했다며 나의 사랑하는 아이를 원망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아이를 선택한 만큼 나도 반드시 치루 워야 할 대가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이에게 엄마가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노력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로 했다.
지금도 유치원 등 하원 버스를 타는 곳에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등 하원 장소에 나오는 아이는 우리 아이 한 명뿐이다.
아이가 매번 다른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버스 문 밖으로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사랑한다 말해주며 배웅하는 틈에서 우뚝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버스에 앉아있을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지금 당장이라고 때려치우고 아이의 등 하원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아이에게 말해준다.
"아들, 엄마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야. 엄마가 나라를 지켜야 우리 아들이 재밌게 유치원에 다닐 수 있거든. 그러니 엄마가 오늘도 못된 악당들을 혼내주고 올게. 그러니 우리 아들은 할머니랑 씩씩하게 유치원 버스 잘 타고 저녁에 엄마랑 만나자."
아이가 이런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현재의 나와, 현재의 내 환경과, 현재의 내 아이에게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해 본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직장에서 내가 원했던 직급이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다했었고, 다 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 3번의 상황이 온다면, 나는 정말 진급 따윈 하지 않아도 괜찮다.
적어도 나에겐 진급보다 내 아이의 웃음과 내 아이의 앞으로의 디딤돌이 되어줄 부모와의 애착이 백만 배는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