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뚜기 Apr 06. 2021

선배가 말해준 진급할 여자의 조건

정말 이게 조건이라면 진급하지 않아도 괜찮아

10대 때 훌륭하진 않았지만, 나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성실하게 공부를 했고 4년제 대학을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던 직장에 취업도 했고, 이 직장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결혼하기 전, 직장의 여자 선배로부터 여자로서 직장에서 진급을 하는 문제에 대해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여자가 진급을 하려면 3가지 중 하나의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1. 결혼을 하지 않는다.

2. 결혼은 했으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

3.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으나, 아이가 엄마를 엄마 취급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에이 무슨 소리야..'라고 웃어넘겼지만 이야기를 듣고 내 주변에 여자 선배들을 유심히 떠올려봤다.

1번, 2번, 3번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시거나, 가까이 살면서 돌 봐주시는 경우, 또는 입주 보모를 쓰는 경우 등 특수한 경우 등이 있었지만, 그런 여건을 가진 사람들조차 사실 살짝 3번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 이기 때문에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렸다.라고 할 순 없다.

나는 당시 결혼을 약속한 현재의 남편이 있었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는 것 또한 내가 이번 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1번과 2번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나에게 해당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3번. 아이가 엄마를 엄마 취급하지 않는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지만, 직장에서는 어떤 직책과 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내가 받는 금전적 대가는 적어도 그만큼은 그 직책과 일을 충분히 잘해 달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업무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다음 문제이고, 그 업무에 대해 익히고 습득하고 수행하고, 돌발적으로 들어오는 업무들을 처리하려면 어느 정도 직장에서의 시간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하원 시간을 맞춰야 해서, 아이들이 아파서 등 나는 야근을 할 수도 일찍 출근할 수도 없었다.

즉 절대적인 시간 조차 부족했다.

야근을 안 하기 위해서는 점심시간 조차 쉴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업무시간에 티타임을 갖는 것은 거의 내 월급 3개월치를 모아 명품가방을 하나를 지르는 돈 낭비와 같은 시간낭비에 가까웠다.


직장 출근 → 육아 출근 →  직장 출근 → 육아 출근


퇴근이 없는 출근만 있는 삶의 연속이었다.

이때 선배들은 나에게 3번을 택하라고 속삭였다. 바로 지방에 있는 '시댁'으로 아이들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좀 가슴 아픈데.. 적응하다 보면 괜찮아져.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만나면서 아이들 보면 오히려 더 잘해주게 되고, 나중에 지들이 크면 엄마 마음을 다 이해하게 될 거야. 너도 퇴근 후에 니시 간 갖고 좋지 뭘 그래?'


그 선배의 딸은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는데 외할머니를 보고 '엄마'라고 부른다고 했다.
정작 엄마가 갔을 때는 자주 오는 손님이 온 것처럼 오면 반가워했지만, 그냥 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시간을 갖는다는 조건은 좋았으나 내배 아파 낳은 내 새끼가 언어적으로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정서적 유대감 속에서도 엄마보다는 할머니를 더 편안하게 느끼는 건 딱히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내 아이는 내가 기른다.'

하루에 30분을 보는 한이 있어도 내 새끼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나는 완전한 3번은 아니지만(아니라고 믿고 싶다;;), 3번에 걸쳐져 있는 걸치고 싶지 않아 하는 워킹맘이다.


내가 일하는 이곳에서 나는 직장의 한 일원으로써 목표한 바가 있고, 아이 때문에 이것을 포기했다며 나의 사랑하는 아이를 원망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아이를 선택한 만큼 나도 반드시 치루 워야 할 대가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이에게 엄마가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노력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로 했다.


지금도 유치원 등 하원 버스를 타는 곳에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등 하원 장소에 나오는 아이는 우리 아이 한 명뿐이다.

아이가 매번 다른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버스 문 밖으로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사랑한다 말해주며 배웅하는 틈에서 우뚝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버스에 앉아있을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지금 당장이라고 때려치우고 아이의 등 하원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아이에게 말해준다.


"아들, 엄마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야. 엄마가 나라를 지켜야 우리 아들이 재밌게 유치원에 다닐 수 있거든. 그러니 엄마가 오늘도 못된 악당들을 혼내주고 올게. 그러니 우리 아들은 할머니랑 씩씩하게 유치원 버스 잘 타고 저녁에 엄마랑 만나자."


아이가 이런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현재의 나와, 현재의 내 환경과, 현재의 내 아이에게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해 본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직장에서 내가 원했던 직급이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다했었고, 다 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 3번의 상황이 온다면, 나는 정말 진급 따윈 하지 않아도 괜찮다.


적어도 나에겐 진급보다 내 아이의 웃음과 내 아이의 앞으로의 디딤돌이 되어줄 부모와의 애착이 백만 배는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

매일 아침 내가 가장 보고 싶은 모습이다. 아이가 가는 등원 버스의 뒷모습을 내가 바라봐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