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해답 좀 줘요. 제발.
* 믿을 수 없겠지만,
거의 모든 에피소드는
99% 실화임을 알려드립니다.
때는 바야흐로 7~8년 전,
조카들이 중학생이던 시절.
난 그즈음 미운 나이의
연년생을 키울 때라
힘들다는 핑계로
종종 큰언니네 집에 가서
며칠씩 있다 오곤 했다.
항시 밥만큼은
진심이었던 언니에게는,
식사의 3대 원칙이 있었다.
평일에는 학교며 학원 때문에
도통 얼굴 보기 힘든
조카들과 드디어 마주한
주말 아침 식사 시간.
그리고...
언니의 3대 원칙 중
구성진 자락이 울려 퍼지고.
“선생님이 어쩌고, 성적이 저쩌고...”
흥겨운 가락이 메아리치니.
“아오! 쫌!!”
금세 하나둘 자리를 이탈하면
언니와 나,
저지레 하는 주니어 1, 2만 남게 된다.
나 : “애들한테 격려와 위로를 해줘야지!
왜 잔소리만 해!”
언니 : “너는 안 그러나 보자.”
나 : “흥, 난 절대 안 그러지.”
나는 언니를 반면교사 삼아
밥상머리 앞에서는 일절
듣기 싫은 소리는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아덜씨도 간만에
일찍 퇴근한 평일 저녁.
온 가족이 저녁 시간 참석을 알렸다.
식탁 앞에서 깨작거리며
핸드폰만 보는 주니어 1.
"자, 이제 그만 핸드폰을 내려 두고,
근황 토크를 해볼까." 하니,
주니어 2가 말한다.
“학교에서 누가 뭐를 했고,
학원에서 선생님이 웃겼고,
오늘 급식 메뉴가 이랬는데 맛있었고.”
주니어 1이 말한다.
“침묵 게임 시작.”
한때는 조잘조잘
귀에 피가 나게 이야기를 하더니,
갈수록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횟수가 잦아지고,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연락하느라
가족과의 소통은 적어지는
주니어 1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꾹꾹 눌러 삼키고
안티에이징 웃음을
선보이며 말했다.
나 : “학교나 학원에서는 별문제 없지?”
주니어 1 : “왜? 문제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 : “아니, 참, 그런데 숙제도 약속인데
꼬박꼬박 미루지 말고 잘하고,
학원 선생님이 상담 때 말씀하시더라.
네가 어렵다고
그 부분만 숙제를 자꾸 빼먹으니
실력이 정체되는 것 같다고 하시...”
주니어 1 : “내가 약속한 적 없는데?”
나 : “뭬야?
네가 학원 다닌다 했으면
숙제하는 건 약속이지!”
주니어 1 : “그냥 나 학원 좀 쉴게.”
나 : “그래! 관두면 돈도 굳고 얼마나 좋아.
대신, 네가 선택한 거야.
선택에 대한 책임은
이제 네가 져야 해.
너는 마냥 어린애가 아니라
네가 말하는 사춘기니까.
공부 못 한다고 울지도 말고,
좋은 학교 못 간다고
슬퍼하지도 말고
나중에 어른 돼서
네가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없다고 푸념하지도 마.”
주니어 1 : “하.. 알았어, 다닐게.”
반찬은 먹는 둥 마는 둥,
밥만 입이 미어지게 넣던
주니어 1이 자리를 뜨고,
본인 몫의 고기를 다 드신
주니어 2가 자리를 뜨고 나니.
식탁에 남은 사람은 나와..
입맛이 없다면서도
쉬지 않고
그릇을 비워내는 아덜씨 뿐.
정의 : 상대방과 함께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여 두는 것.
의문 1.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내주는 막대한 분량의 숙제를 약속의 범주에 둘 수 있나?
의문 2. 주니어 1의 말대로 숙제 약속에 응하지 않았다면 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학원을 가도 되고,
가지 않아도 되지만.
가지 않으면
'공부 못 함. 시험 망침. 성적 엉망.
내신 불리. 수능 망함.
원하는 대학 입학 실패. 진로 난관.
낮은 연봉. 불안한 중년. 노후 대책 전무.'
"자. 그러니 선택해.
정말 학원은 안 가도 돼.
그리고 책임은
네. 가. 지. 는. 거. 야."
의문 1. 답이 정해진 선택지를 들이밀며
겨우 10대인 아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 모습이 맞는 건가?
10대의 일탈이 어른이 되었을 때,
체념을 넘어 해탈이 될까 봐.
의문 2. 일탈과 해탈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나도 안다.
그 시기,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울며 집을 뛰쳐나간 경험이 있기에.
하지만,
공부를 관두고 꿈만 좇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 힘든 길이
될 거란 걸 알아버린
어른이 되었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유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성적이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입시 현실에
내던져진 아이가 짠하면서도,
물려줄 재산이 없는 우리로서는
아이가 부모라는
보호막이 없을 때도
견뎌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선택이 끝난 선택지만
자꾸 내밀 수밖에 없는 내가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