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조건
심리학 수업 중 한 상담사 선생님이 질문했습니다.
"공감을 해 주고 싶은데, 청소년들은 상담에 와서 무슨 말을 안 해서 너무 힘듭니다. 부모님이 이혼했는데도 자기는 힘든 게 없어서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하네요. 정말 상담사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공감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공감을 잘 해 줄 수 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특히 공감해 주어야 하는 위치, 즉 부모나 선생님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바로 답해주십니다.
"부모님이 이혼하는 등 트라우마를 겪은 청소년은 대개 힘든 마음을 잊으려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 쉽습니다. 상황을 인정하고 감정을 드러내면 더 고통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빨리 공감해주고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것은 상담자로서의 욕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말하기 싫은 청소년의 심정을 먼저 헤아려주는 것이 진정한 공감입니다."
공감 전문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윌리엄 밀러 박사는 공감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짚었다고 합니다.
첫째,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인지하는 것, 둘째, 내가 모든 관심의 중심이 되지 않고자 하는 의지, 셋째 나와 많이 다른 사람들일수록 더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1)
그 중 교수님이 언급하신 것은 둘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해 주는 사람이 안타까운 마음에, 또는 자신이 마음 편해지기 위해 공감 받는 사람이 빨리 마음을 열기를 원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누구나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그 성과로 인해 내가 뿌듯해지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감은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주는 사람을 위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기심리학의 대가 Kohut은 자기애가 변형되어 사용되는 자아의 능력으로 공감(empathy)를 들었습니다. 공감을 통해 타인의 감정과 생각들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감은 타인의 심리정보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타인을 자기의 연장으로 경험하기에 가능합니다. 2)
Kohut은 공감의 기원을 초기 어머니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와 자신을 한 몸이라고 느낍니다. 아직 자아와 타인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생각과 감정이 곧 아기의 것이 되는 현상을 Kohut은 일차적 공감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다른 대상관계이론가 Fairbairn은 '일차적 동일시'라고 했고, Winnicott은 '일차 모성 몰입'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융합된 경험에서 비롯된 공감방식은 타인을 한 눈에 척 경험하는 것이지만, 상담가의 경우 내담자의 심리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지속적으로 공감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2)
또한 모든 경우에 공감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 않기도 합니다. 성숙한 성인 또는 상담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황에 따라 공감적, 비공감적 방식을 적절히 적용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부모로서, 또는 특정한 직업적 위치에서 공감이 필요하지만 잘 공감해 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분이 계신다면 첫째, 밀러 박사가 제시한 공감의 요건에 맞게 공감해 주고 계신지, 둘째 매사에 너무 공감만 해주려고 하신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공감을 해 줄 때에는 '내'가 사건의 중심에 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공감해 주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공감이 아닐테니까요.
참고한 책
1. 나종호,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공감을 넘어 고통의 나눔으로>, Pp 127-128, 2022, 아몬드
2. 최영민, 쉽게 쓴 자기 심리학, 양극성 자기, Pp94-96, 2011,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