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 때 후앙 카레노 데 미란다(Juan Carreño de Miranda, 1614 -1685)라는 화가는 유지니아 마르티네즈 발레호(Eugenia Martinez Vallejo)라는 비만 아동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1674년, 스페인 어느 작은 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한 소녀가 태어났습니다. 출생 시 체중은 알 수 없으나 생후 1년 경 25kg, 만 6세경 70kg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국왕 카를로스 2세는 소문을 듣고 궁정으로 소녀를 불러서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볼 때 유지니아는 염색체 이상 질환인 프레이더 윌리 (Prader willi ) 증후군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프레이더 윌리 증후군은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염색체의 부분결실로 인해 출생 시 심한 근력저하, 비만, 저신장, 생식샘 저하증, 지능저하 등이 나타나는 복합 질환입니다. 유지니아는 왜소증이나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처럼 호기심의 대상으로 특별한 날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유지니아는 25세까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The Monster-dressed, Juan Carreno De Miranda 1680 Prado Museum 왕은 소녀의 벗은 몸도 한 편 더 그리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동학대이자 심각한 인권 침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The Monster- nude 그러나 중세시대에는 비만이 미덕이기도 했습니다.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그림을 보면 술의 신 바커스를 그린 그림도, 삼미신을 그린 그림도 대체로 비만체형에 가깝게 그렸습니다. 음식이 귀하던 시절 통통하고 큰 체형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루벤스, ‘바쿠스’, 1638~1640, 성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루벤스의 바커스를 잘 살펴보면 목의 접히는 부위에는 비만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검은 피부병변인 흑색가시세포(Acanthosis Nigricans)가 보입니다. 흑색가시세포증은 겨드랑이처럼 접히는 부위에 어두운 색소 침착이 생기고 피부가 두꺼워지며 주름이 생기는 병변입니다. 이것은 피부질환이라기보다는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체중을 조절해야 나아집니다.
현대 사회의 환경 변화를 보면 대개의 가공식품은 고열량, 지방과 단순당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포도당은 섭취하면 식욕을 조절하고 음식 섭취를 감소시키는 작용이 있으나 과당은 이러한 기능이 없어 비만의 위험도를 증가시킵니다. 통곡물보다 백미를 많이 먹는 경우에도 비만의 위험도가 증가합니다.
또 현대인은 대체로 좌식 생활을 하며,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량이 늘고 체육 활동은 줄어듭니다. 방과 후에는 학원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고, 쉴 때에는 주로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므로 신체 활동에 할애할 시간은 더욱 줄어듭니다.
성인뿐 아니라 소아청소년 역시 수면이 부족합니다. 만성 수면 부족은 렙틴이라는 호르몬 수치를 감소시키고 그렐린을 증가시켜 공복감과 식욕이 증가합니다. 또 교감신경 활성도를 변화시켜 인슐린 감수성과 포도당 내성을 감소시킵니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유전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Fat Mass Obesity 유전자는 소아의 체지방과 연관이 있습니다. 또 앞서 소개한 유지니아 경우 프레이더 윌리 증후군은 유전자 단위에서 채워지지 않는 식욕과 음식을 갈망하게 만드는 행동이 일어납니다.
소아청소년 비만이 중요한 이유는 대사증후군, 2형 당뇨병, 고혈압, 이상 지질혈증, 비알코올 지방간질환, 동맥경화, 관절질환, 정신, 심리적 문제 등 동반 질환이 발생할 수 있고, 성인 비만으로 옮겨갈 수 있으며 성인 비만 시 치명적인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수 있고, 비만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고도비만 청소년은 우울증 발생이 높아 체중관리를 위해서는 정서적 문제를 평가하고 도움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스페인 왕실에서 고도비만인 유지니아의 초상화를 그리고 특별한 날에 구경거리로 삼았다는 것은 비만을 단순히 외모의 문제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만은 사실 건강의 문제입니다. 체중을 조절해야 하는 것은 남들 보기에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비만으로 인한 성인 질환을 막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비만을 외모의 문제로 국한시키면 유지니아에게 했던 것처럼 상대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관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비만은 루벤스가 살았던 시대처럼 더 이상 미덕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림 속 화가의 시선에서 따뜻한 존중과 사랑의 시선이 필요함을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