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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Apr 17. 2024

사춘기, 불안과 호기심의 이중주

신체의 변화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

 -변화하는 몸


에드바르드 뭉크, <사춘기>,1894-95, 오슬로 국립 미술관


침대 한가운데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소녀는 옷을 벗은 채로, 눈망울은 겁에 질린 듯 커져 있고 침대 시트에 혈흔이 묻어 있습니다. 그녀의 뒤로는 소녀보다 훨씬 큰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는 초경을 막 시작한 소녀의 공포와 불안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커다란 악령이 소녀를 잡아먹을 듯한 형상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겐 <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그림 중 <사춘기>입니다.      

뭉크는 19세기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화가로,  어린 시절 결핵으로 어머니와 누나를 차례로 잃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의지하던 두 여인을 일찌감치 잃은 뭉크의 사춘기는 상실의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융통성 없고 엄격한 아버지의 양육 방식은 가뜩이나 예민한 뭉크를 불안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뭉크처럼 섬세하고 불안도가 높은 아이에게 엄격한 훈육은 위기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킵니다. 소녀의 등뒤로 보이는 시커먼 그림자는 사춘기에 대한 뭉크 자신의 불안과 공포인지도 모릅니다.      


초경을 시작한 이 소녀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인류가 수렵 채집을 했던 선사 시대에는 초경 나이가 9-13세 정도였는데, 평균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초경도 일찍 했다고 추측합니다. 한 곳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농경 사회부터 중세까지는 12-15세 정도로 늦어졌고, 근대로 들어와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면서 15-16세까지 더욱 늦어졌다가 20세기 후반에 다시 12-13세가 되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초경 나이는 여성의 가임기간과 연결되기 때문에 문명과 과학의 발달, 환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뭉크의 <사춘기> 속 소녀는 지금 초경을 시작하는 12세 아이들보다 3-4세 정도 많은,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사이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수잔 발라동, <버려진 인형>, 1921,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D.C.

목욕을 마친 소녀가 자신의 벗은 몸을 거울을 통해 보고 있고, 어머니처럼 보이는 여성이 소녀의 몸을 닦아주고 있습니다. 소녀는 분홍색 리본을 머리에 달고 있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인형도 같은 스타일의 리본을 하고 있네요. 이 그림은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1865-1938)의 <버려진 인형>입니다. 가슴이 볼록해진 소녀가 사춘기를 바라보는 마음은 공포와 불안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것일까요?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소녀는 한때 애지중지했을 리본 달린 인형은 완전히 잊은 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몰두해 있습니다.          


수잔 발라동의 본명은 마리 클레멘틴 발라동으로, 아버지 없는 사생아로 태어나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세탁부였고 수잔은 자유분방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어머니는 제멋대로인 그녀를 기숙학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서커스에 입단하여 곡예사로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들의 골목인 몽마르트르에서 자란 그녀는 르누아르의 모델이 되어 일하며 동시에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그녀를 화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저 모델이기를 원했습니다. 수잔은 가난한 환경,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여성화가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계속 그립니다.


르누아르와 헤어지고 난 뒤, 로트렉과 드가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수잔은 마침내 프랑스 국립 미술협회에도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동시대의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나 메리 카사트에 비해 그녀는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자유롭게 그렸습니다. 발라동이 그린 여성의 누드는 남성의 눈으로 본 에로틱한 이미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몸이었습니다. 그녀의 당당한 관점은 벗은 몸을 가리지 않고 거울로 들여다보는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아의 사춘기 시작은 가슴의 발달입니다. 8세 이전에 가슴이 약간 도드라져 보일 때는 향후 3-6개월간 잘 관찰해야 하며, 급격히 진행하는 경우는 중추성 성조숙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초경은 키가 급격히 크고 나서 대개 6개월 이내에 일어납니다. 수잔 발라동의 그림 속 소녀는 가슴이 충분히 발달한 상태로, 초경을 시작했거나 곧 시작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뭉크의 그림 중 남자아이들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뭉크의 후원자였던 린데 박사의 네 아들을 그린 <린데 박사의 네 아들>입니다. 막스 린데 박사(Dr. Max Linde, 1862~1940)는 안과전문의이자 미술품 수집가, 후원가였습니다. 린데 박사는 로댕의 작품을 상당수 보유할 정도로 미술에 조예가 깊은 수집가였습니다. 1902년 뭉크는 린데 박사의 요청으로 그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가족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린데 박사의 네 아들>은 그중 한 작품입니다. 뭉크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대신, 밖에서 놀다가 막 집에 들어와 아이들이 손님을 마주하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네 아이의 표정과 몸짓이 모두 다르다는 점입니다.     

   

에드바르드 뭉크, <린데 박사의 네 아들>, 1903, 뤼베크 미술사 박물관


왼쪽 벽에 기댄 첫째 아들은 가장 구석에 삐딱하게 서 있지만 막내 아이가 자신에게 기대는 것을 허락해 줍니다. 삐딱함과 의젓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아이는 사춘기의 전형적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자를 들고 있는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만큼 삐딱하지는 않으나 홀로 모자를 들고 있고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을 보아 외모에 한참 신경 쓰는 사춘기 초입인 것 같습니다. 셋째 아이는 배꼽 손을 하고 있는데 보통 저학년이나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손한 자세입니다. 막내는 처음 보는 손님이 두려운 듯 형에게 바싹 몸을 기대어 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생각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의 사춘기는 다시 선사시대 수준으로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고기를 많이 먹는 식습관, 환경 호르몬, 심리사회적 요인 등의 영향이 제기되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것은 비만과의 연관성입니다.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쉬는 시간마저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면서 신체 활동이 적어지면 체중이 늘어나게 되고, 비만은 에스트로겐에 영향을 주어 초경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평균 수명만 놓고 보자면 초경 나이가 앞당겨질 이유가 없지만, 환경과 생활양식의 변화가 초경을 앞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비만한 아동이 아니어도 체중이 출생주수에 비해 작았던 경우, 어머니가 초경을 일찍 시작한 경우에도 성조숙증이 나타날 확률이 높습니다.     


사춘기를 바라보는 뭉크의 시각은 어두운 그림자 속 불안이었고 수잔 발라동의 시각은 거침없는 호기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불안과 호기심이 모두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춘기가 점점 빨라지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더 미숙한 나이에 불안과 호기심을 겪어야 합니다. 뭉크의 <사춘기> 속 소녀처럼 홀로 외롭게 불안과 싸우지 않도록, 수잔 발라동의 <버려진 인형> 속 아이처럼 섣부른 호기심에 방황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의 마음을 미리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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