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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Apr 10. 2024

왜소증을 그린 그림들

성장호르몬 치료와 키 우월주의(heightism)

안녕하세요? 오늘 다룰 주제는 작은 키, 저신장(short stature)입니다.

소아청소년과에서 작은 키는 기준이 있습니다. 키가 같은 연령, 같은 성별 어린이의 평균 신장보다 3백분위수 또는 -2 표준편차(SD) 미만어야 합니다. 같은 학년이어도 성별, 생일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중 성장호르몬 분비가 정상이고 그 외 전신적, 내분비적, 영양 또는 염색체 이상 등 특별한 저신장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특발성 저신장이라고 합니다. 특발성 저신장 중 가장 많은 원인은 체질성 성장지연(유년기에는 키가 작지만 사춘기 이후 따라잡기 성장을 해서 평균키에 도달)과 가족성 저신장(부모와 아이가 모두 키가 작은 경우)으로 이는 병적인 원인이 아닙니다. 1)


왜소증(dwarfism)이라는 용어는 사전에 찾아보면 성인 최종키가 147cm 이하인 경우라고 되어 있지만, 저신장과 혼용되어 쓰이며 역사적으로는 연골무형성증(Achondroplasia) 가리키는 용어로 많이 쓰여 왔습니다. 연골무형성증은 머리가 약간 크면서 이마가 돌출되어 있고, 팔이 짧으며 다리는 휘어 있어 신체 비율이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연골무형성증의 모습, TLC's 7 Little Johnstons Stars Family with Achondroplasia Dwarfism (people.com)


원인은 다양해도 대개의 저신장은 인지, 지능, 사회적 측면에서 장애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소증인 사람들은 오랜 기간 사회적 편견 속에 차별을 받았습니다. 특히 중세시대에는 이들을 마치 신기한 동물처럼 생각했고, 동물보다 하나 위의 계급정도로 인식했다고도 합니다. 15-18세기 사이 서양 명화를 보면 왜소증을 다룬 작품이 많은데, 이들은 대개 궁정이나 귀족에게 속하여 동물을 사육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시종으로 살았습니다. 안토니스 모르의 <그랑벨 추기경의 난쟁이>를 보면 제목부터 사람을 추기경의 소유물인 것처럼 표현했고, 그는 개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음을 유할 수 있습니다. 경직된 표정과 고단한 삶의 이미지가 얼굴에서 드러납니다. 체격이 크고 추기경의 문양까지 목에 두른 개와는 대조적입니다. 3)


안토니스 모르, <그랑벨 추기경의 난쟁이>, 루브르 박물관


궁정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Velazquez, 1599-1660)는 왜소증 시종들을 자주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시녀들>에는 2명의 왜소증 시종이 나옵니다. 한 명은 마리아 바르볼라(Maria Barbola)연골무형성증의 외모를 하고 있습니다. 당당한 시선과 표정이 그녀의 작은 키와 대비됩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왕비의 시종으로 스페인까지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우측에는 발로 개를 깨우는 니콜라스(Nicolas Pertusato)라는 이탈리아 시종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역시 왜소증 아동으로 추정됩니다.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프라도미술관 (좌측의 벨라스케스와 우측의 검은 머리 시종은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왜 키 작은 사람들을 독특한 시선으로 그렸을까요?

그는 궁정화가였지만 화가라는 신분을 벗어나 귀족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순수혈통의 귀족만 가입할 수 있는 산티아고 기사단에 들어가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습니다. 수많은 좌절 끝에 그는 죽기 1년 전 교황의 허가를 받아 산티아고 기사단의 일원이 됩니다. 그런데 그의 행보와는 달리, 벨라스케스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희화화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자신의 그림에 등장시킵니다.


벨라스케스,<난쟁이와 함께 있는 카를로스 왕자>, 1631, 보스턴 미술관

(궁정에 팔려온 왜소증 장애 아동은 때론 왕자나 공주가 잘못했을 매를 대신 맞기도 했다고 한다. )

벨라스케스, <궁정 난쟁이 세바스찬 데 모라의 초상>,1645년, 프라도 미술관

(모델을 앉히고 주먹을 쥐게 하여 신체 특징이 최대한 덜 드러나게 하고 시선을 얼굴에 집중시킨 느낌이다.)



심리학에는 표상(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에는 개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특정 이미지로 머릿속에 각인되는데,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표상, 타인의 이미지를 대상표상이라고 합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왜소증 사람들은 비록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 존재했지만, 자기 표상이 건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당당한 시선과 진지한 표정은 삶을 무조건 긍정 또는 부정으로 보지 않고 통합된 깨달음에 이른 것 같습니다.





출생 시 신생아의 키는 50cm 정도이고, 생후 2년 동안, 그리고 사춘기 시작부터 15-16세 시기에 급속 성장을 합니다. 이 두 시기를 제외하면 1년에 5-6cm 정도 성장하는데, 1년에 4cm도 자라지 않는다면 병적인 성장부진을 의심합니다. 1)


현대 의학으로 키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를 합니다. 성장호르몬은 성장호르몬 결핍이나 염색체 이상 등에는 치료를 하도록 되어 있고 건강보험도 적용됩니다. 뇌종양이나 뇌손상에 의해 생긴 성장호르몬 결핍 시 대개 5세 경 치료를 시작하고 10세를 넘지 않도록 합니다. 사춘기 때까지 주사를 맞는데, 치료의 효과는 첫해 8-9cm 정도이고 이후 서서히 감소됩니다. 2) 연골무형성증의 경우 성장호르몬 치료의 효과에 논란이 있고, 일리자로프 수술이라고 불리는 사지 연장술로 휜 다리 교정 및 사지의 길이를 수술로 연장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1)


성장호르몬 주사, 약학정보원


병적으로 작은 키를 치료하는 경우는 크게 2가지인데 첫째는 뇌종양이나 뇌손상등으로 생긴 성장호르몬 결핍이고, 두 번째는 성장호르몬 결핍은 없으나 병적인 원인으로 키가 작은 경우입니다. 터너증후군이나 프레더-윌리증후군 같은 염색체 이상, 만성신부전으로 인한 저신장, 부당경량아(출생체중이나 신장이 재태연령 평균보다 2SD 미만 또는 3백분위수 미만)등입니다. 국내에서 위의 경우는 건강보험 적용이 됩니다. 2)


그러나 특발성 저신장, 또는 연령 대비 3백분위수 미만이 아님에도 부모의 기대치보다 예상키가 작아 성장호르몬을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발성 저신장 아동에게 2-3년간 성장호르몬을 투여했을 때 최종키는 예측키에 비해 5-6 cm 정도 더 큰다고 보고되기도 하지만, 개인차가 많아 논란이 있습니다.2) 2003년 미국 FDA에서는 병적인 원인이 없이 또래 같은 성별 아동에 비해 키가 -2.25 SD 이하인 경우, 성인 최종 예측키가 남아 160cm, 여아 150cm 미만일 때에만 치료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치료 시작 시 연령이 어릴수록, 저신장 정도가 심할수록, 치료기간이 길수록, 성장호르몬 치료 용량이 많을수록 치료효과가 좋은 편입니다. 2)


성장호르몬은 펜 타입의 주사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복부, 둔부, 허벅지 바깥쪽, 상완 등 피하 주사가 가능한 곳에 투여하며, 보통 일요일 하루는 쉽니다. 1주일에 1회 맞는 제형이 있기는 하지만 매일 맞는 것이 우리 몸의 생리적 특성에 더 적합하여 많이 사용됩니다. 대개 2년 동안 맞게 되며 첫 1년보다 2년 째 부터는 성장폭이 둔화됩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1년에 1000-1200만 원 정도 드는데, 약가자체가 비싼 편입니다.


아이는 큰 키에 대한 열망이 없는데 부모님의 요구로 떠밀려서 맞게 되는 경우 자신이 환자가 아님에도 매일 주사를 맞는 것이 힘들어 중단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큰 비용에 비해 첫해부터 성장폭이 낮으면 중도포기하기도 합니다. 성장호르몬은 부작용이 적어 비교적 안전한 약이나, 드물게 두통을 동반하는 두개내압 항진, 몸이 붓는 부종 증세, 갑상선 기능저하, 혈압과 혈당 증가, 수면 무호흡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주기적으로 혈액 검사와 증상을 모니터링합니다. 2)



어느 날 진료실에 고3 남아가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습니다. 아이는 키가 160cm로 성장판 검사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고3이면 17-18세이므로 이미 성장판이 닫혔을 시기고, 성장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기에도 늦은 나이라 저는 굳이 검사가 필요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굽히지 않았고, 엄마는 의미 없는 검사라도 해 주었으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성장 관련 검사를 하는 아이들은 대개 초등학생입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중에서도 가끔 검사를 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늦게 클 줄 알고 기다렸다거나 여학생 중에는 스튜어디스를 꼭 하고 싶다는 경우, 그리고 남학생은 지금과 같이 병적인 원인이 아닌 특발성 저신장인데 큰 체격을 선호하는 경우입니다. 아이는 어릴 때 성장호르몬 치료가 있다는 것을 몰랐고, 아이는 왜 제때 치료를 해 주지 않았냐고 엄마한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왼쪽 손을 X-ray 촬영해서 뼈 나이를 측정해 주었는데, 대개 해석에 시간이 걸리지만 이 아이는 성장이 완료된 나이이므로 바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면 정상 성장패턴이 아니니 오히려 문제인데, 다행히 성장판은 잘 닫혀 있습니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과거에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 있지만, 학생은 사실 건강하기 때문에 성장호르몬 치료의 대상 아니었을 겁니다. 또 맞았어도 지금보다 얼마나 컸을지 확신할 수가 없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키는 건강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대신 어머님은 학생을 건강하게 키우셨고 본인도 문제없이 성장했습니다."

저는 얘기하면서도 아이가 완강해서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화를 가라앉혔습니다. '그렇군요. 그런 생각은 못 해 봤는데...' 하는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엄마는 만족하며 진료실을 나갔습니다.


그 이후로도 키를 걱정하는 수많은 부모님들을 만났지만, 아이는 별 생각이 없는데 부모가 아이의 키를 키우고 싶어 하는 경우, 또는 아이가 원하지만 성인 예측키가 남아 160cm, 여아 150cm 이상인데도 치료를 원하는 경우 무조건 성장호르몬 치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해 볼 때, 키를 더 크게 하기 위해 특발성 저신장 아동에게 성장호르몬 치료가 남용되어서는 안 되며, 극심한 저신장, 환자나 부모가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 성장 기대 정도 등을 고려하여 치료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벨라스케스는 평생 귀족이 되고 싶어 했고 당시 스페인에서 화가는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지만, 그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인 화가입니다. 우리는 그가 어떤 신분이었든 그의 그림을 사랑하고 즐기듯, 키를 포함한 외모는 사람의 한 측면일 뿐 인간의 우월이나 업적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에 취약한 뇌를 가진 인간의 특성상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것뿐입니다.




언젠가 딸아이의 수영 강습을 다닐 때 보았던 한 남자아이가 생각납니다. 연골무형성증의 전형적인 외모를 한 남자아이였습니다. 수영도 잘하고 혼자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으니 7-8세 정도 되어 보였는데, 다른 아이들은 '넌 4살이냐? 왜 이렇게 작아?'라고 하면서 놀렸습니다. 아이의 표정은 슬펐고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었습니다.


벨라스케스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수 백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우리의 편견은 그대로라는 사실이 슬픕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키 우월주의(heightism)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Tip!

우리 아이, 키가 잘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

어린이의 키를 매년 같은 달에 측정해서 5-6cm 자란다면 정상 성장입니다. (병원 수첩이나 3월의 학교 검진 결과지를 보관하시면 좋습니다.) 키가 작은 것 같아도 1년 사이에 이만큼은 큽니다. 만약 1년에 4cm 미만으로 큰다면 성장클리닉을 방문해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세요.


커버이미지: 벨라스케스, <발레카스의 소년> 프라도미술관

왕의 사냥에 동행했을 시종이 잠시 언덕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 앉은 자세로 그려 작은 키가 덜 돋보이고, 표정과 얼굴 각도는 모델처럼 세련되어 보인다. 키 작은 소년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참고문헌


1.안효섭,신희영.홍창의소아과학.12판.미래엔,2020.

2.Kee-Hyong Lee, MD. Growth Hormone Therapy in Short Stature Children. J Korean Med Assoc 2008; 51(9): 849 - 855.

3. 박광혁,미술관에 간 의학자, 어바웃어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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