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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눈썹은 어디 갔을까

다 빈치의 모나리자

by sweet little kitty

도둑맞은 초상화


1995년 여름, 모나리자를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합니다. 방학동안 학교에서 인솔해서 간 어학 연수와 유럽 여행이었습니다. 현지 가이드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딱 세 점의 작품을 보여주었지요. 모나리자, 니케 여신상, 밀로의 비너스였습니다. 그런데 드농관의 초입을 차지하고 있는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본 순간,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살짝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리자는 마음 속에 그려왔던 웅장한 작품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 53x77cm, 루브르 박물관


그래도 그 때는 지금처럼 관광객이 많지는 않아서 여유있게 모나리자를 볼 수는 있었습니다. 요즘 루브르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려면, 사람들 뒤통수부터 보아야 하고, 인파 속에 소매치기도 걱정해야 하지요. 하지만 폭 53cm, 길이 77cm로 유명세에 비해 작은 그림이라는 점은 30년 전과 같습니다. 생각보다 작은 작품 모나리자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911년 8월 22일, 루브르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졌습니다. 2년이 지나 잡힌 범인은 루브르의 보안용 강화유리를 설치할 때 참여했던 기술자 ‘빈센조 페루자(Vincenzo Perugia)’였습니다. 얼마 전 루브르에서 작업을 마쳤던 페루자는 직원용 출입구와 동선 등 박물관 구조를 잘 알았고, 루브르에 몰래 숨어 들어갔다가 모나리자를 겉옷으로 감싼 뒤 들고 빠져나왔습니다. 휴관일이라 감시가 느슨했던 루브르는 페루자의 대담한 범행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페루자는 중형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페루자는 ‘나폴레옹이 훔쳐간 조국의 그림을 되찾아오려고 했다’는 변명으로 이탈리아 여론을 단숨에 자기편으로 만들었습니다.


강화유리로 덮여 있는 모나리자, 모나리자를 보려면 관광객의 뒤통수부터 보아야 한다.

그런데 페루자의 주장과 달리, 모나리자는 약탈 문화재가 아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1650년 프랑수아 1세의 부름을 받고 프랑스로 갈 때 가져간 것이지요. 모나리자를 좋아했던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의 3년 치 봉급에 가까운 거금을 지불하고 모나리자를 사들였습니다. 프랑스로서는 억울한 누명이었습니다.


사실 루브르 박물관에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서 약탈해 온 그림이 따로 있습니다. 루브르에서 가장 큰 그림으로 모나리자와 같은 방에 전시된 <가나의 결혼식>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의 기적을 표현한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수도원의 벽면을 장식하는 대작이었습니다. 그러나 페루자는 가나의 결혼식을 절대로 훔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림을 들고나가려면 일단 작아야 했을 테니까요. 모나리자는 작아서 훔치기 쉬웠지만 도난 당한 이후로 훨씬 더 유명해졌고, 몸값은 조 단위로 움직이는 미술계의 블록버스터 되었습니다.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자리, 1911


모나리자의 눈썹은 어디 갔을까


그런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처럼, 모나리자 그림에서도 사라진 신체 부위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눈썹’입니다.


눈썹이 왜 없을까 살펴보니, 당시 여성들이 눈썹을 뽑는 것이 유행이었다고도 하고, 처음에는 있었는데 지워졌을 수도 있습니다. 다 빈치가 사용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스푸마토란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으로, 사물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리지 않고 명암의 대비를 통해 표현하는 르네상스 미술의 기법입니다. 모나리자의 눈과 입꼬리도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려졌기에 은근한 미소가 매력이지요. 다 보여주면 재미없다는 사실을 다 빈치는 일찌감치 간파한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가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기에 의학적 분석도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력한 것은 갑상샘 기능저하증으로 인한 눈썹 탈모입니다.

갑상샘은 목의 앞쪽에 존재하는 나비 모양의 기관입니다. 크기는 3x5cm 무게는 20그램 정도로 아주 작습니다. 갑상샘에서 분비되는 갑상샘 호르몬은 우리 몸의 대사에 관여하기 때문에 적게 분비되거나 기능을 못하면 사람이 전체적으로 가라앉습니다. 피부가 건조해지며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눈썹은 가장자리부터 빠지게 됩니다. 손과 얼굴이 붓고, 표정은 차분하면서도 약간 우울해 보입니다. 내과 질환인데 우울해 보이는 것이 함정입니다. 많이 먹지 않았는데 체중이 증가해 억울한 질환이기도 합니다.


모나리자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이 약간 부어있고 눈썹이 없으며 차분하고 가라앉아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어 갑상샘 기능저하증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모나리자를 갑상샘 기능저하로 보는 학자들은 초상화의 모델인 리자부인이 출산한 직후였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리자 델 조콘도(Lisa del Giocondo)는 농장을 소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 부유한 직물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와 결혼했습니다. 부부는 3남 2녀를 두었는데, 그중 차남인 안드레아가 1502년 12월생입니다. 그렇다면 다 빈치가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1503년 초는 리자 부인이 안드레아를 출산한 직후였을 것입니다.

임신 중에는 체중과 대사량이 늘어나 평소보다 갑상샘 호르몬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 호르몬의 재료는 요오드인데,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음식으로 반드시 섭취해야 하고요. 요오드는 미역, 다시마 같은 해산물에 주로 많습니다. 그런데 피렌체는 바닷가에서 80km 정도 떨어진 내륙 지방으로, 요오드가 포함된 해산물을 먹기 어려웠습니다. 유럽인들은 원래 해조류를 잘 먹지 않았고, 요오드가 포함된 신선한 해산물은 부유한 가정에서도 연회 때나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리자 부인은 임신 때부터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갑상샘 기능저하를 앓았을 수도 있고, 여기에 더해서 산후 갑상샘염을 앓았을 수도 있습니다. 산후 갑상샘염은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임신 중 억제되었던 면역이 출산 후 갑상샘을 공격하면서 발생합니다. 처음에는 갑상샘 기능이 항진되었다가 이후에는 기능 저하로 전환됩니다. 이 시기에 초상화가 그려졌다면 눈썹 탈모의 원인이 될 수 있었겠지요. 당시의 의학적 기록이 없으니 추측일 뿐이기는 하지만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갑상샘은 물고기 아가미의 일부였다


그런데 우리 몸의 중요한 대사를 담당하는 갑상샘 호르몬의 원료를 반드시 외부에서 구해 와야 한다니 좀 의아합니다. 중요한 원료를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이 큰일인데요.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태아는 수정 3주 차에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이라는 3개의 층을 만듭니다. 이중 내배엽에서는 인두주머니 (pharyngeal pouch)라는 부위가 생겨나는데, 어류가 발생할 때 생기는 아가미와 같은 구조로 모든 척추동물의 발생시기에 나타납니다. 갑상샘은 인두주머니에서 생겨나기에 우리 몸에 남은 어류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원시 어류는 바닷물이 아가미로 들어왔을 때, 먹이만 거르고 다시 물을 내보냈습니다. 이때 바닷물에 포함된 요오드는 비록 먹이는 아니었지만 희귀 영양소였습니다. 귀한 요오드가 빠져나가지 않게 따로 저장할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이 기관이 갑상샘의 유래입니다.


그러면 어렵게 확보한 요오드는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갑상샘 호르몬은 타이로글로 불린(thyroglobulin)이라는 단백질에 요오드가 첨가된 구조로, 우리 몸의 전반적인 대사를 조절합니다. 먹이가 부족하면 대사를 낮추어 에너지를 아끼고, 온도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나는 요오드를 보유한 동물은 공장을 효율적으로 돌리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갑상샘 호르몬은 신생아기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의 발달 과정에 관여합니다. 영어유치원 보내고, 대치동 학원 보내면 성적은 올라도 타고난 지능까지 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임산부의 요오드 결핍은 그토록 소중한 아이의 지능과 직결된다는 뜻입니다. 많이 먹어서 지능을 올릴 수는 없지만 못 먹어서 내려가기는 쉬운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WHO는 세계 요오드 결핍 지도를 만들고 결핍 국가에 요오드화 소금 공급을 독려합니다.

사실 그렇게 많은 양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WHO에서 임산부와 수유모에게 권장하는 요오드 섭취량은 하루 250 µg으로, 김과 미역, 해산물을 많이 먹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렵지 않은 양입니다. 미역국 한 그릇에는 대략 1000 µg의 요오드가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요오드는 과잉섭취하는 경우에도 갑상샘 기능저하를 일으킬 수 있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요오드 결핍을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모나리자가 살았던 이탈리아도 이제는 요오드화 소금을 국가정책으로 공급하면서 요오드 결핍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상의 딱 한 곳, WHO의 정책이 닿지 못하는 곳이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WHO의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장애 손실 수명 지도를 확대해 보면 한반도의 허리를 기준으로 노란색과 빨간색이 명확하게 나뉩니다. 요오드가 부족할수록 빨간색이 되는 지도로, 북한이 빨간색이지요.


Disability-adjusted life years (DALY) lost from Iodine deficiency in 2012 per million persons.

WHO의 손이 닿지 않는 곳


북한은 원래 요오드 결핍이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대홍수를 겪으면서 염전이 파괴되고, 천일염 대신 광산에서 캔 암염을 먹기 때문에 요오드 결핍이 누적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천일염을 먹지만 북한에서는 값싸고 구하기 쉬운 중국산 암염을 씁니다.


탈북 어린이를 지원하는 한 시민단체는 2010년대 북한 어린이들의 요오드 결핍 실태를 보고했습니다. 대홍수와 기근이 닥친 90년대 후반 태어난 탈북 어린이들의 학습능력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지요.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지능 저하로 보았습니다. 기회의 부족으로 생긴 학력저하는 노력과 지원으로 메꿀 수 있지만, 출생 시기부터 시작된 지능 저하는 사후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유니세프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알고 2010년대 북한에 요오드화 소금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는 동안 국경이 봉쇄되면서 지원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북한 정권에서는 요오드를 비롯한 영양 결핍을 인정하지도 않고, 통계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발레카스의 소년, 1638년, 106 ×83cm, 프라도 미술관

이번에는 소년의 초상화를 봅니다. 입을 살짝 벌린 몽롱한 표정에 키가 작은 소년입니다. 페인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왕의 사냥에 동행했던 시종을 그렸습니다. 키 작은 소년을 올려다보는 시선은 모델에 대한 화가의 존중입니다.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발레카스의 소년> 입니다.


요오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 그림을 소환한 이유는 이 소년의 작은 키가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갑상샘 기능저하증이라는 가설 때문입니다. 17세기 스페인 왕실에는 키 작은 왜소증 시종들이 많았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왜소증의 원인으로 연골무형성증과 크레틴 병(Cretinism)을 모두 언급하지만, 두 질환은 완전히 다릅니다. 연골무형성증은 유전질환으로 지능이 정상이고, 크레틴병은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갑상샘 기능 저하로 지능 발달저하를 동반하지요. 돌출된 이마와 얼굴 생김새를 보면 연골무형성증에 무게가 실리지만, ‘레즈카노’는 스페인 바스크 산악지역의 성이기에 고산지대 특유의 크레틴 병을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알프스 산맥과 인접한 산악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심한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갑상샘 기능저하증 환자들이 집단으로 관찰되곤 했습니다. 키가 작고 혀가 두꺼우며 지능저하와 발달 장애를 동반하기에 슬픈 질환입니다. 크레틴 병이라는 병명은 이 지역 방언에서 유래했습니다. 크레틴(Cretin)은 기독교의(Christian)를 의미하는 단어로, 장애가 있지만 신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용어는 20세기 들어 왜소증과 장애를 비하하는 느낌을 준다고 하여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WHO와 유니세프의 꾸준한 노력으로 크레틴병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오늘날에도 레즈카노처럼 작은 키와 발달장애를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북한에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 식탁에는 자주 올라오는 김과 미역, 바다에서 나는 소금을 먹을 수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결핍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큰 일은 그렇게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작아서 훔치기 쉬웠지만 루브르에 연간 천만 명을 불러들이는 모나리자와, 고작 20그램이지만 우리 몸 전체의 대사를 관장하는 갑상샘처럼 말이지요.


저희 할아버지는 열 살 무렵 북한에서 홀로 내려와 온갖 시련을 딛고 자수성가 하셨습니다. 명절이면 고향 생각에 북녘을 향해 눈물을 흘리시던 할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물고기도 누릴 수 있는 미량의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한 북한 어린이들은 어쩌면 저의 먼 친척일 수도 있습니다. 눈썹 없는 모나리자를 보며, 작은 구멍이 큰 결핍을 만들지 않는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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