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수영 강습을 다닐 때 키가 유난히 작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마가 돌출되고, 팔이 짧으며 다리가 휘어 있는 연골무형성증 남아였습니다. 연골무형성증은 외모는 달라도 지능이나 발달단계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아이는 혼자 셔틀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었고 수영도 잘했습니다. 행동 발달로는 7세 이상으로 보였지만 키는 4세 아동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쟤는 4살 아닌가?'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아이의 표정은 슬펐고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었습니다. 작은 키 하나만으로 또래 집단에서 놀림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키 우월주의라는 용어는 미국의 사회학자 사울 펠드먼(Saul Feldman)이 처음 사용했는데,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의 키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대우를 뜻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단순한 차별을 넘어 괴롭힘과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키 우월주의는 남성집단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며, 고용과 임금 등 각종 사회적 대우가 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작은 키는 기준이 있습니다. 같은 연령, 같은 성별 어린이의 평균 신장보다 3백분위수 또는 -2 표준편차(SD) 미만이어야 합니다. 같은 학년이어도 성별, 생일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중에서 성장호르몬 분비가 정상이고 병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를 특발성 저신장이라고 합니다. 특발성 저신장의 가장 흔한 원인은 체질성 성장지연과 가족성 저신장입니다. 전자는 유년기에는 키가 작지만 사춘기 이후 따라잡기 성장을 해서 평균 키에 도달하고, 후자는 부모와 아이가 모두 키가 작은 경우로 이는 병적인 원인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키가 작은 사람들은 오랜 기간 차별을 받았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이들을 마치 신기한 동물처럼 생각했고, 동물보다 하나 위의 계급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 왜소증이라는 용어는 저신장과 혼용되어 쓰이며, 역사적으로는 연골무형성증을 가리키는 용어로 많이 쓰였습니다. 15~18세기 사이 서양 명화를 보면 왜소증을 다룬 작품이 많은데, 이들은 대개 궁정이나 귀족에게 속하여 동물을 사육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시종으로 살았습니다. 안토니스 모르(Anthonis Mor,1520-1577)의 <그랑벨 추기경의 난쟁이>를 보면 제목부터 사람을 추기경의 소유물인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그는 개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경직된 표정에서 그의 고단한 삶이 드러납니다. 체격이 크고 추기경의 문양까지 목에 두른 개와는 대조적입니다.
안토니스 모르, <그랑벨 추기경의 난쟁이>, 루브르 박물관
스페인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Velazquez, 1599-1660)는 왜소증 시종들을 자주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 중 복합적 구도와 다양한 시선으로 유명한 <시녀들>에는 2명의 왜소증 시종이 나옵니다. 한 명은 마리아 바르볼라(Maria Barbola)로 연골무형성증의 외모를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비록 키는 작지만 당당한 시선과 표정으로 정면을 쳐다봅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왕비의 시종으로 스페인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우측에는 발로 개를 깨우는 니콜라스(Nicolas Pertusato)라는 이탈리아 시종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연골무형성증의 얼굴은 아니지만 키가 작아 왜소증 아동으로 추정됩니다.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프라도미술관 (좌측의 벨라스케스와 우측의 검은 머리 시종은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
벨라스케스의 어머니는 작위를 받지 못한 하급귀족이었고, 그는 궁정화가였지만 귀족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평생을 노력한 결과 마침내 벨라스케스는 순수혈통의 귀족만 들어갈 수 있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일원이 됩니다. 그러나 귀족이 되기를 열망했던 그의 행보와는 달리, 벨라스케스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초상화에 왜소증 시종, 흑인 노예 등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등장시켰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신분으로 삶이 결정되던 시기, 벨라스케스는 그들을 희화화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 <궁정 난쟁이 세바스찬 데 모라의 초상>,1645년, 프라도 미술관
벨라스케스의 또 다른 그림 <세바스찬 데 모라의 초상>을 보면, 왜소증 시종인 모델을 앉히고 주먹을 쥐게 하여 신체 특징이 최대한 덜 드러나게 하고 시선을 얼굴에 집중시켰습니다. 그림을 통해 느껴지는 세바스찬은 비록 왜소증 시종이지만 귀족 못지않게 당당하고 존엄한 느낌입니다.
심리학에는 표상(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대상을 특정한 이미지로 각인시키게 되는데,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표상, 타인의 이미지를 대상 표상이라고 합니다. 세바스찬을 인식하는 벨라스케스의 대상 표상은 작은 키의 시종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존엄한 인간이었을 것입니다. 또 세바스찬의 표정과 당당한 시선을 보면, 편견과 차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표상이 건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벨라스케스가 살았던 시대의 스페인에서 화가는 깊이를 추구하는 예술가보다는 기술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가 귀족이 되고 싶어 했던 것은 단순한 신분 상승의 열망이 아니라, 화가라는 직업과 자신의 예술세계를 당당히 인정받으려는 마음이었을까요? 그렇다면 벨라스케스의 자기 표상 역시 건강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르가리타 공주를 주인공으로 그린 <시녀들>에 화가 자신을 그려 넣은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출생 시 신생아의 키는 50cm 정도로 생후 2년 동안, 그리고 사춘기 시작부터 15~16세 시기에 급속 성장을 합니다. 두 시기를 제외하면 1년에 5~6cm 정도 성장하는데, 1년에 4cm도 자라지 않는다면 병적인 성장 부진을 의심합니다. 병적으로 작은 키를 성장호르몬 주사로 치료하는 경우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뇌종양이나 뇌손상등으로 생긴 성장호르몬 결핍이고, 두 번째는 성장호르몬 결핍은 없으나 병적인 원인으로 키가 작은 경우입니다. 터너증후군, 프레더-윌리증후군 등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저신장, 만성신부전으로 인한 저신장, 출생체중이 재태연령 평균보다 작은 경우(부당경량아)등입니다. 이런 경우는 건강보험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건강에 문제가 없는 특발성 저신장, 또는 부모의 기대치보다 예상키가 작아 성장호르몬을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발성 저신장 아동에게 2-3년간 성장호르몬을 투여했을 때 최종키는 예측키에 비해 5-6 cm 정도 더 큰다고도 하지만 개인차가 많아 논란이 있지요. 2003년 미국 FDA에서는 병적인 원인이 없이 또래 같은 성별 아동에 비해 키가 -2.25 SD 이하인 경우, 성인 최종 예측키가 남아 160cm, 여아 150cm 미만일 때에만 치료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성장호르몬은 치료 시작 시 연령이 어릴수록, 키가 작을수록, 치료 기간이 길수록, 성장호르몬 치료 용량이 많을수록 효과가 좋은 편입니다. 부작용이 적어 비교적 안전한 약이지만 드물게 두통을 동반하는 두개내압 항진, 몸이 붓는 부종 증세, 갑상선 기능저하, 혈압과 혈당 증가, 수면 무호흡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성장호르몬 부작용이 많이 나타난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는데요.
성장호르몬은 꼭 필요한 대상아동이 있고, 부작용이 두려워서 맞지 못할 정도의 약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약물이 꼭 필요한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도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사용이 늘어나는 만큼 부작용의 빈도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성장호르몬의 처방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키 우월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선으로 인물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벨라스케스의 신분에 상관없이 그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키를 포함한 외모는 사람의 한 측면일 뿐 인간의 우월함이나 업적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닙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가 세상을 떠난지 수 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작은 키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키는 현대사회의 암묵적 신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키 우월주의(heightism)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