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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May 01. 2024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바로크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작품 중 <자는 두 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루벤스가 형의 아이들을 그린 습작으로 추정됩니다. 루벤스는 우리에게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꼭 보고 싶어 했던 대성당의 그림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요. 그는 독일의 지겐(Sigen)에서 칼뱅 신교도의 자녀로 태어나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국가에서 활동했습니다. 루벤스는 많은 조수와 협업자를 두고 대형 종교화를 그렸지만, 때로는 이처럼 평범하고 소박한 아이들도 그렸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자는 두 아이>, 1612-13, 일본 국립서양미술관

볼이 빨갛고 머리는 곱슬인 두 아이는 1세 이하 영아와 2~3세 유아로 보입니다. 좌측의 동생은 한참 잘 자고 있고, 우측의 큰아이는 실눈을 뜨고 있네요. 아마 큰 아이는 낮잠이 줄어드는 시기일 수 있고, 작은 아이는 한참 낮잠을 잘 시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소아는 나이에 따라 수면의 지속 시간과 단계별 분포가 달라집니다. 신생아는 약 6개월까지 정기적인 수면 주기가 없습니다. 하루에 16-17시간을 자지만 한 번에 1-2시간만 연속해서 잡니다. 생후 6개월까지는 밤 사이 깨는 것이 정상이고, 1세가 넘어가면 밤부터 아침까지 푹 잘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은 육아에 있어서 애증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유럽이 아닌 일본의 미술관에서 루벤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띕니다. 일본의 국립서양미술관은 모네, 르누아르, 고갱의 회화 작품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한 조각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가와사키 조선의 초대 사장 마츠카타 고지로가 일본의 젊은이들이 서양 명화를 볼 수 있도록 1920년대부터 수집한 작품을 모아 설립한 미술관입니다. 원래는 대공황 때 일본 경제가 어려워 경매에 내놓거나 흩어졌지만, 작품을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에서 양국간 우호조약으로 일본 정부에 다시 반환했다고 하니 뜻깊은 미술관이기도 합니다.       


워터하우스, <잠과 그의 형제의 죽음>, 70x91cm, 1874

두 사람이 기대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영국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잠과 그의 형제의 죽음>입니다. 모두 눈을 감고 자고 있지만, 한쪽은 밝고 생기 있고, 한쪽은 어둡고 핏기가 없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신화의 잠의 신 히프노스(Hypnos)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를 상징합니다. 최면술을 뜻하는 단어 Hypnosis는 잠의 신 히프노스에서 유래했고, 불면증을 뜻하는 insomnia는 로마신화에서 히프노스에 해당하는 솜누스(Somnus)에서 유래했습니다. 히프노스는 양귀비 꽃을 쥐고 있는데, 양귀비는 통증을 완화시켜 주고 최면에 들게 하는 식물입니다. 히프노스는 어둠의 동굴에 사는데, 양귀비꽃을 가득 심어놓고 밤이 되면 인간세상에 양귀비 즙을 뿌려 잠들게 했습니다. 히프노스와 타나토스는 그림의 제목처럼 쌍둥이 형제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잠과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고대인들의 밤은 지금 우리의 밤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전기가 없으니 기껏해야 촛불로 어둠을 버텼을 것이고, TV나 인터넷이 없으니 밤 사이 즐길 일도 적었겠지요. 밤에 여는 가게가 없밖에서 먹거나 놀 수 없고. 가로등이 없으니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밤은 인간의 활동이 멈춘 어둠의 장막으로, 죽음을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는 빛과 섭식     


 밤의 풍경을 그린 그림 중 아주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Nighthawks,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입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 84.1 ×152.4 cm, 시카고 미술관

평범한 도시의 밤 풍경입니다. 골목의 코너에 식당으로 보이는 가게가 있습니다. 측면이 넓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가게 안이 훤히 보입니다. 식당 내부 인테리어는 단순하다 못해 공허할 정도입니다. 바(Bar) 형태로 되어 있는 손님 자리에는 연인 한 쌍과 신사 한 명이 거리를 두고 앉아 있습니다. 바깥은 밤인데 실내의 빛이 너무 밝게 느껴집니다. 빛처럼 밝은 레몬색 벽은 바깥의 어둠과 대비를 이룹니다. 그림이 크고 가게를 비추는 빛이 너무 밝아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호퍼는 뉴욕 주 나이액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며, 현대인의 고독과 도시의 풍경을 담아낸 화가입니다. 20세기 초 뉴욕에 화려한 고층빌딩과 자동차 도로, 다리가 들어서는 동안 그는 오히려 낡고 사라져 가는 건축물이나 다리의 아래 같은 도시의 이면에 주목했습니다. 그의 그림 중에는 창문을 통해 밖에서 실내를 들여다보는 시선의 그림이 많습니다. 특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서는 통유리창을 통해 빛이 환하게 켜진 실내 공간이 어두운 거리와 대비되며 단절되고 고립된 느낌을 줍니다. 손님들 앞에는 잔이 하나씩 놓여 있고, 특히 여성 손님은 작은 샌드위치를 먹고 있습니다. 이처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속에는 밝은 빛과 먹는 행위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생물들은 자전주기인 24시간을 인지하기 위해 체내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뇌의 시상하부에는 존재하는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i, SCN)입니다. 시교차상핵의 주기는 외부환경 신호에 따라 맞추게 됩니다. 가장 강력한 신호는 빛이며, 그 외 식사시간, 운동, 사회활동, 온도 변화 등도 신호 자극으로 작용합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에 밝은 빛을 넣은 것은 과학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여자를 보면 먹는 것과 수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지만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웁니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다시 잠들지요. 왜 배가 고프면 잠들지 못할까요?  

   

자연에서 동물은 공복이 되면 먹이를 찾아야 하고, 각성 수준을 올려 의식과 신체 기능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몸에 공복이 지속되면 저혈당을 감지하고 오렉신이라는 물질이 활성화되어 각성 수준을 상승시킵니다. 오렉신은 원래 섭식을 촉진하는 물질로 처음 알려졌으나, 기면증 연구를 통해 수면과 각성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잠자기 직전에 먹는 습관을 들이면 먹는 동안 각성 수준이 올라가서 오히려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절한 식사는 취침 4~5시간 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우리 몸의 에너지 상태와 수면, 각성은 깊은 관계가 있고 여기에는 오렉신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보면 도시의 밝은 빛과, 늦게까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의 활동은 야간까지 확장됩니다. 밤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니지만, 과학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어둠 속에 고요히 잠들 기회를 빼앗기도 합니다. 빛과 섭식 외에도 수면에 영향을 주는 정서적 요인이 있습니다. 이 그림이 호퍼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았던 이유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중으로 상실과 불안으로 우울했던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불안과 우울은 우리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입니다.      


반면 2024년, 아이들의 밤은 어떨까요? 호퍼가 살던 시대에는 도시의 밝은 빛이 사람들을 잠들지 못하게 했지만, 이제는 스마트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가 아이들의 잠을 또 한 번 방해합니다. 카페인이 든 음료, 끝이 없는 숙제와 시험공부도 잠을 방해하겠지요. 2020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주중 평균 수면 시간은 6.2시간이지만, 청소년에게 권고되는 수면 시간은 8-10시간 정도 됩니다. 감정 조절 발달, 기억 강화 등이 수면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지금보다는 충분히 잘 수 있어야 청소년의 일상이 안정되고 학업에도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잠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죽음과 비슷한 단계일까요, 아니면 그저 휴식일뿐일까요? 죽음을 연상시키는 잠, 휴식에 해당하는 잠, 우울증, 치매 등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잠, 기억을 강화시키고 꿈을 꾸게 하는 잠 등 잠에는 여러 가지 기능과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건강한 잠은 지켜줘야 할 권리인지도 모릅니다. 일과 스트레스로 찌든 현대인 모두가 그렇겠지요. 오늘밤은 블루라이트를 피해 히프노스의 양귀비 즙에 몸을 맡겨 보시면 어떨까요? 당신의 꿀잠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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