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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May 01. 2024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소아청소년의 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소아는 나이에 따라 수면의 지속 시간과 단계별 분포가 달라집니다.


신생아는 약 6개월까지 정기적인 수면 주기가 없습니다. 하루에 16-17시간을 자지만 한 번에 1-2시간만 연속해서 잡니다. 생후 6개월까지는 밤 사이 깨는 것이 정상이고, 만 1세가 넘어가면 밤부터 아침까지 푹 잘 수도 있습니다. 1)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자는 두 아이>, 1612-13, 일본 국립서양미술관

  

만 1-3세 아동의 권장 수면시간은 낮잠을 포함해서 11-14시간 정도이고, 낮잠은 18개월 경 하루 2회에서 1회로 줄어듭니다. 만 1세에는 100% 낮잠을 자지만 만 3세에는 50%로 줄어듭니다. 이 시기의 유아는 대개 아침형이고 수면 의식, 즉 잠자리 습관이 필요합니다. 2)   


루벤스가 그린 그림 중 <자는 두 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루벤스의 조카 클라라와 필립을 그린 습작으로 추정됩니다. 볼이 빨갛고 머리는 곱슬인 두 아이들은 1세 이하 영아와 2-3세 유아럼 보입니다. 좌측의 동생은 한참 잘 자고 있고, 우측의 큰 아이는 실눈을 뜨고 있요. 아마 큰 아이는 낮잠이 줄어드는 시기일 수 있고, 작은 아이는 한참 낮잠을 잘 시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 4-5세가 되면 권장 수면 시간은 10-13시간 정도이고, 낮잠을 자지 않게 되며 5세에서는 15% 정도만 낮잠을 잡니다. 학령 전기이므로 일정한 수면시간과 기상시간 설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수면 패턴에 변경이 필요하다면 몇 주 전부터 미리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


소아의 수면 단계는 성인에 비해 4단계의 깊은 NREM(Non-Rapid Eye Movement) 수면 시간이 길고, 수면 후반에도 4단계의 NREM 수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성인에 비해 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의 비중이 높은데, 신생아 시기에는 50% 정도를 차지하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20% 정도로 줄어듭니다.


이 시기 수면 장애로는 야간 공포, 악몽, 폐쇄성 무호흡증, 각성 장애인 몽유병, 야경증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잠이 든다는 것은 아이들로서는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지는 현상이므로 두렵기도 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밤늦게까지 미디어를 시청할 수 있는 환 수면 방해가 니다. 또 기질이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일수록 잠들기 어렵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아이의 잠이란 육아에 있어서 엄마를 울고 웃게 만드는 애증의 요소입니다.



밤의 풍경을 그린 그림 중 아주 유명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Nighthawks,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입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 시카고 미술관


평범해 보이는 도시의 밤 풍경입니다. 골목의 코너에 식당으로 보이는 가게가 있습니다. 측면이 넓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식당 내부의 인테리어는 요즘 유행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듯 깔끔하다 못해 공허합니다. Bar 형태로 되어 있는 손님 자리에는 남녀 커플 한 쌍과 신사 한 명이 거리를 두고 앉아 있습니다. 바깥은 밤인데 실내의 빛이 너무 밝게 느껴집니다. 빛처럼 밝은 레몬색 벽은 바깥의 어둠과 대비를 이룹니다.


여성 손님은 자세히 보면 샌드위치를 먹고 있습니다.  그림의 규격은  84.1 ×152.4 cm로 큰 편인 데다가 통유리 식당이 차지하는 비율도 비현실적으로 크기에 마치 꿈속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평론가들은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하지만, 저는 이 그림에서 근한 잠을 방해하는 너무 밝은 빛과 여성의 먹는 행위에 눈길이 갑니다.


지구상의 생물들은 자전주기인 24시간을 인지하기 위해 체내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도 생체 시계가 있어 수면과 각성뿐 아니라 호르몬 분비와 혈압, 체온 조절등의 생리적 활동특정 신호에 의해 조절니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뇌의 시상하부에는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i, SCN)이 존재하는데, SCN은 일주기 리듬을 만는 생체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SCN의 진동주기는 24.3시간으로 24시간을 약간 넘기에 외부환경 신호에 따라 맞추게 됩니다. 3)


가장 강력한 신호는 빛이며, 그 외 식사시간, 운동, 사회활동, 온도 변화등도 신호 자극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면 야간에 빛에 노출되면 일주기 시계가 뒤로 물러가고, 이른 아침에 노출되면 앞으로 당겨지는 식입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에 밝은 빛을 넣은 것은 과학적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여자를 보면 먹는 것과 수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지만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웁니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다시 잠들지요. 왜 배가 고프면 잠들지 못할까요?


수면과 각성에 관여하는 물질 중 오렉신(Orexin 또는 Hypocretin)이라는 성분이 있습니다. 오렉신은 원래 섭식을 촉진하는 물질로 발견되었으나(그리스어로 Orexis는 식욕을 의미함), 기면증 연구를 통하여 각성과 수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자연에서 동물은 공복이 되면 먹이를 찾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먹이를 찾는 행동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기에 각성 수준을 올려 의식을 명료하게 하고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신체 기능을 높입니다. 공복이 지속되면 혈당이 저하되고, 뇌척수액의 당 농도도 저하됩니다. 이는 오렉신 작동성 뉴런을 활성화하여 각성 수준을 상승시키게 됩니다. 반대로 잠자기 직전에 먹는 습관을 들이면 먹는 시간에 각성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에 오히려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절한 식사는 취침 4-5시간 전에 하는 것이 수면에 좋습니다. 이처럼 우리 몸의 에너지 상태와 수면, 각성은 깊은 관계가 있고 여기에는 오렉신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3)

  

그럼 다시 청소년의 수면 문제로 돌아와 볼까요?


취학 전에는 가족의 취침 기상시간과 일치하던 일주기리듬이 청소년기에 들어 취침과 기상시간이 모두 늦어지게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은 유사한 패턴을 보이며, 아동에 비해 더 늦은 시간에 멜라토닌이 분비되고 저녁시간의 빛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4)


 청소년기에 생길 수 있는 수면 장애에는 불면증, 수면위상 지연증후군,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기면증 등이 있습니다. 기면증은 흥미로운 질환이지만 논할 것이 많아 다음에 따로 써 보려고 합니다. 하지불안 증후군은 수면장애가 아닐 것 같지만 주로 저녁시간에 다리의 불편한 감각이 생기고, 움직이면 완화되기 때문에 수면을 취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불면증과 수면위상 지연증후군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불면증은 성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청소년에서도 매우 흔한 수면 장애로,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흔하며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개 과도한 스트레스나 불안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불면장애의 진단 기준에는 잠들기 어렵거나, 잠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너무 일찍 일어나서 3개월 이상 일주일에 3일 이상 상쾌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포함되고,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 증후군, 기면증 등 불면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수면 장애를 배제해야 합니다. 또한 불안, 우울증 등이 불면증의 원인이 될 수 있어 평가가 필요합니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비만, 당뇨병,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고, 우울증, 불안, 자살 충동 위험 증가, 사회적 고립, 또래 및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장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5)


수면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질문을 통해서 병력을 청취합니다. 전반적 건강과 관련된 질문은 물론, 카페인 음료를 복용하는지, 등 하교 시간과 학원 끝나는 시간, 인터넷과 게임, 스마트폰 사용시간 등까지 파악해야 합니다.


수면 일기를 작성하게 하는데, 적어도 2주 이상 잠자리에 드는 시각, 실제 잠이 든 시각, 자다가 깬 횟수와 시간, 아침에 기상하는 시각, 운동 시간, 카페인 음료 섭취 여부 등을 기록합니다.


수면각성 활동량 검사라는 것이 있는데, 손목에 시계처럼 활동기록기를 착용한 뒤 1-3주간 수면과 활동 시간을 확인합니다. 불면증, 수면일주기 장애, 주간 졸림과 하지 불안 증후군 등에 유용한 평가 도구가 됩니다. 6)


치료는  개인에게 맞춤화되어야 하며, 약물보다는 행동 치료가 우선입니다. 수면 위생 교육, 이완 기법, 인지 행동 치료가 포함됩니다. 인지 행동 치료는 일반적으로 수면과 관련된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파악하여 해결하고, 규칙적인 수면-각성 스케줄을 세우는 것입니다. 약물적 개입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부작용과 남용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두 번째로 수면 위상지연 증후군은 이름은 거창하지만, '밤에 너무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요.'에 해당하는 현상입니다. 청소년의 수면위상 지연증후군은 7.6%에서 16.6%에 이르며, 성인보다 청소년에 더 흔하고,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많습니다.


일주기 리듬의 변화 및 사춘기의 호르몬 변화와 같은 생물학적 요인과, 학교 일정, 사회 활동, 취침 전 전자기기 노출과 같은 환경적 요인, 스트레스와 불안과 같은 심리적 요인 모두 수면위상 지연증후군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수면 시작 시간과 기상 시간이 원하는 수면 스케줄 또는 기존 수면 스케줄보다 2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지연되어 주간 졸음이 심하거나 기능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에 진단이 가능합니다.


치료로는 우선 비약물적 개입을 고려하는데, 수면 위생 교육, 이완 기법, 광치료 등이 있으며, 이 중 광치료는 아침에 밝은 빛에 노출시켜 일주기 리듬을 재설정하는 것으로, 청소년의 수면위상 지연증후군 치료에 효과적입니다. 멜라토닌은 효과적인 약물이지만 청소년에 있어서 장기적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주의해야 합니다. 5)


청소년에게 권고되는 수면시간은 8-10시간이지만, 2020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주중 평균 수면 시간은 6.2시간이라고 합니다. 2006년 미국 국립 수면재단의 설문조사에서는 20%의 청소년만이 하루 9시간 이상 수면을 취한다고 답변했습니다. 6) 감정 조절 발달, 기억 강화 등 수면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청소년의 일상이 안정되고 학업에도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1941년 12월에 그리기 시작해서 다음 해 1월 21일에 완성했니다. 원래는 연말시즌이라 들뜬 분위기여야 하지만, 당시 2차 세계대전 중으로 사람들은 죽음과 상실, 고독과 고립 등으로 힘들어했습니다. 7)


당시의 암울함과 고독감을 표현한 이 그림의 제목이 고독이나 우울이 아니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현대인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다면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상실과 고독으로 우울하기 때문일까요? 대한민국 소아청소년의 삶이 상실과 고독, 우울로 물들어 수면 부족을 일으키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팁!

1. 청소년의 수면 장애에는 만성적 스트레스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수면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정서와 생활 습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청소년의 수면 장애는 약물치료보다 행동개입이 중요합니다. 즉, 생활 습관과 환경 개선이 필요합니다.
수면은 섭식과 빛 노출에 깊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취침 4-5시간 전에 식사를 해서 과도한 공복이나 포만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하고, 일주기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전시간에 빛을 쐬고 밤에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커버이미지

: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74, <잠과 그의 이복동생의 죽음>

워터하우스는 결핵으로 동생을 잃은 뒤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잠의 신 히프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표현했습니다. 밝은 쪽이 히프노스로 최면식물로 알려진 양귀비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타나토스는 어둠 속에 있군요. 잠은 죽음으로 가는 전 단계일까요? 아니면 그저 휴식일뿐일까요?


죽음을 연상시키는 잠, 시간낭비로 여겨지는 잠, 우울증, 치매 등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잠, 기억을 강화시키고 꿈을 꾸게 하는 잠 등 잠에는 여러 가지 기능과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건강한 잠은 소아청소년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고 시간은 없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함께 그림을 감상하고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문헌


1. 대한 소아청소년과학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위한 육아상담지침서, 출생 전부터 첫돌까지, 2019.


2. 대한 소아청소년과학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위한 육아상담지침서 2, 첫 돌부터 5세까지, 2023.


3. 사쿠라이 다케시, 수면의 과학, 을유문화사, 2018.


4. 홍강의, 소아정신의학, 학지사, 2014.


5.  Hong Jun Jeon, Clinical presentation, diagnosis, and treatment of sleep disorders in adolescents, J Korean Med Assoc 2023 April; 66(4):258-266.


6. 대한 소아청소년과학회 청소년위원회, 청소년의학, 2022.


7. 이은화, 사연있는 그림, 상상출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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