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 little kitty May 08. 2024

디프테리아와 후두염

소아의 기도폐쇄는 응급

안녕하세요?

오늘은 소아의 기도폐쇄, 특히 상부기도 폐쇄인 후두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고야(Francisco Goya,1746-1828)의 그림 중 <디프테리아>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성인 남자가 아이의 목에 손가락을 넣은 기이한 장면인데요. 20세기 후반 고야의 작품 목록이 발견되면서 이 그림은 스페인의 소설 <The life of Lazarillo de Tormes and of his fortunes and adversities> 중 한 에피소드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림 속 남자는 눈을 감고 있고 코가 길쭉한데, 소설에 나오는 시각장애인 남성이 주인공 Lazarillo의 목에 손을 넣어 소시지를 훔쳐 먹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야의 목록이 발견되기 전, 스페인의 의사 Gregorio Marañón (1887-1960) 이 그림을 보고 디프테리아(El Garrotillo)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당시에는 디프테리아로 목 안에 생긴 회색막(위막, pseudomembrane)을 제거하기 위해 손을 넣어 벗겨내거나 도구를 넣어 소작하는 시술이 실제로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원래 Garrote이란 사람을 목 졸라 죽이는 처형도구를 의미하고, Garrotillo란 작은 garrote, 즉 작은 교살(도구)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디프테리아로 인해 인후두가 붓고 좁아지면 호흡곤란이 생기기에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1)


이 그림은 아직도 <디프테리아>로 불리고 있습니다. 사연을 모른 채 그림을 보면, 마치 아버지가 숨쉬기 힘들어하는 아들의 목에 손가락을 넣어 기도를 넓혀 주려고 하는 애틋하고 슬픈 장면처럼 보입니다.


프란시스 고야, 1808-10, 디프테리아 (El Garrotillo)


소아의 기도폐쇄는 응급입니다. 성인의 경우 심폐소생을 할 정도의 응급은 기저질환으로 인한 심장의 문제가 많지만 소아,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기도폐쇄로 인한 심정지까지 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를 흔히 상기도와 하기도로 구분하는데, 목에 가까운 인두(pharynx)와 후두 (larynx)를 상기도, 기관(trachea)부터 세기관지 (bronchiole)까지를 하기도에 포함합니다.


상기도가 흡입한 공기를 가습하고 이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면, 하기도는 흡입한 산소를 체내로 적절히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상기도인 후두 부위가 폐쇄되면 하부 기도까지 산소가 도달하지 못하고 이산화탄소도 배출되지 못해 질식과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즉 해부학적으로는 상기도 폐쇄지만 기능적으로는 하부기도 폐쇄 및 기능 정지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상하부 기도(airway)의 구조, larynx가 후두에 해당한다. 출처: Wikipedia



영유아는 기관지 감염, 이물, 가래 만으로도 기도 폐쇄가 쉽게 일어나고, 심한 호흡곤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기도 저항은 반지름의 4 제곱에 비례하기에 조금만 좁아져도 저항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또 영아의 흉벽은 단단하지 않고 늑골이 성인보다 수평으로 위치하며 횡격막도 돔 형태로 편평한 모양입니다. 이런 형태는 성인에 비해 흉곽을 늘려 호흡하는데 매우 불리합니다. 2)



고야의 그림으로 다시 돌아가보면, 디프테리아는 Corynebacterium diphtheriae라는 이름을 가진 세균에 의한 급성 독소 매개 질환입니다. 독소는 심장근육, 콩팥, 말초신경 세포 등에 작용하여 각종 증상을 유발합니다.


디프테리아 백신은 1920년대에 나왔지만 1930년까지는 부작용 등으로 널리 쓰이지 못하다가, 1940년 DPT (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으로 편입된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상용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신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소아에서 흔한 사망의 원인이었으나, DTP 백신을 사용하면서 1970년대 이후부터는 대유행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이후, 일본에서는 1999년 이후 발생 보고가 없습니다. 디프테리아의 치사율은 10%, 영유아의 경우 20% 이상이므로 백신 접종은 획기적인 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이 원활하지 않은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발생합니다. 3)


 디프테리아균은 모든 점막을 침범할 수 있고 막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디프테리아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Diphthera, 가죽이라는 뜻으로 인후부에 형성된 단단한 회색막을 보고 붙인 이름니다. 막이 형성되면 독소가 흡수되어 전신으로 퍼지고, 특히 코, 인후두, 피부 등으로 분포하며 호흡기를 통하여 전파됩니다.


디프테리아의 위막(pseudomembrane): 디프테리아 균에 감염되면 목 부위에 염증 물질이 쌓여 회백색의 막이 생긴다.  출처:emedicine.medscape.com


주요 합병증으로는 기도 부종으로 인해 기도 폐쇄, 심근염, 신경염 등이 있습니다. 한때는 디프테리아로 인한 상기도 폐쇄를 크루프(Croup, 오늘날의 후두염)라고 하고, 다른 바이러스로 인한 상부 기도폐쇄는 가짜 크루프(faux croup)라고 불렀습니다. 디프테리아가 아닌 바이러스에 의한 대다수의 후두염은 병원에 오는 사이 쐰 차가운 밤공기에 의해 가라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4)


후두염은 개가 짖는 듯한 컹컹거리는 기침*(밑에 링크첨부), 쉰 목소리, 흡기성 협착음 등의 상기도 폐쇄 증상을 나타내는 급성 호흡기 질환군입니다. 주로 밤에 응급실에 방문하게 되는데, 60%에서 48시간 내에 증상이 호전되, 22.8%에서 입원 치료가 필요하며, 드물게 기도 삽관과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중증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5)



후두염으로 인해 기관(trachea) 부위가 좁아진 소견이 관찰된다.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File:Croup.ogg

* 위의 링크에서는 후두염에서 들리는 특징적 barking cough(6초부터)와, 중간에 들숨에는 stridor(협착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후두염의 원인은 Parainfluenza virus가 가장 흔하고 그 외에 RSV, Human rhinovirus, Influenza virus, Human Corona virus 등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균 감염에 의한 후두염은 Hemophilus influenza B라는 균주가 원인이 될 수 있는데, 백신 접종으로 거의 줄어든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부기도와 폐로 감염이 확산된 경우, 바이러스 감염 이후 2차적으로 동반된 세균 감염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Westley croup score는 환자의 증상을  5개 항목(협착음, 흉부함몰, 청색증, 의식 수준)으로 구분하여 점수를 매기고 경증부터 중증까지 구분했습니다. 6점 이상 시 중증인데 저는 고야의 그림을 보고 아이의 입술에 청색증이 있고 흉부 함몰도 관찰되어 중증으로 생각했습니다.


호흡 곤란을 동반한 후두염의 치료로는 첫째, Corticosteroid(스테로이드) 약제를 사용하여 기도의 부종과 염증을 완화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에피네프린 흡입 요법이 있습니다. 에피네프린은 혈압과 심장 박동을 높이고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약인데, 심폐소생술 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racemic epinephrine이라는 형태의 약을 흡입요법으로 사용하면 기도의 부종을 효과적으로 가라앉힐 수 있어 응급 상황에 사용합니다.


그 외 찬 가습을 아이의 코와 입에 대 주어 기도의 부종을 완화하고 필요한 호흡기 약물을 사용하면 대개의 후두염은 가라앉습니다. 바이러스 후두염의 85%는 경증이고 중증은 1% 미만입니다. 그러나 후두염의 한 형태인 급성 후두개염응급 상황으로 즉각 기도 내 삽관이 필요하며, 약물 치료는 대개 효과가 없습니다. 5)


조르주 시코토, <기도삽관>, 1904, 파리 빈민구제 미술관


조르쥬 시코토(Georges Chicotot, 1868-1921)는 프랑스의 의사이자 화가였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영상의학과 의사로 유방암의 치료에 방사선을 도입했고, 화가로서는 인상 깊은 의학적 처치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기도삽관(Le tubage)>이라는 그림은 동료 의사 Dr. Albert Josias가 디프테리아에 걸린 아동을 검사하고 치료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목의 앞쪽에서 직접 절개하는 기관절개술(Tracheostomy)은 너무 침습적인 시술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1885년 미국의 의사 조세프 드와이어(Joseph O'Dwyer, 1841–1898)가 디프테리아 환자에서 기도삽관(laryngeal intubation)을 고안하여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옆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은 또 다른 의사로 말의 혈청으로 만든 디프테리아 항독소를 준비 중입니다. 힘든 시술이지만 아이는 비교적 얌전하게 앉아 있는데, 자세히 보면 상체를 결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


오늘날에는 중환자실이나 수술실처럼 무균상태인 공간에서 숙련된 전문의가 기도삽관이 어려운 경우 안전하게 기관절개술을 시행합니다. 제가 전공의였던 시절, 응급 기관절개술을 위해 이비인후과 의료진을 호출하면 30초 이내에 여러 선생님들이 수술도구를 들고 바람처럼 나타나서 시술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큼 기도폐쇄는 응급이라는 점에 의료진은 이견이 없습니다.


 2022년 한 대학병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영아가 상기도 폐쇄 증상을 보여 흡입 에피네프린 처치를 하는 과정에서 약이 주사로 잘못 들어가고, 그 사실이 늦게 알려지며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2023년 소아 입원이 불가능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후두염에 걸린 5세 아동이 응급실에서 밤새 치료 후 귀가했다가 집에서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미 여러군데 병원에서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아동에게, 입원실은 없으나 응급실에서 최선의 치료를 해 준 병원이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기도폐쇄에 취약한 연령에 후두염 자체의 중증도가 높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이 지나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소아 중증 의료가 왜 필요하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디프테리아는 백신으로 사라졌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여전히 소아의 기도폐쇄를 일으킬 수 있는 원인균과 질환들이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와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후두염에 걸린 아이를 숨쉬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이의 힘겨운 호흡에 그림 속 남자가 넣었던 손가락 대신, 적절한 응급 처치와 치료로 아이의 숨구멍을 틔워줄 수 있는 대한민국을 소망합니다.


오늘의 Tip


1. 소아청소년과 질환에서는 예방접종이 정말 중요합니다. 치사율이 10%에 이르는 디프테리아도, 후두염의 심한 형태인 급성 후두개염의 원인균 Hemophilus influenza B도 예방 접종으로 발생을 막을 수 있습니다. 


2. 중증 후두염은 상기도 폐쇄를 일으키고, 상기도가 완전히 폐쇄되면 질식과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응급처치가 중요하며, 연령이 어릴수록 취약합니다. 내 아이가 호흡곤란이 왔을 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지를 그날의 운에 맡기지 않아도 되는 대한민국을 소망합니다. 정책을 만들고 의료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분들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무엇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인지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커버이미지-


리처드 테넌트 쿠퍼(Richard Tennant Cooper, 1885-1957), <병든 아이를 목 졸라 죽이는 유령의 골격(skeleton)>, 1910년, Wellcome Collection, UK


기도 수축 또는 폐쇄가 오면 어떤 느낌일까요? 화가는 해골이 아이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스페인어로 디프테리아가 작은 교살인 것처럼 말이지요. 하부기도 폐쇄인 천식환자들은 기도 수축이 목이 졸리고 가슴을 망치로 때리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에 검사를 위해 기도수축을 유발하는 아데노신을 투여받은 적이 있는데 짧은 순간이지만 무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엄청난 주먹이 저의 가슴 중앙부위를 누르고 쥐어짜는 느낌이었거든요. 기도폐쇄를 보이는 아동이 있다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 고통과 위험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참고문헌


1. Vicent Rodilla, El garrotillo: on diphtheria and Goya, Hektoen International, Nov.2018.


2.안효섭,신희영.홍창의소아과학.12판.미래엔, 2020.


3.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예방접종지침 제 10판, 2021. 


4. V. Marchessault, Historical review of Croup, Can J Infect Dis Vol.12 No.6 2001.


5. Yoon Young Jang, MD · Hai Lee Chung, MD, Pharmacological treatment of the patients with

croup, J Korean Med Assoc 2021 July; 64(7):501-507.


6. Alejandro Donoso F., Daniela Arriagada S., The child with infectious diseases in the visual arts: painting, Rev Chil Pediatr. 2019; 90(5):545-55.


이전 05화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