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 little kitty May 15. 2024

유전질환으로 오인되었던 질병, 결핵

유전처럼 이어받은 전염병

안녕하세요?

오늘은 결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결핵은 아주 오랜 세월 인류를 고통스럽게 한 질병 중 하나입니다. 결핵에 걸린 사람들은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을 보였기 때문에 , '하얀 죽음(white death)'이라고 불렸습니다. 일부 지식인들은 결핵을 ‘낭만적인 병(romantic disease)’ 이라고도 여겼는데, 창백하고 마른 모습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


1882년 독일의 의사 코흐(Robert Koch, 1843-1910)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분리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결핵이 유전질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도 결핵에 대한 기록을 남겼지만 유전질환이라고 보았습니다.1) 결핵은 공기로 전파되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질병이기에 대개 가족 내 발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핵균이 분리되어 감염질환임을 알고 스트렙토마이신 같은 항생제를 사용하였고,1950년대에 들어서 결핵균을 타겟으로 한 아이소니아지드(Isoniazid) 나오며 비로소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결핵으로 고통받았던 화가로는 들라크루아, 모딜리아니, 뭉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는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로, 말년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에는 결핵이라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들라크루아, 녹색조끼를 입은 자화상, 1860, 루브르박물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11세 경 결핵성 늑막염을 앓았습니다. 당시에는 회복했지만 16세경 결핵은 재발했고, 모딜리아니는 결핵 때문에 1차 세계대전 때 군대에 지원했으나 징집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로 건너가 조각을 배웠지만 체력도 부족했고 작업 중에 발생하는 먼지 등이 폐에 좋지 않아 조각을 그만두고 그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분방했던 그는 알코올 중독이었고 마약에 손을 댔습니다. 결핵은 재발했고 1914년 이후로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결국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뇌막염으로 사망했습니다. 결핵성 뇌막염은 치료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당시에는 결핵약이 없었기에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죽기 한 해 전,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마르고 핏기 없는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했을까요? 핏기 없는 얼굴과 처진 눈이 슬퍼 보입니다.


모딜리아니, 자화상, 1919, 상파울루 현대미술관


젊은 시절의 모딜리아니와 죽기 전의 모딜리아니 (출처, Wikipedia)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결핵에 걸리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누나가 결핵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5세경 어머니를, 15세경 누나를 잃었습니다. <아픈 아이>는 결핵을 앓았던 누나를 모티브로 그린 것인데, 뭉크는 이 주제로 총 6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에게 누나의 죽음은 아무리 여러 번 그려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었나 봅니다.


좌측의 첫 번째 그림은 채색이나 붓터치가 세밀하지 않고 조금 거친데, 우측의 그림은 훨씬 더 정교하게 그렸습니다. 우측 그림의 아픈 소녀는 피가 묻은 손수건을 쥐고 있어 객혈을 한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그림 1. 뭉크, 아픈 아이, 1886,오슬로 국립 미술관   그림 2. 뭉크, 봄, 1889, 오슬로 국립 미술관



결핵균이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면 폐에서 증식하며 염증반응을 일으키는데, 대개 증상이 없어 감염사실을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일단 들어온 결핵균은 1차 감염부위에서부터 림프, 혈액을 통하여 다른 신체부위로 전파됩니다. 소아의 경우 폐결핵을 넘어서 혈액을 타고 속립성 결핵이나 결핵성 수막염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1차 감염부위를 원발 복합체(Gohn Complex)라고 하는데, 처음 균이 안착된 폐 부위와 주변 림프절염을 말합니다. (그림 12-9)


원발 복합체 중 원발부위는 섬유화 또는 석회화를 통해 치유되나, 병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폐렴이나 흉막염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림프절 부위는 일부 치유되나 완전하지 않아 결핵균이 수십 년간 생존할 수 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경우도 11세 경 원발부위는 흉막염까지 진행했다가 치유되었지만 림프절 등에 결핵균이 살아 있다가 말년에 재발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핵균이 들어와 증상 없이 수개월에서 수년간 잠복 상태로 우리 몸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잠복결핵이라고 하며, 감염된 사람의 5-10%가 2차성 또는 재활성 결핵으로 발병합니다. 질환으로 이행하는 데에는 나이가 가장 중요한 인자입니다. 1세 미만에서 50%, 1-2세는 20-30%, 5-9세 2%로 낮아지다가 10세 이후 다시 10-20%로 상승합니다. 5세 미만, 최근 감염인 경우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결핵감염으로부터 결핵증상을 동반한 질병으로 진행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양한데, 속립 결핵과 뇌수막 결핵은 대개 2-6개월, 빠르면 4-6주 내에도 발생합니다. (그림 12-10) 폐 외 부위의 결핵은 성인보다 소아에서 더 흔하여 전체 결핵 중 소아는 25-35%, 정상 면역 성인에서는 약 10% 정도입니다. 3)


가래 검사에서 양성인 가족에게 장기간 노출된 소아가 결핵균에 감염될 확률은 60-80%로, 결핵 유행지역에서는 15세까지도 가족 내 노출이 중요한 전파경로입니다.


1차 감염이 생기고 1년 이상 경과한 후 발생한 폐결핵은 병변에 존재하던 균들이 재활성화되어 발병합니다. 소아에서는 드물지만 청소년과 젊은 성인에서는 흔합니다. 대개 폐의 가장 윗부분에 침윤이나 공동(cavity)을 형성합니다.


소아는 결핵에 걸려도 분비물이 많지 않고 성인처럼 가래를 뱉을 수 없으므로 가래 검사로 진단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결핵에 노출된 과거력이 가장 중요하고 피부 반응 검사나 X-ray 소견, 증상 등을 통해 진단할 수 있습니다.


결핵의 치료는 항결핵제를 사용하는 것인데, 집중치료기에는 많은 균을 신속히 제거하기 위해 다제를 사용하고, 유지기에는 나머지 균을 박멸하는 것으로 적은 수의 약제를 사용합니다. 소아 결핵은 성인으로부터 전염된 것이므로 성인의 결핵균 감수성 및 치료 반응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성인이 다제 내성균 결핵에 감염되었다면 가족 내 소아 역시 다제 내성균으로 간주하고 치료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4)


우리나라의 결핵은 꾸준히 감소해 왔지만 안정된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습니다. 2017년 보고에 따르면 1위는 대한민국(70명/10만 명), 2위 라트비아(32/10만 명), 3위 멕시코(22/10만 명)로 2,3위 국가와 차이가 많이 납니다. 3)




결핵은 저에게도 가슴 아픈 질병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청소년기에 가족들과 떨어져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위생이나 환경, 영양 상태도 좋지 못해 결핵에 걸렸지만 잘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결핵이 발견되었지만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 제대로 치료받지 않고 약을 중단했습니다. 어쩌면 가족의 따뜻한 돌봄 대신 낯선 친척집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야만 했던 시절에 대한 원망과 분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로 인해 10-20년 후 다제내성 결핵, 만성폐질환, 2차 진균감염 등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폐를 절제해야 했고, 아버지와 저희 가족은 많은 괴로움을 겪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병원의 진료실과 병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네요.


의사들은 결핵을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질병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진단하기 어려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뜻이겠지요. 오랜 시간 서서히 진행하기에 처음부터 확실히 진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병원에서 보았던 결핵의 모습은 천 개의 얼굴까지는 아니었지만 다양했습니다.


결핵약을 임의로 중단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는 한쪽 기관지가 완전히 막히고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왔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20대 여성은 백지장 같은 피부에 체구가 작고 깡마른 몸으로 전신에 퍼진 속립성 결핵이 되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체구가 너무 작아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조차 가슴 아팠습니다. 건강에 신경 쓸 겨를이 없던 중국동포들은 결핵에 자주 걸려서 왔습니다. 마른 체형으로 쉴 새 없이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교실에서 부대끼며 생활하는 고등학생은 누구 한 명만 걸려도 쉽게 감염이 전파되어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결핵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양해도 거기에는 따뜻한 돌봄과 건강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공통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핵 치료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 것니다. 이 두 가지를 해결하는 것이 결핵치료의 핵심입니다.


Cristóbal Rojas The Misery,1886, 베네수엘라 국립미술관

베네수엘라의 화가 로자스가 결핵으로 죽은 이웃의 아내와 남편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는 당시 베네수엘라의 가난하고 비참한 환경으로 사람들이 결핵에 걸리고 죽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결핵은 오랜 세월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이지만 이제는 인간의 노력으로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국가 최소한의 돌봄, 위생과 영양, 보건의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고 약을 잘 복용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함께 관리하는 것이 하얀 죽음을 막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여러 번 그림으로 표현했던 뭉크처럼 저도 오늘은 글을 통해 슬픔을 녹여봅니다. 감사합니다.



커버이미지


크리스티안 크로그, (Christian Krohg, 1852-1925), 아픈 소녀, 1880-1881, 오슬로 국립미술관


크로그는 노르웨이의 사실주의 화가로 현실 속 가난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는 뭉크처럼 어머니와 여동생을 결핵으로 잃었고, 여동생의 죽음을 모티브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5) 백지장처럼 창백한 소녀의 얼굴과 경직된 표정, 무릎에 놓인 꽃의 꽃잎이 떨어지는 모양은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강했다면 너무나 예뻤을 소녀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참고문헌

1. History of tuberculosis - Wikipedia


2. Three Famous Artists & The Fatal Tuberculosis Disease - iTravelWithArt


3. 안효섭, 신희영. 홍창의소아과학. 12판. 미래엔, 2020.


4.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예방접종지침 2019.


5. Göran Wettrell, “The Sick Child” in Scandinavian art, Hektorama International, Vol 11 Issue 4, fall 2019.


이전 06화 디프테리아와 후두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