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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May 22. 2024

성매개질환의 희생양, 선천성 매독

다시금 부상하는 감염병

안녕하세요? 오늘은 매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2024년부 매독이 법정 감염병 4급에서 3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23년 일본에서는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매독의 급증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여 정부에서는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정 감염병은 1급부터 4급까지 분류하는데, 의료기관에서는 3급 감염병이 의심되면 확진이 되기 전이라도 보건소로 24시간 이내 신고해야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성매개 질환은 4급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매독은 올해부터 3급으로 상향조정되었습니다.


매독을 일으키는 균은 Treponema pallidum(트레포네마 매독균)라고 불리는 세균입니다. 여러 화가들을 비롯한 예술가들도 매독을 앓았고, 17-18세기 들어서는 매독을 주제로 한 그림도 많았습니다.


그럼 매독은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로, 아메리카 대륙과의 무역이 이루어졌고 유럽의 상인들이 뱃길로 오가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매독균을 옮겨 왔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러나 유럽 대륙에도 오래전부터 treponema 균이 존재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1)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1471–1528)는 매독에 걸린 남자를 그렸는데, 이는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던 상인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뒤러는 독일인이었지만 이탈리아에 긴 여행을 다녔고, 나폴리에는 그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syphilis라는 용어가 없어 매독을 French or Napolitan disease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Syphilis>라는 병명은 1530년 이탈리아 의사이며 시인인  G. Fracastoro의 시 제목인 “Syphilis or The French Disease”에서 처음 유래되었습니다. 시에 등장하는 소년의 이름에서 따 왔는데, 작가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으나 sys(돼지)+philos(사랑하다)로 해석한다면 성매개감염을 암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2)


알브레히트 뒤러, 1484, Syphilitic man


매독 감염은 시기에 따라 양상이 다릅니다. 1기(3개월 이내)에는 성기 부위에 통증 없는 궤양이 생기고,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지지만 2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2기에서는 손바닥과 발바닥에 붉은 반점이 생깁니다. 발열, 림프절 종대, 인후통, 체중감소 등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때에도 치료하지 않으면 매독 균은 수년간 체내에 잠복할 수 있습니다.



매독의 성기궤양과 발진, www.pcds.org.uk/clinical-guidance/syphilis


후기 잠복 매독은 별다른 증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3기로 넘어가면 다양한 장기에 병변이 생기고 말기에는 신경 매독, 심장 이상 등의 심한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매독은 시기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보이므로 다른 질환과 혼동하기 쉽고 진단하기 어렵습니다. 또, 임산부가 매독에 걸리면 태반을 통해 태아가 감염되고 유산과 사산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태어난 신생아에게는 선천성 매독을 일으킵니다.


1900년대 들어 트레포네마 매독균이 매독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에 맞는 항생제 치료도 개발되면서 1940년대 이후 매독은 감소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 들어 매독은 지속적으로 증가추세였고, 미국 CDC의 보고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2년 사이 선천성 매독은 10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 중 대부분적절한 검사와 치료를 받았으면 예방할 수 있었고, 산전 진찰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산모 40% 정도였다고 합니다. 3)


https://www.cdc.gov

매독에 걸린 임산부가 치료받지 않고 아이를 낳으면 유산과 사산, 저체중아, 신생아 사망 및 선천성 매독 증상을 일으킵니다.  선천성 매독은 산전에 발견되면 산모에 정해진 치료와 추적 검사를 함으로써 태아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국내 의료체계는 접근성이 좋고 임신부들의 교육 수준이 점차 향상되고 있음에도 선천성 매독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4)


선천성 매독은 조기 선천성 매독과 후기 선천성 매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조기 선천성 매독은 생후 1주 이내 지속적인 비염이 나타난 후 피부 및 점막에 발진과 수포 등이 나타납니다. 저도 전공의 시절 선천성 매독 신생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피부에 울긋불긋한 반점이 있었고 저체중이었으며 무엇보다 콧물이 많았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려 수시로 석션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간과 비장이 커질 있고, 손목, 팔꿈치, 발목과 무릎 등에 뼈연골염이 생기고 통증 때문에 거짓마비 증세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중추신경계 이상, 성장 장애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조기 선천성 매독의 증상, www.healthgist.net


후기 선천성 매독은 생후 2년이 지난 후 뼈, 치아와 중추 신경계에 만성 염증으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각막이 혼탁해지면서 시력을 잃을 수 있고, 코뿌리의 함몰로 코가 납작해집니다. 청신경 손상으로 청력을 잃을 수 있고, 영구치 앞니가 톱니 모양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또 노인의 입술처럼 입 주위에 흉터가 주름처럼 생길 수 있습니다. 뼈막염이 지속되면서 이마뼈는 돌출되고 정강이 뼈에도 염증이 진행되어 뼈가 앞쪽으로 휘게 됩니다. 5)


제라드 드 래레스(Gerard de Lairesse, 1641–1711)는 벨기에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화가로 선천성 매독을 앓았습니다. 그는 결국 이로 인해 1690년 경 시력을 잃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고, 예술이론에 대해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의 초상화에는 함몰된 코와 돌출된 이마 등이 표현되어 있어 후기 선천성 매독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누구보다 굴곡이 많았을 인생을 성숙한 태도로 잘 극복해 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다른 외모지만 조롱하는 시선 없이 존엄하게 그린 초상화에서, 래레스를 향한 렘브란트의 존중이 느껴집니다.


렘브란트, 1665, Gerard de Lairesse의 초상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8세기 영국의 화가 중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1697-1764)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호가스는 귀족 사회를 풍자하는 그림이나 판화를 제작했는데, 여기에는 매독에 걸린 창부나 귀족이 등장합니다. 호가스는 2기 매독의 특징인 피부 반점 또렷하게 그렸습니다. 실제로 매독의 피부 반점이 그런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삽화처럼 그리다 보니 분명하게 표현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보면 병변이라기보다는 낙인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가 없던 시절 스토리가 있는 연속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중 <정략결혼(Marriage a la mode)>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부유한 상인 집안의 딸과 가난한 귀족 집안의 아들이 만나 신분과 재산을 거래하듯 결혼하고,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사랑 없는 결혼을 한 여성은 결혼 전부터 사귀던 변호사와 외도를 하고, 남성은 문란한 생활로 매독에 걸려 부인에게 매독을 옳깁니다. 화가는 둘 사이에 낳은 아이 역시 선천성 매독에 걸렸음을 알려줍니다.


백작부인과 내연 관계였던 변호사는 바람둥이 남편을 살해했고 죄가 드러나 처형당합니다. 백작 부인은 연인이 죽었음을 알고 결국 자살하는데요. 이때 어린 딸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려 울고 있습니다. 자세히 확대해 보면 얼굴에는 반점이 있고, 다리에는 철심이 있는 보조기를 착용했습니다. 아이가 공중에 버둥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제 눈에는 마치 구루병 아동처럼 다리가 짧고 휘어 보입니다. 선천성 매독의 특징인 뼈막염을 앓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래레스의 초상화가 후기 선천성 매독의 특징을 보여준다면, 호가드의 그림은 조기 선천성 매독의 특징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보조기를 보면 당시 선천성 매독 아동이 어떻게 치료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호가스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월리엄 호가스, 1743-45, <정략결혼> 중 '백작부인의 자살', 런던 내셔널 갤러리







선천성 매독에서 보이는 반점(좌), 뼈의 염증으로 휘어진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한 모습(우)


선천성 매독을 예방하려면 모든 임산부는 임신 초기에 매독 검사를 시행하여야 하며, 위험지역에서는 28~32주 경과 분만 전에 두 번 더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임신 20주 이후 사산한 경우에도 매독검사를 시행하여야 합니다. 6)


오늘날 매독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항생제와 피임 도구가 발달했다면 당연히 줄어들어야 할 질병이 오히려 늘고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즉석 만남 어플' 등이 상용화되면서 무분별한 성관계가 많아진 것을 원인 중 하나로 들어 설명합니다. 또, 파트너의 매독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에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피임약만 사용하면 점막을 통해 감염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 외 이주 이민, 해외여행의 증가 등을 원인으로 들지만 어느 한 가지 요인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산전진찰을 잘 받았지만 배우자 또는 성적 파트너가 치료받지 않아 재감염되는 경우도 있어 원인은 다양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임신 초기 매독 검사에서 음성이었더라도 28-32주 경, 그리고 분만 전에 2회 더 시행하는 방법과 임산부의 배우자, 또는 성적 파트너를 반드시 치료받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4,6)


성경에는 '아버지의 죄를 자식이 받는다' (The sins of the fathers will be visited upon the children, 출애굽기 34장 7절)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호가스의 그림 속 아이는 부모의 죄를 받은 것일까요? 스마트폰과 AI가 우리 삶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21세기에도 부모의 죄가, 부모의 병이 자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은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국가에서 매독을 3급 법정 전염병으로 상향조정한 것과 더불어 매독 감염과 선천성 매독이 왜 증가하는지 당국에서 세밀하게 분석하고, 적극적인 산전 진찰과 선별 검사, 임산부와 파트너에 대한 치료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호가스의 그림 속 우는 아이는 어른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해 신체와 정서가 모두 상처받았습니다. 21세기의 아동은 적어도 그 아이보다는 건강하고 덜 불행하기를 기도합니다.  




커버이미지, 뭉크, 1897-99, <유전(inheritance)>, 오슬로 뭉크 미술관


뭉크는 파리의 생 루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성매개 질환 때문에 한 여성이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시 병원 내 박물관에는 밀랍으로 만든 선천성 매독 아동의 모형 또한 있었는데, 뭉크는 이것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린 것 같습니다. 아이는 섬뜩할 정도로 핏기가 없고 반점으로 가득합니다. 어머니의 치마에도 규칙적 무늬가 있는데 매독의 반점과 사회적 낙인을 연상시킵니다. 당시에는 어머니와 아이의 그림에 성매개 질환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뭉크는 아버지의 죄를 받은 아이라고 언급했다고 하는데, 호가스와 같은 생각이었을까요? 매독을 죄라고 여기면 성경 말씀을 피할 길이 없어지니, 그냥 감염병으로 받아들이고 의학적, 사회적 접근과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1. en.wikipedia.org/wiki/Syphilis.


2. Filippo Pesapane, Stefano Marcelli, Gianluca Nazzaro. Hieronymi Fracastorii; the Italian scientist who described the "French disease". An Bras Dermatol. 2015 Sep-Oct; 90(5): 684–686.


3. www.cdc.gov/std/treatment-guidelines/syphilis.


4. Narae Lee, Mun Hui Jeong, Seong Hee Jeong, Mi-Hye Bae, Young Mi Han, Kyung-Hee Park et al. Congenital Syphilis in Neonate: A Single Center Study for 10 Years. J Korean Soc Matern Child Health 2021;25(3):204-210.


5. 안효섭, 신희영. 홍창의소아과학. 12판. 미래엔, 2020.


6. Tak Kim. Treatment and Management of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 J Korean Med Assoc 2008; 51(10): 884 -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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