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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n 05. 2024

모유의 의미

모유는 모성과 같은 의미일까?

안녕하세요?

오늘의 주제는 모유수유입니다.

 아기의 탄생과 함께 아기를 먹이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육아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모유수유는 소아청소년과의 단골 주제이고,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모유수유 홍보대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모유는 각종 감염성 질환과 알레르기 질환을 감소시키고, 아이의 영양과 두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엘 그레코, 1595, <성가족(Holy Family), 톨레도 타베라 병원


모유수유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은 대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주제로 한 종교적 그림이 많습니다. 위의 그림은 그리스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르네상스 시대 화가 엘 그레코(본명 Doménikos Theotokópoulos, 1541–1614) )가 그린 <성가족>, Holy Family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젖을 먹이는 자세는 수유 자세 중 가장 흔한 요람 자세(cradle position)인데, 아기 예수가 너무 내려가 있어 위태로워 보입니다. 올바른 모유 수유 자세로 교정해 본다면 성모 마리아의 오른팔은 아기 예수를 충분히 감싸 안아 팔꿈치에 아기의 머리가, 손에 아기의 엉덩이가 도록 해야 합니다. 아기의 머리와 등은 일자가 되어야 편하게 수유를 할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입술이 뒤집어진 모양이 되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성모 마리아를 향해 위쪽으로 바짝 붙합니다.


그러려면 요셉처럼 아기의 발을 잡을 것이 아니라 아기의 등과 양쪽 어깨를 지그시 눌러줍니다. 처음 모유수유를 할 때 아기의 머리를 밀착시키기 위해 뒤통수를 밀면 숨이 막혀 버둥거릴 수 있습니다. 아기는 머리를 살짝 뒤로 젖혀야 입을 힘껏 벌리고 젖을 깊이 물 수 있습니다. 1) 엄마는 아기 쪽으로 숙여서 다가가기보다 무릎에 쿠션이나 발 밑에 발판을 대 주는 것이 좋습니다.


모유 수유 자세 (요람자세, 교차요럄자세, 풋볼자세, 뒤로 기댄 자세, 옆으로 누운 자세)


신비로움의 대상여신의 모유수유 장면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이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 틴토레토(Tintoretto 또는 Jacopo Robusti,1518-1594)가 그린 <은하수의 기원>입니다.



자코포 틴토레토, 1575, <은하수의 기원>, 내셔널 갤러리 런던


바람둥이 제우스 외도로 낳은 헤라클레스에게 몰래 젖을 먹이려고 헤라가 자는 사이 모유수유를 시도합니다. 이때 헤라클레스가 너무 세게 젖을 빨아서 헤라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물러납니다. 모유가 하늘로 흩뿌려지고, 이것이 은하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는 자세를 논하기 조금 어려운데, 헤라가 앉아 있었다면 풋볼 자세에 가깝겠지만 옆으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면 누운 수유 자세에 가깝습니다. 풋볼 자세는 엄마의 옆구리 사이에 아이를 두고 먹이는 자세로 미식축구를 할 때 공을 잡는 자세와 비슷한데, 제왕절개를 해서 배에 무리를 주지 않아야 하거나 쌍둥이를 먹여야 할 때 좋은 자세입니다.



오라지오 젠틸레스키, 1620, 이집트로 가는 길의 휴식, 버밍햄 미술관


성경 속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그림 중 모유수유를 그린 그림이 또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젠틸레스키(Orazio Lomi Gentileschi,1563–1639)의 이집트로 가는 길의 휴식(The rest on the flight to Egypt)입니다. 어느 날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헤롯왕은 아기 예수를 찾기 위해 나라의 아기들을 모두 죽이려고 할 테니 이집트로 피신하라'라고 말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는 길에 잠시 쉬며 젖을 물리고 있습니다. 요셉은 지쳐 쓰러져 있고 당나귀도 눈을 붙이고 있지만, 마리아는 이 순간에도 쉬지 못하고 수유를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아기를 거의 세워서 수유를 하고 있는데, 의자도 쿠션도 없는 차가운 바닥에서 먹이려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가 먹다가 자주 토하거나 트림을 잘하지 못한다면 세워서 먹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런 이유라기보다는 기댈 곳이 없는 길바닥이기에 한쪽 손으로 땅을 짚고 버텨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상주의,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 일상의 풍경을 그리게 되면서 성모 마리아나 여신이 아닌 평범한 여성의 모유수유 장면을 그린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1841-1919)모유수유 장면을 그렸는데, 제목을 <모성>이라고 붙였습니다. 림 속 주인공은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다가 부인이 된 앨린(Aline Victorine Charigot 1859-1915) 그들의 첫 아이 Pierre 입니다. 앨린은 오른발을 발판에 올리고 있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요람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손은 아기의 등까지만 감싸고 있습니다. 아이는 한 손으로 발을 움켜쥐고 있어 여유로워 보이는데, 모유수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아이의 자세 같습니다.


르누아르, 1885, <모성>, 오르세 미술관


18세기 유럽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생겨나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유모(Wet nurse)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유모란 주로 경제적 대가를 받고 남의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경우를 말합니다. 유모는 기원전부터 존재했는데 왕실이나 귀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엄마의 질병 등으로 모유수유가 원활하지 않을 때 대체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의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영아 사망률과 모성 사망률이 높았고, 엄마 없는 아기, 아기 잃은 엄마가 존재했기에 유모가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부유한 상인, 의사, 변호사 등 부르주아 계급이 생겨나자 유모를 고용하고 그 시간에 남편의 일을 돕거나 가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이었기에 부르주아 계층의 부인들은 관습적으로 유모를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2)


18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산업혁명이 도래하자, 저소득 가정의 여성들도 바깥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생활비는 비싸고 노동자의 임금은 그에 비해 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유모를 두는 문화는 저소득 가정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유모가 일반 남성 노동자보다 급여를 더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소작농의 부인들이 유모가 되어 아기를 돌보게 되자, 국가는 유모의 자격을 법제화하고 영아가 사망 시 담당 유모가 신고를 하도록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기는 첫 3년 정도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유모의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아이들은 영아 사망률이 80%에 이르기까지 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3) 당시에는 진정제로 잘못 알려진 마약류 시럽들이 양육자에 의해 아기에게 투여된 충격적인 일이 있었는데, 원래 영아사망률이 높다보니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었습니다. 19세기 들어 조제분유와 젖병이 나오기 시작하고 20세기 들어 상용화 되면서 유모제도는 사라졌습니다. 2), 3)

 

자니스 로젠탈, 1905, 엄마와 아이, 라트비아 국립 미술관


라트비아의 화가 자니스 로젠탈(Janis Rozentāls,1866-1916) 역시 모유수유하는 아내 엘리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엘리는 핀란드의 가수로 두 사람은 깊이 사랑하여 결혼했습니다. 엘리의 수유자세는 요람 자세에 가깝지만 뒤로 살짝 기대어 있는데, 다음 그림처럼 뒤로 기댄 자세*는 아기를 안아주면서 잘 밀착시킬 수 있습니다. 모유량이 많고 너무 콸콸 나오는 경우에도 뒤로 기대면 아기가 사레에 덜 들리고 먹을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그림은 아기 예수의 얼굴과 표정이 드러나도록 자세히 그린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은 아기보다는 엄마에게 조금 더 비중을 두어 그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화가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그린 것일까요?


* 뒤로 기댄 자세, Common breastfeeding positions | UNICEF Parenting





여성 화가가 그린 모유수유 그림도 있습니다.

덴마크의 화가 베르타 웨그만(Bertha Wegmann, 1846-1926)은 쌍둥이를 안고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을 그렸습니다.

베르타 웨그만, 연도미상, 쌍둥이를 수유하는 젊은 여인


장소는 실내가 아니라 옥수수 밭인데, 여의 옷차림을 보아 밭에서 일을 하다가 온 것 같습니다. 한 아이를 요람자세로 먼저 먹이고 다른 아이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애틋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쌍둥이는 따로 먹일 수도 있고 동시에 먹일 수도 있는데, 따로 먹이는 것은 산모에게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동시 수유를 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양쪽 젖을 번갈아 먹이는 것이 원활한 모유 수유를 위해 좋습니다. 아기가 먹고 비워야 또 채워지는 원리니까요. 동시 수유를 하려면 편안한 쿠션과 함께 풋볼 자세가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풋볼 자세로 쌍둥이를 수유하는 모습, www.twiniversity.com


모유는 분유처럼 양을 잴 수 없는데, 모유량이 충분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모유이 충분한지 확인하려면 아기의 체중과 소변 기저귀 개수,그리고 아기의 수유 후 상태를 보면 됩니다. 신생아는 출생 직후에는 체중이 감소하다가 첫 주 안에 회복하면서 1주일에 150-200gr 씩 증가합니다. 생후 1주일이 지나면 하루에 최소 6개 이상의 소변 기저귀가 나오, 아기가 수유를 마치만족하고 놀거나 푹 잔다면 수유량이 충분한 것입니다. 1)


밤중에 모유 수유를 꼭 해야 할까요?


밤중수유를 하면 모유가 더 빨리 늘게 됩니다. 수유를 하게 되면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아기가 모유를 먹은 후 다음 수유를 위해 모유를 만드는데 작용합니다. 아이가 젖을 빨게 되면 프로락틴 분비가 많아지고, 모유를 생산하도록 명령합니다. 프로락틴은 특히 밤에 많이 분비되므로, 완전 모유수유를 한다면 밤중 수유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출산 후에는 몸이 많이 약해지고 엄마도 충분히 쉬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아기는 밤낮의 구분이 없어 2-3시간마다 깨지만 어른은 그렇지 않으므로 밤중 수유는 엄마와 아이의 욕구가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모유 수유는 신성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 여신 헤라의 모유 수유는 별자리의 기원에 바탕을 둔 신화의 성격을 띱니다. 그러나 평범한 여성들의 모유 수유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적 계급의 형성,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말 조제분유가 시판되기 시작한 이후 모유 수유율이 계속 감소하여 2000년 경에는 OECD 최저치를 기록하다가, 이후 10년간은 서서히 증가했지만 그 후 10년간은 다시 감소하였습니다. 4) 2010~2020년 국내 영·유아 933명의 모유 수유 추이를 분석한 결과, 혼합수유를 포함하여 모유를 6개월 이상 먹은 아이 비율이 10년 사이 65.9%에서 33.6%로 감소했습니다. 생후 6개월간 모유만 먹인 <완전 모유 수유율>은 42.8%에서 13.1%를 기록했습니다. OECD 국가와 비교해도,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최저치에 가깝습니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은 경우, 과거 모유수유 경험이 있는 경우, 지난 1년간 술을 마시지 않은 경우, 출생체중이 2.5kg 이상인 경우 6개월간 완전 모유수유율과 상관관계가 높았다고 합니다. 5)




르누아르는 수유장면을 그린 그림에 모성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그것은 그가 자신의 아내와 아이로부터 느낀 정서였을 것입니다. 로젠탈 역시 사랑하는 아내가 아이에게 수유하는 장면을 보고 사랑을 담아 그림을 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모유는 모성과 동일어가 아닙니다. 모유수유를 방해하는 환경에서는 모성도 자리 잡기 어려울 수 있지만, 모성이 충분해도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극심한 저출산 시대에 모유의 의미를 논하는 것이 어쩌면 사치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소아과학회(AAP)는 HIV 감염 산모 중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를 받고 있고 부모의 바이러스 농도가 50 copies/ml 이하로 억제되어 있다면 모유수유를 통해 HIV에 감염될 확률은 1% 미만으로, 산모가 모유수유를 원할 경우 상담과 지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AAP는 모든 HIV 감염 산모에 대해 모유 수유를 권장하지 않았습니다. 모유를 먹일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산모도 모유를 먹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모유를 모성이 아닌 모유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유수유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의 고된 노동으로 여겨지던 시대의 이미지에 매몰되지 말고, 모유의 의학적인 장점을 충분히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질병,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모유를 먹이지 못한다고 해서 이 시대의 엄마들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타인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유는 모유지 모성의 지표는 아니니까요. 오늘도 그림과 소아청소년과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커버 이미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590, <리타의 성모(Madonna Litta)>, 성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이 그림은 모유수유를 언급할 때 흔히 인용되는 그림입니다. 다 빈치의 제자들이 공동으로 그렸다는 논란이 있지만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다 빈치의 작품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리타 백작가문이 소유했기에 리타의 성모라고도 부릅니다. 마리아의 유방이 다소 높은 위치에 있는데, 이를 두고 성적인 의미가 배제된 모유 수유의 기능적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의 진짜 매력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만으로 채운 단순한 구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림에는 아기와 엄마만 있을 뿐,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모유 수유를 방해하는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모유가 얼마나 좋은데 모유를 안 먹이냐는 시선보다는 다 빈치의 그림처럼 엄마와 아이가 모유 수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거나, 모유를 먹이지 못할 사정이 있더라도 엄마가 아이와 애착형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와 실질적 도움을 주는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외래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의료진과 모유수유 상담을 할 수 있는 제도가 허용되기를 오랫동안 요청해 왔습니다. 부디 저출산 시대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결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1. 대한 소아청소년과학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위한 육아상담지침서, 출생 전부터 첫돌까지, 2019.


2. Emily E. Stevens,Thelma E. Patrick,Rita Pickler. A History of Infant Feeding. Journal of Perinatal Education Spring 2009: 32–39.


3. https://en.wikipedia.org/wiki/Wet_nurse


4. Sung-Hoon Chung,Hye-Ryun Kim,Yong-Sung Choi,Chong-Woo Bae. Trends of Breastfeeding Rate in Korea (1994-2012): Comparison with OECD and Other Countries. J Korean Med Sci 2013; 28: 1573-1580.


5.  Jeana Hong, Ju Young Chang,Sohee Oh. The Current Status of Prolonged Breastfeeding and Its Related Factors in Korean Infants and Their Mothers:  A Nationwide Cross-Sectional Study. J Korean Med Sci. 2023 Aug 21;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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