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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May 30. 2024

예방접종의 빛과 그늘

안나 앙케의 예방접종

현대 의학에서는 역사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예방접종의 발도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소아청소년기는 감염 질환의 발병이 가장 많은 시기로 항생제로 해결되지 않는 바이러스 질환까지 고려하면, 예방접종은 영아와 소아의 사망률을 낮추는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부모들에게는 소아청소년과에 가서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맞히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19세기 사람들에게 아플 때만 갔던 병원을 건강할 때 방문해서 주사를 맞는다는 것은 신기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순간을 포착해서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덴마크의 화가 안나 앙케(Anna Ancher,1859-1935 )가 그린 <예방접종>입니다.



Anna Ancher, 1899, 예방접종, 덴마크 스카겐 미술관


안나 앙케는 덴마크의 화가로, 스카겐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안나 앙케는 화가 남편 미카엘 앙케(Michael Peter Ancher, 1849-1927)와 함께 덴마크의 어촌마을 스카겐에서 빛과 자연을 찾아 모여든 화가들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공유하며 평생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시 유럽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결혼한 여성이 화가로서 자리 잡는 것은 어려운 알이었습니다. 러나 남편 미카엘 앙케는 화가로서 아내의 삶을 존중하고 격려하며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스카겐 공동체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 안나 앙케는 덴마크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기록됩니다. 앙케 부부는 덴마크 지폐에 역사적 인물로 함께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안나 앙케와 미카엘 앙케


<예방접종>은 1899년 안나 앙케가 코펜하겐의 Charlottenborg 봄 전시회에 출품한 것으로, 전시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전시되기 전 이미 스웨덴의 수집가에게 그림이 팔렸다고 합니다. 2013년까지는 개인소장 중이었다가 이제는 스카겐 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당시 덴마크에서는 1899년부터 모든 아동에게 7번째 생일이 되기 전까지 천연두 접종을 의무적으로 시행했다고 합니다. 1) 그림의 장소는 안나 앙케가 살던 스카겐으로 추측되며, 그녀는 이 그림을 위해 클리닉에서 직접 스케치를 하고 습작을 통해 수정하며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Anna Ancher, <예방접종>의 습작들, 스카겐 미술관

질병의 처치 장면을 그린 그림과는 달리 의료진이라고는 의사 한 명 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 건강해 보이는 아이 엄마들입니다. 의사의 뒤쪽으로 소매를 내린 여자아이가 있는데, 상완에 주사자국*(아래 사진의 두 갈래 바늘 모양과 일치)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접종을 맞은 것 같습니다. 소녀는 맞은편 남자아이와 예방접종의 경험을 모험담처럼 나누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뒤로는 편하게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어머니와 아기들이 있습니다.


* 당시 접종에 사용되었던 바늘(www.wikipedia.org)


그림의 왼편에는 창을 통해 환한 빛이 들어옵니다. 이 빛은 표면적으로는 진료실을 밝게 유지해 주지만, 의미를 확장해 보면 접종으로 인해 지역의 공중 보건과 삶의 질이 나아짐을 의미하는 밝은 빛처럼 느껴집니다. 안나 앙케는 <예방접종> 이후로 병원이나 의술에 관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에, 예방접종을 의학적 처치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삶과 사건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Ernest Board(1877-1935), 천연두 접종을 최초로 시행하는 제너박사, 1796, Wellcome Collection


오늘날과 같은 예방접종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1798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는 우두 바이러스를 이용한 천연두 예방법을 개발하여 최초로 백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전까지는 인두법(variolation)으로 천연두 예방접종을 시도했는데, 천연두 환자의 병변 부위에 직접 상처를 내고 그 증 물질을 건강한 사람에게 주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천연두 질환을 약하게라도 앓게 되기에 방하려다가 오히려 병에 걸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제너 박사 역시 어릴 때 인두법을 시행받은 뒤 심하게 증상을 앓았다고 합니다. 2)


제너는 소젖 짜는 여인들이 천연두를 약하게 앓는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소젖 짜는 여인의 손에 생긴 우두 바이러스 물집의 고름을 다시 사람에게 주입하는 방법으로 천연두 예방접종을 시도하였습니다. 우두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유사하므로 일종의 교차면역을 시도한 것입니다. 제너의 방법은 인두법보다 성공적이었고 이후 많은 유럽 국가에서 천연두 접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있어 예방접종을 의미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소를 가리키는 vacca에서 유래했습니다. 일부에서는 horsepox, 말의 천연두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같은 원리로 제조하기도 했습니다. 3) 천연두는 꾸준한 접종과 위생 개선 등으로 1980년도에 지구상에서 사라진 질환이 되었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의 예방접종표 변화를 살펴보면 1975년에 만들어진 접종스케줄까지는 종두라는 천연두 백신을 12개월, 4-6세, 11-13세에 맞았다가 1979년 스케줄부터 없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출처: 대한소아과학회 <예방접종지침> 제10판


천연두 예방접종 이후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공수병 불활성화 백신이 개발되고, 1921년 BCG백신이 개발되어 결핵 예방에 사용되었습니다. 1925년 이후부터는 파상풍, 디프테리아 톡소이드와 백일해 사백신이 활용되었고, 1949년 폴리오 조직 배양법이 개발되어 폴리오 사백신과 생백신이 개발되었습니다. 1950-60년대를 지나면서 홍역, 풍진, 볼거리(MMR) 백신이 개발되어 활용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 B형 간염 백신이 개발되었습니다. 4) 


백신은 항원의 제조방법과 특성에 따라 크게 약독화 생백신과 불활성화 사백신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생백신은 제너의 천연두 백신은 살아있는 우두균을 소로부터 채취했기에 생백신에 해당합니다. 생백신은 실제 균을 배양하여 백신을 만든 것으로, 인체에 투여되면 실제 질병에 걸린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며 면역을 유도합니다. 5) 


본격적인 천연두 백신은 백시니아(Vaccinia) 바이러스라는 균주로 만들습니다.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송아지의 피부에서 배양하여 만든 1세대 백신, 실험실에서 배양하여 인체 내에서 증폭될 수 있는 균주를 포함한 2세대 백신, 그리고 약독화된 균주로 인체에서 증폭되지 않을 수 있는 3세대 백신이 있습니다. 1세대와 2세대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3세대 백신에 비해 이상반응을 많이 겪었으며, 100만 명 당 1-10건의 사망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6) 오늘날 생백신의 예로는 MMR, 일본뇌염 생백신, BCG, 로타바이러스 백신 등이 있습니다.


사백신은 사멸된 병원체 또는 병원체의 일부인 항원 물질을 이용하여 만들었기에 실제 질환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충분한 면역을 유도하기 위해 생백신보다 많은 항원이 필요하고 여러 차례 접종해야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5) 사백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백신들에 해당하는데, DPT, 일본뇌염 사백신, B형 간염 백신 등이 있습니다.


예방접종의 대상질환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게 될까요?

과거에는 사망률과 후유증이 심각한 감염병만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과거에 비해 발병률은 낮아졌어도 다시 집단발생이 가능한 질환-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홍역, 풍진, 볼거리, 폴리오, 일본뇌염, B형 간염과 결핵 등이 대상입니다.


또 발생 빈도는 낮으나 심한 합병증이 올 수 있는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수막구균, 폐구균, 장티푸스와 같은 세균 질환과 수두, 인플루엔자, A형 간염, 공수병 등도 대상이 됩니다.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 새로 승인된 백신으로는 로타바이러스(2007년 로타텍)와 자궁경부암(2007년 가다실) 백신을 들 수 있습니다. 5) 코로나19 백신 역시 전 세계적 유행에 맞추어 최근에 개발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방접종은 집단 규모로 이루어지므로 백신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 소수의 부작용 사례나타납니다. 천연두 백신을 의무화한 영국에서는 종을 맞으면 소가 된다는 괴담이 돌았고, 일부 지역에서 접종 거부운동이 있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천연두 접종을 해야만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하자 법적 분쟁까지 일어나,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할 수 있다대법원 판례를 남겼습니다. 2)


2019년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SARS coronavirus-2)는 예방접종의 개발과 격리 및 감염병 치료로 대유행에서 지역사회 감염병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천연두를 예방접종으로 극복한 것처럼 일단은 인류와 과학의 성공처럼 보이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천연두 예방접종처럼 코로나 예방접종 역시 그늘이 있었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예방접종이다 보니 많은 인구 중 당연히 부작용 사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국가정책으로서의 집단접종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도>를 도입하여 국가예방접종으로 인한 이상반응이 발생한 경우에 진료비 보상과 장애나 사망에 대한 일시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의원회를 구성하여 피해보상심의를 합니다. 코로나19 예방접종 역시 다른 국가예방접종과 마찬가지로 이상반응신고와 피해보상 절차가 있었습니다.


24.1.16. 기준으로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은 98,100건이 있었으며 25.8%인 24,618건에 대해 보상이 이루어졌습니다. 2023년 9월 제도를 개선하여 사망일시보상금 신청자 2,067명 중 1,359명을 보상·지원 대상으로 결정하여 지원을 확대하였습니다. 6)


Vicente Borrás Abella, 1900, 예방접종, 프라도 미술관


빈센트 보라스 아벨라(Vicente Borrás Abella,1867-1945)는 스페인의 화가이자 복원가로 초상화와 풍경화 등을 그렸습니다. 그는 안나 앙케와 비슷한 시기에 <예방접종> 장면을 그렸는데, 특이하게도 예방접종하는 장면에 말이 등장합니다.


Manuel González Santos, 1900-05, 예방 접종센터, 프라도미술관


 또 마누엘 곤잘레스 산토스(Manuel González Santos,1875-1949) <예방접종센터>라는 그림에는 송아지로 보이는 동물이 등장하는데, 1세대 천연두 백신이라면 송아지의 피부로부터 얻어지므로 의료진과 함께 접종현장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상처를 붕대로 싸맨 동물과 접종을 맞는 아이들이 한 방에 공존하는 독특한 그림들이 탄생했습니다.


빈센트 보라스 아벨라의 그림에는  차려입은 붉은 옷의 여성과 아이가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그 뒤로 상대적으로 형편이 넉넉해 보이지 않는 여성과 아이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나 앙케의 그림과는 다른 풍경입니다. 화가는 부유한 아동이나 그렇지 못한 아동 모두 같은 예방접종을 받음으로써 보편적 의료행위와 복지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필수예방접종을 무료로 맞을 수 있도록 만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총 18종으로 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 권장하는 백신이 대부분 포함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예방접종이 보편적 복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방접종을 통한 보편적 복지에 앞서 소와 말  동물의 희생이 있었고, 대규모 예방접종에 따른 부작용과 소수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과학이 아무리 진보해도 언제나 그늘 존재한다는 점이 조금은 씁쓸합니다.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희생했던 동물과 피실험자들, 연구자들, 그리고 부작용으로 고통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참고문헌


1. skagenskunstmuseer.dk/en/works/a-vaccination


2. en.wikipedia.org/wiki/Smallpox_vaccine


3. José Esparza, Livia Schrick, Clarissa R.Damaso, Andreas Nitsche. Equination (inoculation of horsepox): An early alternative to vaccination(inoculation of cowpox) and the potential role of horsepox virus in the origin of the smallpox vaccine. Vaccine 35(2017);7222–30.


4. www.who.int/news-room/spotlight/history-of-vaccination/a-brief-history-of-vaccination


5.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예방접종지침 제10판 2021.


6.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예방접종 보도설명자료,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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