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얼굴과 다리에는 수포가 가득합니다. 깃털이 달린 큰 모자를 쓰고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어 제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양쪽에는 독수리가 그려진 문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매독에 걸린 남성’을 기록한 판화로, 독일의 의학서에 실렸습니다. 그림 속 남성은 경제적 대가를 받고 전쟁에 참여하는 용병(Landsknecht)으로 추정됩니다.
15-16세기 유럽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많아 용병이 필요했습니다. 뒤러는 이탈리아에 여행 갔을 때 나폴리에서 본 용병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1494년 나폴리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가 사망하자, 프랑스의 샤를 8세는 나폴리를 차지하고자 원정을 떠납니다. 각국의 용병으로 이루어진 샤를 8세의 군대는 매춘부들과 접촉한 뒤 매독에 걸리게 되고, 전쟁이 끝나고 흩어져 유럽 전역에 매독을 퍼뜨리게 됩니다. 당시에는 공식적인 병명이 없어 프랑스에서는 매독을 ‘나폴리 병’이라고 하고, 영국이나 독일은 ‘프랑스 병’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병을 두고 서로 남 탓을 한 셈이지요.
오늘날 매독은 첫 3개월 이내인 1기에는 성기 부위에 통증 없는 궤양이 생기고,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지지만 2기로 넘어가면 손바닥과 발바닥에 붉은 반점이 생깁니다. 이 시기 치료하지 않으면 매독 균은 수년간 체내에 잠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기로 넘어가면 다양한 장기에 병변이 생기고 말기에는 신경 매독, 심장 이상 등의 심한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뒤러의 판화 속 남성은 얼굴과 다리에 수포가 가득한데, 당시의 매독은 오늘날처럼 여러 단계와 잠복기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급성으로 심한 경과를 밟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는 감염병의 확산도 빠르고 폐렴 및 중증 질환으로 진행하여 사망률도 높았지만, 수년이 지나고 백신이 개발된 후에는 일반 호흡기 질환처럼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매독은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의 무역 상인들이 뱃길로 오가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매독균(Treponema pallidum)을 옮겨 왔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콜럼버스가 돌아온 스페인에 상륙한 매독균은 곧 프랑스로, 전쟁이 있었던 나폴리로, 인접한 유럽 국가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매독의 원인이 ‘별자리가 좋지 않아서’라고 믿었기 때문에 뒤러의 그림에는 별자리가 그려진 천체가 있습니다.
1530년 이탈리아 의사이며 시인인 프라카스토로(G. Fracastoro)는 “매독(시필리스, Syphilis) 또는 프랑스 병”이라는 시에서 처음으로 매독이라는 병명을 사용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시필루스(Syphilus)라는 양치기가 있었는데, 무더위와 가뭄에 태양의 신 아폴론을 원망한 나머지 아폴론의 제단에 양치기 신을 섬기기로 합니다. 이에 분노한 아폴론이 시필루스에게 벌로 치명적인 병을 내렸습니다. 프라카스트로는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치명적인 병을 Syphilis(매독)이라고 불렀습니다. Sys는 돼지를 뜻하고, philos는 좋아한다는 뜻이기에 돼지나 양을 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동물과 사랑을 나누는 ‘수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프라카스트로가 양치기 시필루스가 앓았던 병을 매독으로 부른 것은 트레포네마 균이 동물을 통해,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잉카제국에서는 라마의 교미가 원활하지 않아 목동이 이를 도와주다가 수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이 트레포네마 균 감염이 원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찌 됐든 구대륙과 신대륙은 분포하는 동물이 다르고, 인간에게 넘어온 감염병도 달랐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대륙간 감염병의 교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렘브란트, 1665, 제라드 드 레레스의 초상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렘브란트는 1665년 한 남성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처진 눈과 함몰된 코, 돌출된 이마, 입 주변의 붉은 피부 등 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았을 것 같아 보이는데요. 이 남성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놀랍게도 25세였습니다. 제라드 드 래레스(Gerard de Lairesse, 1641–1711)는 벨기에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화가로 선천성 매독을 앓았습니다. 임산부가 매독에 감염되면 태반이나 산도를 통해 아이가 감염되고 유산, 사산을 일으키거나 선천성 매독을 일으킵니다. 이 그림을 보면 래레스가 성매개 감염의 희생자로 신체적 고통은 물론 사회적 낙인까지 평생 고통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천성 매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래레스는 자신이 어떤 병을 앓았는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후대에 와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본 의사가 ‘래레스는 선천성 매독을 앓았을 것이다.’라고 추정합니다.
래레스는 화가 집안에서 태어나 신화나 역사를 그리는 고전주의 화가로 활동했지만, 50세 경에는 시력을 잃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이었지만, 그 덕분에 래레스는 예술이론을 연구하고 강의도 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1697-1764)는 18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독특한 화가입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영국에는 18세기 이전 이렇다 할만한 화가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18세기 들어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새롭게 떠오른 중산층은 귀족들만 누려온 어려운 역사화나 종교화 대신, 친숙한 주제를 다룬 실용적인 예술을 원했습니다. 호가스는 이러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호가스는 어린 시절부터 판화 공방에서 일했는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줄거리가 있는 그림을 연작으로 만들고, 사전 주문을 받아 판화로 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드라마나 웹툰을 연재하듯이 판화를 통한 획기적인 대량생산이었지요. 그림의 주제는 귀족 풍자와 사회비판이 많았고, 매독에 걸린 창부나 귀족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매독이 1기부터 시작해서 잠복기를 거치는 형태로 진화했기에 발진은 얼굴보다는 손이나 발에 나타났지만, 호가스는 인물이 매독에 걸렸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뒤러의 용병처럼 얼굴에도 발진을 그려 넣었습니다.
호가스의 연작 중 <정략결혼(Marriage a la mode)>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18세기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부르주아 층과 가난한 귀족이 신분과 재산을 거래하듯 정략결혼하는 세태를 비판한 작품입니다. 몰락한 백작 집안의 아들과 이름 없는 부유한 상인의 딸이 부모에게 떠밀리듯 결혼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결혼 전부터 사귀던 변호사와 외도를 하고, 백작은 문란한 생활로 매독에 걸려 부인에게 병을 옳깁니다. 여기서 죄 없는 희생양이 하나 생기는데,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선천성 매독에 걸리고 맙니다.
<정략결혼>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백작부인과 내연 관계였던 변호사는 바람둥이 남편을 살해했고, 죄가 드러나 처형당합니다. 백작 부인은 연인이 죽었음을 알고 비관해 자살하는데요. 이때 어린 딸아이가 죽어가는 엄마에게 매달려 울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얼굴에는 반점이 있고, 다리에는 철심이 있는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다리가 구루병 아동처럼 짧고 휘어 보입니다. 선천성 매독의 특징인 뼈막염을 앓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래레스의 초상화가 후기 선천성 매독의 특징을 보여준다면, 호가스의 그림은 조기 선천성 매독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어린 나이에 다리에는 보조기를 차고 필사적으로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이의 모습이 가엾고 슬픕니다. 귀족을 풍자하면서도 매독의 특징을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호가스의 날카로움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200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매독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매독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즉석 만남 어플' 등이 상용화되면서 무분별한 성관계가 많아진 것을 원인 중 하나로 들어 설명합니다. 또, 파트너의 매독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에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피임약만 사용하면 점막을 통해 감염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 외 이주 이민, 해외여행의 증가 등을 원인으로 들지만 어느 한 가지 요인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산전진찰을 잘 받았지만 배우자 또는 성적 파트너가 치료받지 않아 재감염되는 경우도 있어 원인은 다양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성경에는 '아버지의 죄를 자식이 받는다' (The sins of the fathers will be visited upon the children, 출애굽기 34장 7절)는 말이 있습니다. 호가스의 그림 속 아이는 부모의 죄를 받은 것일까요? 현대의학이 이토록 발전한 21세기에도 부모의 병이 죄가 되어 자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까요?
2019 코로나(SARS Coronavirus-2) 팬데믹 때에 아시아인종이 감염병을 퍼뜨렸다며 인종혐오로까지 확산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마치 매독을 두고 한쪽에서는 ‘나폴리 병’, 다른 쪽에서는 ‘프랑스 병’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이지요. 원래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존을 위협하는 대상’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혐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염병의 원인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여도 그것을 전파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양식입니다. 매독 역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무역,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1900년대 중반 페니실린의 개발로 매독은 줄어드는 듯했지만, 달라진 우리의 삶의 방식 덕분에 2000년대부터 매독이 다시 창궐하고 있습니다. 매독은 임신, 출산과 연결되어 있고 아이에게 병의 흔적을 장애처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새기며,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다시 한번 감염병을 이겨내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