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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n 26. 2024

아동을 그린 그림들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동을 그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전 그림 속 아동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예수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신성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 존재였습니다. 16세기 이후의 종교화와 비교해 보면 인물 표현이 사실적이지 않고 선이 딱딱하표현되어 있어 엄마와 아기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느낌은 아닙니다.


작자미상, 옥좌의 성모와 예수, 1280년대, 베를린국립회화관(Gemäldegalerie)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그림 속 아동은 로마 신화 속의 큐피드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Amorini라고 불렸지만 차차 성경에 등장하는 체루빔 천사의 모습을 한 Putti가 되었습니다. Putti는 대개 벌거벗은 학령기 이전 유아의 모습을 하고 날개가 있습니다.



라파엘로, <갈라테아의 승리>,1520, 프레스코, 로마 Villa Farnesina


왕실이나 귀족의 자녀들은 예외적으로 초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유한 가문의 일원 또는 상속의 대상으로 그림에 등장했지만, 자신의 존재보다는 어느 가문 소속인지가 중요했습니다. 또 놀거나 웃는 모습이 아니라 격식을 갖추어 옷을 입고 경직된 자세로 그림에 등장했습니다. 소아과학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소아는 단순히 몸이 작은 어른이 아니라 발달 단계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부유한 가문의 아이들은 그저 작은 어른(miniature adult)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1) 그림의 모델이 되기 위해 오랜 시간 서 있었을 텐데, 지금 같으면 아동 근로법 위반입니다.


코넬리스 데 보스(Cornelis de Vos), 엄마와 아이 , 1624,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Collection

주로 부유한 가문의 자녀가 초상화에 등장하던 시기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아동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17세기 스페인의 바로크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1617-1682)<거지소년(The young beggar)>입니다. 누더기 옷을 입고 있고 맨발인 거지 소년이 구석에 앉아 벼룩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년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환한 빛이 들어와 소년을 비춥니다. 소년은 언젠가는 햇살처럼 밝고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화가는 10세경 부모를 잃고 누나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는 종교화를 많이 그렸지만 거리의 부랑아, 걸인들처럼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 그렸는데,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외로웠던 경험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45-1650, 거지소년, 루브르 박물관


인상주의, 사실주의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화가의 자녀나 화가가 바라본 일상의 아동을 그린 그림이 등장했습니다. 아이들은 밝게 웃거나 일상을 즐기고 있으며, 개나 고양이 등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아동이 동물을 안고 있는 그림은 선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에 잘 부합됩니다.             



 메리 카사트, 1908, <고양이를 안고 있는 사라>, 개인소장           에두아르드 마네, 1861, <소년과 개>             


산업혁명 시대의 아동은 상반된 2가지 이미지로 그려졌습니다. 부르주아의 자녀들은 순수하고 낭만적인 이미지로 아동을 대표했지만, 가난한 아동들은 비참한 노동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영국에서 방직기의 사용으로 몰락한 직조공의 자녀들은 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했고, 제대로 먹거나 교육받지 못했습니다.


소설 <공장에서 일하는 소년, 마이클 암스트롱의 삶과 모험> 중에서, 1840

프란시스 트롤로프 (Frances Trollope,1779-1863)가 쓴 소설 <공장에서 일하는 소년, 마이클 암스트롱의 삶과 모험>은 영국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자, 특히 어린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최초로 표현했습니다. 트롤로프는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6세 아동이 노동하는 것을 보았던 경험을 살려 소설을 썼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일러스트를 보면 옷은 찢어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아동이 보입니다. 그 옆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쭈그리고 앉은 아동도 있습니다.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 덕분에 영국에서는 1844년 8-13세 아동은 하루 6시간 반까지만 일할 수 있도록 공장법을 개정하였습니다. 2)


데이비드 앨런(David Allan), 1780년대, Lead Processing at Leadhills,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위의 그림은 스코틀랜드의 화가 데이비드 앨런이 납 광산의 소유주인 James Hope-Johnstone 백작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린 것으로, 납 공정의 첫 단계인 납 부수기 과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림에 보이는 아이들은 9세 정도였다고 하며, 도구를 이용해서 납을 내려치고 있습니다. 1) 아동의 뒤쪽에는 백작과 부인이 서서 공정을 지켜보고 있군요. 초등학교 2학년 정도 아이들이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고 어른은 뒷짐을 지고 지켜보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5세 미만이거나, 18세 미만이면서 중학교 재학 중인 소아청소년은 근로자로 일할 수 없습니다. 예술 공연의 경우 13세 미만도 가능하지만, 2014년부터 만 15세 미만 아역 배우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밤샘 촬영을 할 수 없습니다. 15세 미만은 주 35시간, 15세 이상은 주 40시간까지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되었던 <순풍 산부인과>의 미달이 역을 맡았던 아역배우가 당시 촬영시간제한 법이 없어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유니세프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차별받지 않고 생존과 발달을 위해 지원받을 권리가 있으며, 아동 최선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여 결정하고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소아청소년의 진료에 있어서도 크게 4가지 의료 윤리원칙이 적용되는데, 첫째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자율성의 원칙, 둘째 환자에게 해를 가하지 않아야 하는 해악 금지의 원칙, 셋째 환자에게 최대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선행의 원칙, 마지막으로 최대한 공정하게 의료 자원을 분배하는 정의의 원칙입니다.


성인의 경우 자율성의 원칙이 강조되지만, 소아는 환아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결정하는 선행의 원칙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이 아동에게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부모의 의견과 대립할 수도 있고, 이때 의사는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3)


에델펠트, 1884, <해변에서 노는 소년들>, 아테네움


핀란드의 화가 에델펠트(Albert Gustaf Aristides Edelfelt 1854 –1905)는 고향인 포르보 군도를 배경으로 해변에서 노는 소년들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2013년 핀란드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뽑혔는데, 단순히 소년들이 노는 그림을 넘어 중요한 상징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핀란드는 오랜 시간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1917년 독립과 동시에 내전을 겪게 됩니다. 에델펠트의 그림 속 아이들이 바다에 띄운 배는 핀란드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염원을 상징합니다. 4)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을 겪은 우리의 아픈 역사와도 닮아 있는 핀란드에서 아동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에델펠트가 아이들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꿈꾼 것처럼, 우리도 아이들이 국가의 미래라고는 하지만 현재는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입니다. 과거 아동은 독립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근대에 들어 독립적이고 개별적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아동은 과도한 학습 경쟁에 노출되고 수면이 부족하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더 줄어들었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2학년 2231명을 대상으로 한 ‘2023 아동행복지수’ 조사에서 86.9%의 행복지수가 ‘하(下)’로 나타났습니다. 아동행복지수는 수면·공부·미디어·운동 등 4가지 생활영역으로 아동의 하루를 분석하고 권장시간과 비교해 일상 균형 정도를 산출한 것입니다.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2021년 4.4%, 2022년 7.7%에서 올해 10.2%로 꾸준히 늘었습니다. 행복지수가 낮은 아이들은 ‘늦은 수면, 집콕, 저녁 혼밥, 온라인 여가활동’ 등이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누구보다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행복이란 쾌락을 주는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것인지도 모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자고, 조금 덜 공부하고, 더 많이 뛰어놀며 가족과 한 끼를 같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꿈꿔 봅니다. 아이들의 그림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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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곤잘레스(Eva Gonzalés,1849-1883), Children on the Sand Dunes, Grandcamp, National gallery of Ireland


에바 곤잘레스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마네에게 그림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노르망디의 Grandcamp를 방문했을 때 이 그림을 그렸는데, 해변가에서 그 지역 아이들을 그렸습니다. 5) 아이들 옆에는 낚시를 한 것인지 모를 생선 바구니가 놓여 있습니다. 따로 꾸미지도 않고 화가를 의식하지도 않은 소박한 아이들의 모습이 한없이 정겨운 느낌을 줍니다. 화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렸듯이 우리도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참고문헌


1. www.nationalgalleries.org


2. ageofrevolution.org


3. 안효섭, 신희영. 홍창의소아과학. 12판. 미래엔, 2020.


4. 이은화, 북유럽 미술관 여행, 상상출판, 2024.


5. www.nationalgallery.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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