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에게 세상이란 마치 무대 위 조명을 받는 주인공 한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어둠 속의 관객인 듯합니다. 그런데 물에 비친 그의 모습은 실제보다 어둡고 나이 들어 보입니다. 물에 비친 그림자는 나르키소스의 미래모습일까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가 보는 이를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신비롭고 섬뜩한 느낌입니다.
카라바지오, <나르키소스>,1597-1599, 로마 국립고대미술관
나르키소스 신화를 다룬 카라바지오(Caravaggio,1571-1610)의 <나르키소스>입니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물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한없이 바라보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힘들어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카라바지오는 주로 성경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나르키소스처럼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그린 그림은 손에 꼽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물에 비친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원래보다 더 밝고 매혹적으로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티슈바인(Johann Heinrich Tischbein, 1722-1789)이 그린 나르키소스는 다소 놀라고 긴장한 표정인데, 물속에 비친 그의 모습은 눈을 살짝 내려 뜨고 입술이 살짝 벌어진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알고 보면 조금 소름이 돋습니다. 물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무엇을 보든 나르키소스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일까요?
티슈바인, 나르키소스, 1770, 독일 카셀 헤센 주립 미술관
나르키소스 신화에는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더 있는데, 메아리를 뜻하는 에코(Echo)입니다.
에코는 원래 수다쟁이 님프인데, 제우스가 다른 님프들을 희롱하는 동안 헤라에게 들키지 않도록 헤라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러나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는 분노하여 에코에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따라 할 수만 있게' 벌을 내립니다. 이후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헤라의 저주에 따라 그에게 먼저 말을 할 수 없고 마지막 말을 따라 하게 됩니다. 에코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나르키소스는 크게 화를 내고, 에코는 슬픔과 좌절감에 산속에 숨어 그를 바라보게만 되었습니다.
에코뿐 아니라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던 다른 님프들은 '나르키소스도 우리처럼 누군가를 애타게 사랑하고 그 때문에 사랑의 아픔도 느끼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고,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이를 듣고 나르키소스를 자신의 그림자와 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도록 벌을 내렸습니다. 나르키소스가 물에 빠져 죽은 자리에는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이 꽃을 수선화(Narcissus)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에코이즘이라는 단어는 크레이그 말킨 박사(Dr. Craig Malkin)가 제안한 것으로, 자기애적으로 보일 까봐 두려워하는 성격을 말합니다. 나르시시스트(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자신이 무대의 중심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만 에코이스트는 관심의 중심에 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자아도취적인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사랑을 잃을까 봐 자신이 원하고 필요한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에코이즘 성격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라그레네(Louis-Jean-François Lagrenée,1724-1805)가 그린 에코와 나르키소스를 보면 에코를 그림의 중심에 놓고 그녀의 시점에서 나르키소스를 그렸습니다.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바라보고, 나르키소스는 에코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물에 비친 자신만 바라봅니다. 이 시선은 한 방향일 뿐 상호 작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정적인 관계입니다.
라그레네, 에코와 나르키소스, 1771
자기 자신에 대해 과장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타인의 정서에 잘 공감하지 못하며 필요에 따라 도구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성격을 자기애성 인격장애라고 합니다. 이들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늘 공허함을 느낍니다. 타인의 정서에 공감하지 못하므로 친밀한 인간관계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자기애가 강하다는 말은 대개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정신분석가 하인즈 코헛(Heinz Kohut,1913–1981)은건강한 자기애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는 남녀 간의 사랑을 가장 이상적인 단계로 보았기 때문에 자기애란 대상 사랑으로 가는 과도기나 일시적 퇴행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코헛은건강한자기애를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욕구로 보았고, 양육자의 공감과 거울 반응을 통해 자기애 욕구가 채워지면 야망과 이상을 갖춘 양극성 자기(self)가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코헛은 건강한 자기애를 3가지 요소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첫째, '내가 제일 잘 나가'에 해당하는 과대 자기 욕구, 둘째, 나를 진정시켜 주고 롤모델이 되는 이상적인 부모님을 꿈꾸는 이상화 부모 이마고 욕구, 마지막으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쌍둥이 자기 대상을 갖고 싶은 쌍둥이 자기 대상 욕구입니다.
생애 초기, 아이는 '내가 제일 잘 나가' 같은 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사실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입니다.그러나 아이가 초라하고 연약해 보이는 순간에도 부모는 과대 자기 욕구에 반응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좌절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외치던 아이는 결국 제일 잘 나가지 못하는 순간이 있음을 깨닫고완벽한 대상과 연합하려는 환상을 갖게 됩니다. 아이는 이상화 부모 이마고를 통해서 긴장을 조절하고 소망했던 이상들을 형성하게 됩니다. 쌍둥이 자기 대상 욕구는 후기 아동기에 경험하게 되는 '우리는 서로 유사하다'는 경험을 말합니다. 쌍둥이 자기 대상 욕구가 적절한 반응을 경험하면 타고난 재능과 기술이 발달됩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생애초기 가장 필요한 자기애적 욕구에 공감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공감이란 건강한 자기애의 세 가지 욕구에 양육자가 적절한 반응을 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만 3세 이전까지는 '내가 최고, 최고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서 최고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1등이야'가 아니라, '너는 언제나 엄마에게, 아빠에게 최고야'라는 의미입니다.
아이가 두려워하거나 어쩔 줄 몰라할 때, 다그치거나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조용히 안아 진정시켜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떼를 쓰더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는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양육자와 함께 있으면서 말없이 행동을 따라 하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자기애를 채워주는 양육자의 공감과 거울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애와 유사하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는 개념으로 '자존감'이 있습니다.
자존감은 요즘 육아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자아존중감의 줄임말입니다. 먹고 입히는 일이 양육의 주된 관심사였던 과거에서 정서적 양육이 중요한 시대로 넘어오면서 '자존감 높은 아이'는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자존감이라는 용어를 객관화한 사람은 사회학자 모리스 로젠버그 (Morris Rosenberg)입니다. 그는 총 10 문항으로 이루어진 자존감 척도(RSES, Rosenberg self-esteem scale)를 고안했습니다.
Rosenberg Self-Esteem Scale(RSES), 점수가 높을수록 자존감이 높다.
소아청소년에게 건강한 자기애 욕구를 채워 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존감의 원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존감이란 건강한 자기애가 모여 이룬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기애를 채워 주려면 양육자의 공감과 거울 반응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외모, 학벌, 연봉, 재산, 자녀의 성적... 너무나 많은 것으로 끝없이 서로를 줄 세우고 비교하는 사회입니다. 건강한 자기애를 통해 튼튼한 자존감을 확보한 아이야말로 급변하는 사회에서 나 자신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아이가 될 거라도 믿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