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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l 10. 2024

생물학적 성소수자, 헤르마프로디테

성 분화 이상과 성별 스펙트럼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생소한 주제인  분화 이상(Disorders of sex development;DSD)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헤르마프로디테 (hermaphrodite, 또는 hermaphroditus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헤르마프로디테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답게 용모가 뛰어났고, 물의 요정 살마키스는 그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헤르마프로디테가 그녀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자, 살마키스는 신에게 그와 한 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헤르마프로디테는 남성과 여성의 몸이 합쳐진 희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염색체, 생식샘(난소 또는 정소), 외부 및 내부생식기 3가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남성 또는 여성으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과거에는 반음양, hermaphroditism이라고 불렀습니다. 헤르마프로디테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그러나 반음양이라는 용어가 애매모호하고, 다양한 질환의 병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하여 최근에는  분화 이상(또는 성 발달 장애)이라는 용어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몸을 모두 지닌 헤르마프로디테의 신비로운 이미지와는 달리 사람들은 전형적인 성을 갖지 않은 사람을 불길하게 여겨 경계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이를 괴물로 여겨 티베르 강에 던져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1)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성 분화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공공연하게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


헤르마프로디테, Herculaneum fresco 벽화, AD.1세기 추정, 나폴리 국립 고고미술관


태아의 성분화에는 XX 또는 XY의 성염색체가 필요하고, 난소가 발달하려면 46, XX와 더불어 DAX1, WNT4 유전자가 필요합니다. 여아보다 남아의 성분화가 조금 더 복잡한데, 남아의 경우 SRY 유전자에서 생성되는 고환 결정인자(TDF)와 함께 SOX9 등의 유전자가 있어야 합니다. 임신 6-7주경 고환에서 생성된 AMH(항뮐러관 호르몬)가 뮐러관 발달을 퇴화시켜 남아에서 자궁이 형성되지 않도록 합니다. 여아는 이러한 과정이 없어 뮐러관이 계속 발달하여 자궁과 부속기관이 형성됩니다. 3)


작자미상, 로마제국시대(BC.20-AD40년 추정, 1901년 발굴), 헤르마프로디테, Museum of Fine Arts Boston


헤르마프로디테는 회화보다는 조각상으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위의 작품은 보스턴의 Fine Art Museum에 있는 로마시대 조각상입니다. 조각상은 여성의 가슴과 남성에 가까운 외부 성기, 전체적으로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체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헤르마프로디테가 왼손에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큐피드)의 하반신을 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는 상반신도 있었는데 손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술관의 해설에 따르면 에로스를 들고 있는 것은 양육(모성)의 의미를 지니고, 남성의 성기를 드러낸 것은 액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헤르마프로디테와 에로스는 둘 다 아프로디테의 아들이고 미소년의 이미지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합니다.


아래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테>입니다. 17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발굴되었고 침대 부분은 발굴 후 새로 제작한 것입니다. 헤르마프로디테는 여성의 신체에 가까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지만, 신체 앞면을 보면 남성의 성기를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테, 고대 로마시대 추정, 17세기 발굴, 파리 루브르 박물관



 분화 이상은 다양한 질환이 원인이 된 증상군으로, 첫째 46, XX면서 외부 생식기가 남성화(태내에서 남성호르몬 과다에 노출된 경우)된 경우, 둘째 46, XY 면서 외부성기는 불완전 남성화 또는 완전여성인 경우, 셋째 난소와 고환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세 번째 경우를 true hermaphrodit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출생 후 외부생식기 모양이 전형적 남아, 또는 여아와 다를 때 성 분화 이상 질환을 의심하지만, 정상 여성 또는 남성의 체형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생아가 애매한 외부 성기 모양을 보일 때 가장 흔한 것은 첫 번째 범주, 즉 46, XX 면서 부신이라는 기관에서 형성되는 성호르몬의 이상으로 인해 여아가 남성화되는 것입니다. 선천성 부신과다형성(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이라고 불리는 이 질환은 남아에게 생길 경  분화에는 문제가 없으나, 급성 부신기능부전이라는 응급상황이 생길 수 있어 필수 선천성 대사이상 검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3)


 분화 이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 정체성 혼란을 막기 위해 조기에 아이의 사회적 성(gender)을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에 가서 또래와 어울리고 만 3세 이후가 되면 성별을 의식하기 시작하므로 그전에 아이의 사회적 성별을 결정해 주어야 정체성 혼란이나 낙인으로 인한 불필요한 상처를 피할 수 있습니다. 대개 외부생식기의 모양이 어느 성에 가까운가에 따라 외과적 수술을 최소로 할 수 있는 사회적 성을 결정합니다.


 분화 이상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정상 남아의 정상 고환조직위치에 있지 않은 정소를 제거해 주는 것입니다. Y염색체는 본래 생식샘모세포종이라는 종양이 생길 가능성을 가진 염색체입니다. 흔히 말하는 암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여아가 복강 내 정소를 가지고 있거나, 남아가 고환 위치가 아닌 복강 등에 정소를 가지고 있다면 종양이 생길 가능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시기에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성이 태어날 때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해부학적 생리학적 요인 외에 심리학적, 문화적 요인, 타인과의 관계, 환경적 경험 등 성별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정체성(sex identitiy)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자신이 남성이나 여성인지 아는 것을 뜻하고, 성적 정체성(gender identity) 자신이 남자 또는 여자라는 느낌을 반영하는 정신적 상태로 문화적 태도, 행동양상, 남성성, 여성성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앨런 존스. 헤르마프로디테, 1963, 워커아트 갤러리


위의 그림은 영국의 팝 아트 화가 앨런 존스(Allan Jones,1937- )의 작품 <헤르마프로디테>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몸이 하나로 붙어 있고, 경계가 흐릿합니다. 화가는 융(Carl Jung, 1875-1961)의 이론과 니체(Friedlich Nietsche, 1844-1900)의 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남에게도 여성성이 여에게도 남성성이 존재하며 두 속성 모두가 예술적 창의성에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5) 신화 속 헤르마프로디테는 남성과 여성의 몸을 모두 지닌 존재였는데, 과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와 성정체성은 어땠을까 궁금해집니다.



헤르마프로디테처럼 성 분화 이상이 있으면 성 정체성의 혼란도 반드시 발생하게 될까요?

태내에서 남성 호르몬의 생성 또는 작용에 불균형이 생긴  분화 이상의 경우, 성 정체성 혼란의 병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성 정체성 불쾌증동시에 생길 확률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성 정체성 불쾌증이라는 용어가 조금 생소한데,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단체계인 DSM-IV에서는 성 정체성 장애라고 하였지만, 2013년 개정된 DSM-V에서는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불일치에 따른 불쾌감에 더 초점을 맞추어 성 정체성 불쾌증(gender dysphoria)이라는 진단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천성 부신 과다증이 있는 여성이 사회적 성별은 여성으로 성장하였으나,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지 않아 신체적 남성화가 진행되는 경우 성 정체성 불쾌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태내에서 남성 호르몬이 정상 환경이었고 46, XY유전자를 가졌지만 외부성기에 기형이 있어 여성으로 인지된 경우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내 남성호르몬 불균형이 있었던 모든 경우에  정체성의 혼란 및 불쾌증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성별과 맞지 않는 행동(gender behavior)만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4)

 

최근 독일에서 호적과 여권에 기재할 법적인 성별을 스스로 결정, 변경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이 제정안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심리 감정 및 법원의 판결 없이 법적인 성적 정체성을 변경할 수 있어, 자유와 존엄성을 보장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트랜스젠더와 성 분화 이상, non-binary(스스로를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의미의 성소수자들이 포함됩니다. 마치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처럼 성별조차도 스펙트럼으로 느껴집니다.


스펙트럼이라는 개념과 반대로, 모든 것을 특정 범주로 나누어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을 차별하고 경계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을 선과 악의 축으로 이분화하여 악을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멜라니 클라인의 편집-분열 자리와 닮아 있습니다. 편집-분열 자리는 대략 생후 6개월까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기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나며 적절한 양육을 통해 극복되어야 합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지 않아 두려움이 많은 사회일수록 근거 없는 의심과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 악이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공격과 박해가 일어납니다. 과학과 문명이 과도하게 발달한 21세기에는 성 분화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우울과 불안, 사회적 소외를 겪지 않도록 , 이분법 대신 스펙트럼을 허용하는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



커버이미지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테(Salmacis et Hermaphrodite), Jean-François De Troy(1676-1752), Meaux (Seine et Marne) - Musée Bossuet


헤르마프로디테를 표현한 조각은 많지만 회화작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각상과는 달리, 회화에서는 헤르마프로디테의 하반신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대신 헤르마프로디테를 덮치는 살마키스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회화를 통해서 잘 드러납니다.


그런데 오늘날로 따지면 이것도 스토킹 범죄가 아닐지 모르겠네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만 좋다고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너와 내가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하면서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관계를 꿈꿉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1. Chevalier de Jaucourt L (1765). "Hermaphrodite". Encyclopedia of Diderot & d'Alembert. 8: 165–167.


2. www.bbc.com/news/world-africa-39780214. The midwife who saved intersex babies.


3. 안효섭, 신희영. 홍창의소아과학. 12판. 미래엔, 2020.


4. 홍강의, 소아정신의학, 학지사, 2014.


5. www.liverpoolmuseums.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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