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인이 머리를 풀고 완전히 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여인과는 대조적으로, 흰 말은 빨간색 안장에 금빛 장식이 박힌 빨간 천을 두르고 있습니다. 여인은 벗은 몸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긴 머리로 가슴을 가리고 있습니다. 배경에는 건물만 있고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기괴한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존 콜리어, 고다이바 백작부인, 1897, 코벤트리 허버트 미술관(Herbert museum)
그림 속 여인은 고다이바 부인입니다. 13세기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 레오프릭 백작은 당시 농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고, 백작의 부인 고다이바는 몰락해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남편에게 세금정책을 개선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레오프릭 백작은 부인에게 ‘당신이 진심이라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라’고 합니다. 고다이바는 고심 끝에 조건을 받아들였고, 코벤트리의 농민들은 부인의 숭고한 뜻을 존중해 그녀가 마을을 도는 동안 커튼을 닫고 밖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양복 재단사 톰은 호기심에 이끌려 그만 커튼을 들추고 고다이바 부인을 훔쳐보았습니다. 그 순간 톰은 장님이 되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신의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몰래 고다이바 부인을 훔쳐본 피핑 톰(Peeping Tom)’은 관음증의 대명사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레오프릭 백작과 고다이바 부인은 실존 인물이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고다이바 부인의 이야기는 각색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관음증과 관련되어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관음증에 관한 오래된 성경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산나와 장로들(Susanna and the Elders)>입니다. 유태인 귀족 요아힘의 아름다운 부인인 수산나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목욕을 하던 중 이 집에 드나드는 두 장로가 이를 엿보고 성추행을 하려고 합니다. 수산나가 거부하며 소리를 질러 하인들을 부르자 두 장로들 역시 역정을 내며 수잔나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을 보았다고 소리칩니다.
수산나는 당시 사형에 처하던 간통죄를 뒤집어쓰게 되고, 지혜로운 다니엘이 두 장로를 직접 심문합니다. 수산나가 간통하는 것을 목격한 장소를 각각 묻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장소를 가리켜 거짓임이 들통납니다. 수산나는 오명을 벗게 되었고 두 장로는 무고죄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산나와 두 장로>,1610, Weissenstein 성
위의 그림은 여성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3-1656)가 그린 <수산나와 두 장로>입니다. 수산나의 몸짓과 표정을 보면 수치심과 당혹스러움,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자신을 지키려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젠틸레스키는 당시 권위 있는 화가인 타시에게 그림을 배우다가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타시는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녀의 아버지는 가문 모독죄로 타시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젠틸레스키는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는 고문과 모욕적인 부인과 검사까지 받았지만 타시는 죗값보다 가벼운 형벌을 받고 명성과 권력을 이용해 사면되었습니다. 젠틸레스키는 많은 수모를 겪었지만 수산나와 장로들의 다른 버전을 포함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수산나와 두 장로>는 성경 이야기라는 이유로 대놓고 여성의 누드를 그릴 수 있는 주제였습니다. 금욕을 중시하는 중세 시대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자 화가들은 본격적으로 수산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수산나가 고통받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인 것처럼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화가는 대부분 남자였고 그림을 의뢰한 이들도 남성 귀족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도미니코 틴토레토, 목욕하는 수산나, 1550-1560, 루브르 박물관
틴토레토가 그린 수산나는 관람객 쪽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어 '당신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듯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알지 못한 채 그저 아름답고 청순한 여성으로만 그렸습니다. 우측의 그림은 루벤스의 작품으로, 수산나의 벗은 몸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했고 자세와 표정은 젠틸레스키의 작품에 비해 매우 수동적입니다.
메리 카사트, In the Lodge(오페라 관람석에서), 1878, Museum of Fine Arts, Boston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오페라 안경을 들고 관람석에 앉아서 무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그녀를 훔쳐보는 남자가 있습니다. 메리 카사트(Mary Cassatt,1845-1926)의 ‘오페라 관람석에서(In the Lodge or At the Opera)’라는 작품입니다. 여성을 훔쳐보는 남성은 수산나와 두 장로들의 장로들에 비하면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한 단계 진화한 관음증이라고 할까요?
관음증은 상대가 알지 못하게 옷을 벗거나 성행위하는 장면을 관찰하거나 공상하면서 성적 흥분을 강하게 느끼는 행동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심각한 고통, 사회적, 직업적 기능에 문제를 초래할 때 관음장애라고 합니다. 나는 보고 있지만 상대방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상대보다 우월한 위치’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는 것만으로 성적인 욕구를 충족한다는 것은 보통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관음증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장기에 겪은 트라우마나 부모의 외도 목격,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사건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릴러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중 관음증을 다룬 영화 ‘이창’(rear window)이 있습니다.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게 된 사진작가가 집에서 지내던 중 이웃을 엿보는 내용인데, 이처럼 관음증은 사회문화적으로 타인의 신체뿐 아니라 사생활을 엿보는 행위까지 확장될 수도 있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을 엿본 피핑 톰이나, 수산나와 장로들의 장로들처럼 누군가를 엿보는 심리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오늘날 관음증이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영상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은 통신을 목적으로 한 도구지만 사진과 영상 촬영이 가능하기에 죄의식 없이 휴대하고, 쉽게 범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인터넷 커뮤니티나 단체대화방등에서 공유하는 문화 또한 현대사회에서 관음증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양산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래 집단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소년은 이러한 문화에 더욱 취약할 수 있습니다.
학원이 많은 상가건물이나 학교의 화장실 등에서 청소년이 몰카를 찍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늘고 있습니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한 초등학생은 상가의 여자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했지만 제대로 보기 전에 발각이 되었는데, ‘본 것이 없으니 선처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제대로 치료받지 않는다면 과연 앞으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관음장애는 사춘기 청소년의 일시적인 성적 호기심과 구별하기 위해 18세 이후에 진단하지만, 현실은 청소년기부터 증상이 시작되어 성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털사이트에 '청소년 몰카'라고 검색하면 '청소년 몰카 형 감면받는 법'이라는 법률자문 광고가 많이 뜹니다. '피해자와 합의하고 부모가 훈육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현실에서 부모는 '어떻게 형을 감면받을까'에 초점을 맞추게 되겠지요. 그러나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태수습뿐 아니라 교육과 치료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 사이, 독일 쾰른의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에서는 <수산나, 중세에서 미투에 이르기까지>라는 특별전시회가 있었습니다. 큐레이터들은 수산나를 주제로 한 그림을 90점을 한데 모아 전시하며, ‘그림이 성폭력 피해자를 어떻게 묘사해 왔는지’, ‘현대에도 수산나와 장로들은 여전히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시회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시민들이 다녀갔습니다. 관음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 예술과 문화를 통해 고민한다는 사실이 부럽습니다. 오늘날 관음증은 스마트기기의 발달과 더불어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독일처럼 관음증으로 인한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디바이스로 무장한 21세기 장로들로 인해 수산나의 고통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