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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l 17. 2024

고다이바 부인과 수산나

진화되어 가는 관음증과 청소년 몰카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도착의 일종인 관음증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커튼을 살짝 들추어 밖을 훔쳐보는 남자가 있습니다. Peeping Tom이라고 불리는 이 남자는 고다이바 부인의 이야기에서 파생된 캐릭터로, 관음증을 상징합니다.


13세기 영국 코벤트리영주 레오프릭 백작은 당시 농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였고, 백작의 부인 고다이바는 몰락해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남편에게 과중한 세금정책을 개선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런데 레오프릭은 부인이 진심이라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 바퀴 아보라고, 그러면 고려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고다이바는 고심 끝에 조건을 받아들였고, 코벤트리의 농민들은 고다이바 부인의 숭고한 뜻을 존중해 그녀가 벌거벗고 마을을 도는 동안 커튼을 닫고 누구도 그녀 보지 않기로 습니다.


그러나 양복 재단사 톰은 호기심에 이끌려 그만 커튼을 슬쩍 들추어 고다이바 부인을 훔쳐보았습니다. 그 순간 톰은 장님이 되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신의 벌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핑 톰(Peeping Tom)’은 관음증의 대명사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레오프릭 백작과 고다이바 부인은 실존 인물이지만 이 전설은 실제와 시간 차이가 있으며 고다이바 부인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각색된 것이라고 현대 역사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관음증과 관련되어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존 콜리어, 고다이바 백작부인, 1897, 코벤트리 Herbert museum     윌리엄 리드 딕, 고다이바 부인 동상, 1949, 코벤트리 broadgate


관음증에 관한 오래된 성경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나와 장로들(Susanna and the Elders)>입니다. 유태인 귀족 요아힘의 아름다운 부인인  자신의 집 마당에서 목욕을 하던 중 이 집에 드나드는 두 장로가 이를 엿보고 성추행을 하려고 합니다. 수나가 거부하며 소리를 질러 하인들을 부르자 두 장로들 역시 역정을 내며 수잔나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을 보았다고 소리칩니다.


나는 당시 사형에 처하던 간통죄를 뒤집어쓰게 되고, 지혜로운 다니엘이 두 장로를 직접 심문합니다. 나가 간통하는 것을 목격한 장소를  묻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장소를 가리켜 거짓임이 들통납니다. 수나는 오명을 벗게 되었고 두 장로는 무고죄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산나와 두 장로>,1610, Weissenstein 성

위의 그림은 여성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3-1656)가 그린 <나와 두 장로>입니다. 수나의 몸짓과 표정을 보면 수치심과 당혹스러움,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자신을 지키려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그림을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젠틸레스키는 당시 권위 있는 화가인 타시에게 그림을 배우다가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시는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녀 아버지는 가문 모독죄로 타시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젠틸레스키는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는 고문과 모욕적인 부인과 검사까지 받았지만 타시는 죗값보다 가벼운 형벌을 받고 명성과 권력을 이용해 사면되었습니다. 틸레스키는 많은 수모를 겪었지만 수산나와 장로들의 다른 버전을 포함해 여성에 대한 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수산나와 두 장로>는 성경 이야기라는 이유로 대놓고 여성의 누드를 그릴 수 있는 주제였습니다. 금욕을 중시하는 중세 시대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자 화가들은 본격적으로 수산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수산나가 고통받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인 것처럼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화가는 대부분 남자였고 그림을 의뢰한 이들도 남성 귀족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도미니코 틴토레토, 목욕하는 수산나,1550-1560,루브르 박물관, 루벤스.수산나와 두 장로,1607,로마 Borghese Gallery



측 그림의 나는 관람객 쪽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어 '당신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듯합니다. 으로 일어날 일은 알지 못한 채 그저 아름답고 청순한 여성으로만 그렸습니다. 측의 그림은 루벤스의 작품으로,나의 벗은 몸을 요 이상으로 부각했고 자세와 표정은 젠틸레스키의 작품에 비해 매우 수동적입니다. 



좌) Alessandro Allori, 수산나와 두 장로, 1560 우) Francesco Hayez,수산나와 두 장로,1850,내셔널 갤러리 런던

위의 두 그림은 한술 더 떠서 수산나를 남성을 유혹하는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성폭력 가해자에는 관심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의 신체를 도구화하고 품평하며 2차 가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메리 카사트, In the Lodge(오페라 관람석에서), 1878, Museum of Fine Arts, Boston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오페라 안경을 들고 관람석에 앉아서 무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그녀를 훔쳐보는 남자가 있습니다.  메리 카사트(Mary Cassatt,1845-1926)의 ‘오페라 관람석에서(In the Lodge or At the Opera)’라는 작품입니다. 여성을 훔쳐보는 남성은 나와 두 장로들의 장로들에 비하면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한 단계 진화한 관음증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현대에는 망원경보다 훨씬 더 진화한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전화라는 명분으로 죄의식 없이 휴대할 수 있고 동영상도 찍을 수 있으니 관음증이 범죄로 이어지기 너무 쉽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V)에 따르면 관음장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할 때 진단합니다.


1. 대상 알지 못하게 옷을 벗거나 성행위하는 장면을 관찰하거나 공상하면서 성적 흥분을 강하게 느끼는 행동이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합니다.


2. 또 이러한 공상, 성적 충동, 행동이 심각한 고통이나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에 문제를 초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상이 만 18세 이상에서 나타날 때 합니다. 사회적, 직업적 기능에 문제가 없으면서 1번 증상만 있는 경우는 관음증이라고 고, 2번까지 충족할 때 관음장애라고 합니다. 1)

관음증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장기에 겪은 트라우마가 원인이 된다고 추정합니다. 부모의 외도 목격이나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사건 등 주로 성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는 것만으로 성적인 욕구를 충족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통제 욕구는 강하지만 정상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관음증을 비롯한 성도착 환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19세기 이전까지 성도착이나 성충동과 관련된 증상은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1) 그러나 관음장애는 타인과 연결된 범죄행위로 자신과 상대방에게 큰 사회적, 정신적 손실을 입힐 수 있기에 병적 상태로 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관음장애 환자는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데, 본인은 욕구만 만족시키면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경찰서와 법정에 서게 되겠지요. 관음장애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 요법이나 그룹 치료가 가능하며, 치료 효과는 본인의 치료 의지와 연관성이 높습니다.


학원이 많은 상가건물이나 학교의 화장실 등에서 성인 뿐 아니라 청소년이 몰카를 찍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늘고 있습니다. 나와 내 아이들이 불특정 장소에서 나도 모르게 관음증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합니다. 현대판 고다이바 부인이나 수산나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일까요?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 사이, 독일 쾰른의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에서는 <수산나, 중세에서 미투에 이르기까지>라는 특별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들은 수산나주제로 한 그림을 90점이나 모아 전시하며 그림이 성폭력 피해자를 어떻게 묘사해 왔는지, 현대에도수산나와 장로들은 여전히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2) 성폭력을 강력히 처벌하고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관음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 고민한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관음장애는 청소년기의 일시적 충동적 호기심과 구분해야 하기에 18세 이전에 진단하지 않지만, 이미 청소년기부터 증상이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청소년과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기에는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부모의 역할과 힘이 아직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털사이트에 '청소년 몰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보면, '청소년 몰카 형 감면받는 법'이라는 제목의 법률자문 광고가 먼저 뜹니다. '청소년이라고 해도 몰카 범죄 가볍게 봐주지 않는다'는 점과, '피해자와 합의하고 부모가 훈육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https://naver.me/F3TghYWq


'어떻게 하면 형을 감면받을까'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부모의 역할에 중점을 두어 치료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광고도 검색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디바이스로 무장한 21세기 장로들로 인해 나의 고통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요. 더욱이 몰카 범죄의 시작연령이 낮아지고 있어 여러분의 관심이 꼭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1. Jang Kyu Lee, Soo Jung Lee, Myung Ho Lim.The Evaluation of Paraphilia and Paraphilic Disorder. Anxiety and Mood Vol12, No 2, October, 2016.


2.https://amp.dw.com/en/susanna-in-the-arts-from-the-middle-ages-to-metoo/a-6358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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