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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을 오간 화가, 도박현장을 그리다

조르주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

by sweet little kitty

빛과 어둠을 오간 두 화가


두 사람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한 남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카드를 훔쳐보며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장갑 손가락 끝에 뚫린 구멍은 카드를 손끝으로 만져서 식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상대편 남자는 뒤쪽 허리띠에 카드를 숨기고 있고 옆에는 칼을 차고 있어 순간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칼을 차고 게임을 한다는 건 친구 사이에 재미로 하는 카드 게임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미켈란젤로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카드 도박 사기꾼(Cardsharps) 입니다.


카라바지오, 카드도박 사기꾼(Cardsharps),1595, 텍사스 킴벨 미술관

카라바지오는 이상적인 비례와 구도를 추구했던 르네상스 미술을 벗어나, 사실적인 묘사와 더불어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하는 바로크 미술을 개척했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활용한 카라바지오의 기법을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고 합니다. 종교화에서 빛은 성스러움을 상징하고, 어둠은 세속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카라바지오는 종교화에 빛과 어둠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며 둘의 대비를 최대치로 활용했습니다. 그의 파격적인 화풍은 처음에는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사실적이고 강렬한 느낌 덕분에 성직자와 귀족들의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화가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박, 폭행, 살인 등 범죄에 연루되었고,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도망 다니며 살았습니다. 카라바지오가 빛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어둠의 세계에 연루된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카라바지오는 흑사병으로 가족을 잃고, 열세 살에 고향을 떠나 독립해야 했습니다. 카라바지오는 로마로 가서 주류 화가의 공방에서 수습생으로 일하고, 일이 없을 때는 거리의 청년들과 어울리며 도박장에 드나들었습니다. 청소년기에 방황하며 음주, 폭행, 도박 등에 빠진 것을 보면 품행장애, 성인이 되어서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와 유사합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대개 현실 인식 능력이 정상이고, 잔인하지만 계획된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카라바지오는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계획되지 않은 사고를 자주 저질렀습니다. 한 번 입은 옷은 누더기가 될 때까지 입기도 했지요. 카라바지오의 작품을 보면 후기로 갈수록 ‘참수’를 다루는 그림이 많고 기괴한데요. 살인을 저지른 뒤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서라는 해석도 있지만, 조현병으로 인해 생긴 ‘목의 이상 감각’ 때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공격성과 촉감에 대한 이상 감각, 사회적 지위에 맞지 않는 옷차림으로 볼 때 조현병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화가로서 뛰어난 재능과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지만 어두운 세계에 연루되며 사람을 죽이고 도주하던 중에 객사한 이유입니다.


만난 적은 없지만 닮은 두 화가


등 뒤에 카드를 숨기고 있는 그림이 또 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입니다. 테이블에는 세 명의 인물이 앉아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깊이 파인 옷에 장신구를 많이 걸친 여인이 가운데 앉아서 대놓고 곁눈질합니다. 당신 차례라고 손짓하며 검지를 내미는 모양이 사전에 약속된 신호 같습니다. 하녀는 술병을 들고 와서 여인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데, 역시 곁눈질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자세와 눈빛은 이 도박판이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임을 암시합니다. 왼편의 남자는 늘어뜨린 어깨끈 장식과 팔꿈치로 자신의 판돈을 가리고, 허리띠 사이에는 에이스 카드를 숨기고 있습니다. 모두가 곁눈질하고 꼼수를 부리는 자세인데, 오른쪽의 소년만 자신의 카드 패를 집중해서 보고 있지요. 왼쪽부터 3명의 인물은 한 패인 듯하고, 오른쪽의 소년은 흔히 말하는 호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운 외모와 화려한 의복, 그의 앞에 쌓인 금화 더미를 보면 부잣집 도련님처럼 보이지요.


허영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타짜>에는 ‘정마담’이라는 매력적인 여성이 나옵니다. 정마담은 도박판에 호구를 데려와 앉히고 속임수와 폭력을 쓰며, 계획한 대로 돈을 수거해 갑니다. 도박판에서 원한을 쌓은 또 다른 타짜 평 경장을 몰래 죽이기까지 하지요. 속임수, 폭력, 살인 등을 서슴지 않으며 도박판 전체를 기획하는 모습이 라 투르의 그림 중앙의 여인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두 여인 모두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추하고 어두운 세계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등장인물은 같고 의상이나 구도가 미묘하게 다른 그림이 또 하나 있습니다. 클로버를 든 카드 사기꾼(The Cheat with the Ace of Clubs)으로 사기꾼이 들고 있는 카드가 에이스 대신 클로버(club)입니다. 처음에는 둘 중 하나가 위작이 아닐까 의심되었지만, 킴벨 미술관의 그림이 루브르의 그림보다 2~3년 먼저 그린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두 그림은 인물들의 의상 색깔이 조금씩 다르지만, 왼쪽 남성의 옷은 도박 테이블보의 색과 같습니다. 호구로 의심되는 오른쪽의 청년은 두 그림에서 모두 가장 화려한 의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지요.


라 투르는 잘 차려입고 점잖게 도박을 하는 인물들의 자세와 눈빛을 통해 ‘도박판의 진짜 문제는 도박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같은 그림을 연속으로 보고 있으면 ‘도박은 중독이기에 한 판으로 끝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1636-40, 루브르 박물관


허영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타짜>에는 ‘정마담’이라는 매력적인 여성이 나옵니다. 정마담은 도박판에 호구를 데려와 앉히고 속임수와 폭력을 쓰며, 계획한 대로 돈을 수거해 갑니다. 도박판에서 원한을 쌓은 또 다른 타짜 평 경장을 몰래 죽이기까지 하지요. 속임수, 폭력, 살인 등을 서슴지 않으며 도박판 전체를 기획하는 모습이 라 투르의 그림 중앙의 여인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두 여인 모두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추하고 어두운 세계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등장인물은 같고 의상이나 구도가 미묘하게 다른 그림이 또 하나 있습니다. 클로버를 든 카드 사기꾼(The Cheat with the Ace of Clubs)으로 사기꾼이 들고 있는 카드가 에이스 대신 클로버(club)입니다. 처음에는 둘 중 하나가 위작이 아닐까 의심되었지만, 킴벨 미술관의 그림이 루브르의 그림보다 2~3년 먼저 그린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두 그림은 인물들의 의상 색깔이 조금씩 다르지만, 왼쪽 남성의 옷은 도박 테이블보의 색과 같습니다. 호구로 의심되는 오른쪽의 청년은 두 그림에서 모두 가장 화려한 의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지요.


라 투르는 잘 차려입고 점잖게 도박을 하는 인물들의 자세와 눈빛을 통해 ‘도박판의 진짜 문제는 도박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같은 그림을 연속으로 보고 있으면 ‘도박은 중독이기에 한 판으로 끝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클로버 에이스를 든 카드 사기꾼, 1630-34, 97.8x156.2 cm, 텍사스 킴벨 미술관


라 투르는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역인 로렌에서 영주로부터 후원을 받아 활동하던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30년 전쟁으로 로렌이 프랑스령이 되자, 라 투르는 루이 13세의 궁정화가가 되었습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그의 작품을 수집할 정도로 라 투르는 랑스에서도 인정받는 화가였습니다. 전쟁이 일단락된 후 그는 고향 뤼네빌로 돌아왔고, 1652년 감염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라 투르는 로렌 영주의 화가에서 프랑스 왕실의 화가로, 전쟁이 끝나고는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할 만큼 현실 적응과 처세술에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말년에는 고리대금업자로 고향의 농민들을 괴롭혔기에 살해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라 투르 역시 화가로서는 빛의 세계에 속했지만, 삶은 어둠에 발 담그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라 투르의 작품은 상당수 소실되었고, 200여 년 동안 어둠에 묻혀 버렸습니다.


20세기 초, <새로운 탄생>이라는 그림이 발견되었지만 아무도 라 투르의 그림인지 몰랐습니다. 1915년, 독일의 미술사학자 헤르만 보스(Hermann Voss)가 이것을 라 투르의 작품으로 보고 소개하면서, 화가는 미술사의 무대로 소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촛불을 그려 넣은 경건한 종교화가 발견되었지만, 차츰 도박현장, 세금징수 등 민중의 삶을 담은 풍속화도 많이 그렸다는 사실이 알려졌지요.


라 투르는 촛불화가라고도 불리지요. 빛과 어둠을 강렬하게 대비시켰던 카라바지오의 화풍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촛불을 사용해 더욱 빛과 어둠을 대비시켰기 때문입니다. 그의 종교화에도 파격적인 면이 있어, 예수의 탄생을 평범한 아기의 출산로 묘사하거나 막달레나가 예수의 아이를 가진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당시 기독교의 관점에서 막달레나는 예수의 여인이 아니라 참회의 대상이었지요. 라 투르는 여러모로 카라바지오와 직접 교류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도박장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두 화가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카라바지오는 화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귀족의 후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박과 폭력 등 어둠의 세계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라 투르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로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지만, 말년에는 고리대금업이나 폭력 등 좋지 않은 소문에 휘말렸습니다. 도박 현장을 생생하게 그림에 담았던 두 화가는 평소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했고, 인생도 빛과 어둠 사이를 오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업적 도박의 역사


사교를 위한 도박은 고대부터 유럽이나 중국 등지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업적 도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6세기 유럽이었습니다. 상업적 도박이란 도박장을 찾은 고객 외에도 플레이어 ‘뱅커’가 존재하는 경우로, 카지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대륙의 발견으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귀족과 상인들은 넘쳐나는 돈을 굴릴 곳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무역의 중심지 이탈리아에서는 사설도박장과 술집 내 도박이 성행했습니 다.


베네치아는 14세기말부터 카드놀이 중심지로, 카니발 기간 동안 시민들은 공공장소에서 자유롭게 카드놀이를 즐겼습니다. 반면 귀족들은 그들만의 파티에서 도박을 즐겼는데, 여기에서 리도토가 생겨납니다. 리도토(Ridotto)란 , ‘닫다. 또는 사적으로 비밀스럽게 만들다’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귀족들의 비밀공간이었지만 도박, 춤, 고급 음식과 소문의 근원지가 되었습니다. 리도토에는 전문딜러가 고용되어 귀족들은 판돈을 걸고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베네치아는 카니발 기간 동안 도박을 합법화하기 위해 1638년 산모이세성 안에 국가가 허용한 리도토를 열었고, 이는 현대 카지노의 기원이 됩니다.


그러나 도박으로 몰락하는 귀족이 많아지자, 베네치아는 1774년 도박금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흡수시키면서 도시자체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베네치아의 도박문화는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럽 지역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지금은 프랑스 문화부와 상업 시설이 들어선 팔레 루아얄은 유흥과 카지노의 근원지였습니다. 오를레앙 가문의 왕족 루이 필리프 2세는 자신의 궁전 팔레 루아얄을 개조하여 일부를 상업시설로 임대하고, 사교 모임을 위한 클럽으로 사용했습니다. 이곳에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밤새도록 도박을 했습니다. 한때 혁명가들의 집결지였던 팔레 루아얄은, 프랑스혁명 이후 공연과 오락의 중심지였기에 도박장이 있었습니다. 도박이 귀족의 빈곤화와 각종 사회문제를 낳자, 프랑스에서는 1837년 도박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러자 도박장은 엉뚱한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17세기 유럽에서 온천은 환자를 치유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온천에서는 시간이 많고 통제가 느슨했기에 도박시설이 자리 잡기 쉬웠습니다. 와플로 유명한 벨기에의 리에주, 독일의 비스바덴, 바덴바덴, 아헨 등은 온천과 더불어 도박시설이 성행한 지역입니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찾던 온천은 점점 도박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1881)는 도박꾼으로 유명합니다. 러시아인들은 비스바덴, 홈부르크, 바덴바덴 등 독일의 온천을 주로 찾았습니다. 그는 1863년 연인을 만나러 파리로 가는 길에 독일 비스바덴 카지노에 들릅니다. 룰렛 도박판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단숨에 1만 프랑이 넘는 돈을 딴 후, 도박에 미쳐 8년 동안 독일의 도박판을 떠돕니다. 그러나 행운은 계속되지 않았고, 그는 빈털터리가 되어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절박한 심정으로 속기사까지 고용하여 <죄와 벌>을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해야 했습니다.


온천지역에서 한동안 번성했던 상업적 도박시설은 귀족의 빈곤화와 수많은 사회 문제를 낳았고, 유럽에서 퇴출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박으로 망한 사람이 있다면, 도박으로 흥한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프랑수아 블랑입니다.


프랑수아 블랑(François Blanc, 1806-1877) 홈부르크와 몬테카를로의 마술사로 불리며, 카지노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프랑수아 블랑은 1806년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가난한 세무관리의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루이스와 프랑수아 형제는 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으나 금융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도박판에서 돈을 제법 모았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도박을 금지할 무렵, 형제는 한 카지노 사업가를 따라 라인강 지역으로 옮겨가 카지노와 스파 사업에 몰두합니다. 독일의 홈부르크에서 형제는 뛰어난 사업수완과 마케팅 전략으로 30년간 홈부르크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독일에서마저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불거져 카지노가 퇴출되자, 프랑수아 블랑은 모나코로 옮겨와 또 한 번 카지노 사업을 크게 일으킵니다.


모나코는 그리말디 귀족가문에서 통치하던 영지로 바티칸 시국 다음으로 작은 도시국가입니다. 대공이 다스리며 강대국의 영토 다툼에 끼어있던 모나코는 17세기 이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런데 모나코는 기후는 좋았지만 발달한 산업이 없었고 교통이 좋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영토에서 독자적 수입이 생기기를 바랐던 샤를 대공(Charles III 1818–1889)은 프랑수아 블랑과 결탁하여 모나코에 카지노와 고급 리조트를 건설합니다. 1868년에는 니스에서 모나코까지 철도가 개통되었고, 지노 근처의 지명을 몬테카를로(샤를의 산이라는 뜻) 바뀌었습니다. 이렇다 할 수입원이 없던 모나코는 새로운 게임과 슬롯머신 등을 받아들이며 카지노 관광으로 크게 번성했습니다. 프랑수아 블랑이 가난한 세무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큰돈을 거머쥔 것을 보면, 상업적 도박시설이란 도박꾼들의 피와 눈물이 모여 결국 도박장이 돈을 가져가는 구조인 셈입니다.


도박에 중독되면 멈출 수 없는 이유


재미나 사교 목적이 아닌, 병적인 도박의 특징이 있습니다. 도박에 집착하여 지나간 일을 계속 떠올리고, 다음에는 반드시 이길 것을 예상합니다. 점점 더 큰돈을 베팅하고, 그만하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으며 금단증상이 생깁니다. 현실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을 하고,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도박하고, 도박한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도박으로 인해 대인관계나 일에 부정적인 결과가 생기고, 다시 타인에게 돈을 빌리게 됩니다.


현대 정신건강의학의 대표적 진단체계인 DSM-5에서는 1년 동안 9개의 증상 중 4개 이상을 보이는 경우 도박장애로 진단합니다. DSM-5에서 도박장애는 물질 관련 및 중독장애 범주 중 비물질 관련장애로 분류됩니다.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과 같이 눈에 보이는 약물중독은 아니지만, 같은 범주에 속하는 질환인 셈입니다.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도박을 그토록 금지했어도, 도박장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외곽의 온천지역으로, 다시 몬테카를로로 공간을 옮겨가며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시대에 따라 도박의 종류와 형태가 끊임없이 진화한 것처럼, 오늘날 도박의 세계도 IT 문명과 사회 흐름에 맞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서, 또 웹툰의 배너를 통해서 은근슬쩍 도박에 몸담게 됩니다. 카라바지오나 라 투르가 살던 시대에는 도박장에 가야 했지만, 이제는 클릭 한 번으로 도박장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라 투르의 그림 속 앳된 미소년이 호구인 것처럼, 이토록 강렬한 도박의 최대 희생자는 전두엽이 아직 발달 중인 청소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뇌의 보상체계에 관여하는 도파민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조절됩니다. 술, 도박, 마약 등 즉각적으로 쾌감을 얻는 방법과, 가치나 목표에 몰입하고 헌신하여 성취감을 느끼는 방법입니다. 전자는 도파민이 즉각 반응하므로 순간 짜릿하지만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되지만, 후자는 도파민이 서서히 활성화되기에 오래갑니다. 라 투르의 그림 속 미소년처럼 즉각적 쾌감을 추구하는 도박판의 호구가 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서서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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