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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살고 싶었던 마음

마네의 <자살>

by sweet little kitty


자살 장면을 다룬 그림들


기원전 6세기 경, 로마의 한 귀족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왕자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Sextus Tarquinius)는 장수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섰는데, 누구의 부인이 가장 정숙한지를 두고 내기하듯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귀족 콜라티누스가 자신의 부인 루크레티아가 가장 정숙하다고 장담하자, 다른 귀족 장수들도 모두 부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다른 부인들은 남편이 전장에 나간 사이 파티를 즐기는데 루크레티아는 집에서 조용히 옷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를 확인한 타르퀴니우스 왕자는 루크레티아의 아름다움에 반해 감시가 느슨해진 한밤중에 루크레티아의 집을 몰래 방문하고, 무력과 협박으로 그녀를 강간했습니다. 타르퀴니우스는 루크레티아가 성관계에 응하지 않으면 남자 노예와 함께 침대에서 죽여 외도한 것처럼 꾸미겠다고 했지요. 속수무책으로 당한 루크레티아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루크레티아의 죽음은 동시대의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후대의 역사가들은 분노한 루크레티아의 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를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으로 봅니다.


렘브란트, 루크레티아, 1664, 내셔널 아트 갤러리, 워싱턴 D.C.


위의 그림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1669)가 그린 <루크레티아>입니다. 여인의 표정이 슬픔과 체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옷매무새와 머리는 여느 귀부인처럼 우아하고 정돈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었다 한들 그녀는 귀족 가문의 여인으로서 품위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걸까요? 다른 화가들은 자극적인 성폭행 장면을 통해 그녀를 알몸으로 표현했지만, 렘브란트는 위엄이 느껴지는 귀부인의 모습으로 루크레티아를 그렸습니다. 그녀의 표정에서 폭력과 야만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좌절과 슬픔, 고통이 느껴집니다. 죽음에 사용된 칼이라는 도구는 루크레티아의 강인하고 단호한 면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이 자살에 이르는 일은 마치 명예와 지조를 지키는 일처럼 여겨졌지요. 그러나 그녀의 자살을 과연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루크레티아는 삶에 여한이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습니다. 성폭행 피해자를 대하는 왜곡된 시선, 가문의 명예 훼손, 힘을 가진 왕족의 보복이 두려워 떠밀리듯 죽은 것은 아닐까요? 렘브란트의 <루크레티아>를 보면 어느 가문의 딸, 누구의 부인이 아닌 한 여성으로서 그녀의 죽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유독 한 젊은이의 권총자살 장면이 제 마음을 두드립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1832-1883)의 <자살>이라는 작품입니다. 그림 속 인물은 마네의 작업실에서 일하던 조수라는 주장과, 에밀 졸라가 잡지에 기고한 사건 속 무명 화가라는 두 가지 주장이 있는데요. 무명 화가의 이름은 홀트차펠(Jules Holtzapffel, 1826-1866)입니다. 루크레티아처럼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 아니라, 이름 없는 젊은 화가의 죽음입니다. 얼굴과 표정은 볼 수 없고, 작은 침대에 힘없이 쳐진 시신만 쓸쓸하게 남아 있습니다. 홀트 차펠은 1866년 살롱 전에서 낙방한 후 '그림에 재능이 없어 낙선했고 죽어야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19세기 화가의 그림에서 89년의 우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떠올리게 됩니다.


살롱전은 신인 화가들의 등용문이며, 미술작품의 기준을 상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1863년 무렵에는 미술계에 새로운 사조가 나타나면서 기존의 틀에 맞지 않는 낙선자가 많아졌습니다. 결국 인상파 화가들은 심사기준이 유연하지 못한 살롱전에 대항하는 의미로 1874년 자신들만의 전시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홀트 차펠이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린 화가였든 간에 과도기를 살았던 화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마네는 홀트차펠과 직접 친분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살롱 전에서 여러 차례 낙선하거나 비난을 받았지요. 어쩌면 마네는 살롱전으로 대표되는 권위의 부조리에 공감하고 분노하여 이 작품을 그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에두아르 마네, <자살>, 1877-81년, 뷔를레 컬렉션


마네의 아버지는 법무부의 고위직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외교관의 딸로 마네가 법대를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마네는 그림 외 다른 학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가 화가의 길을 반대하자 해군학교에 지원했다가 두 번 낙방합니다. 뒤늦게 그림을 시작한 마네는 고전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일상의 인물들을 강렬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살롱전 낙선과 혹평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소신대로 작품을 그려나가 말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마네는 낙선의 좌절을 이기고 새로운 사조를 열어갔지만, 홀트 차펠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홀트 차펠은 사망 당시 40세였지만 화가로서는 자리잡지 못한 취업준비생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술계의 새로운 사조를 반영하지 못한 채 수많은 낙선자를 만든 살롱전은 우리의 획일화된 입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홀트차펠의 죽음은 경쟁과 선발에서 패배한 젊은이의 좌절과 우울, 불안을 담고 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예술도 성적순이 아니지만, 살롱전은 당시 많은 화가들을 제멋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절대 권력이었던 것입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일까, 사회의 문제일까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동네 수학학원에는 공부를 꽤 잘했던 여학생이 있었지요. 적극적인 성격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J라는 아이는 어느 날부터 학원에 오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J가 성적 문제로 엄마와 다투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1991년이었으니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나온 지 2년 만이었습니다. J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묻혀 버렸습니다.


2010년, 첫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부고가 들려왔습니다. 친한 고등학교 친구의 Y의 부고였습니다. 장례식은 이미 끝났다고 했고, 가족들은 사망원인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평소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았을 뿐, 이렇게 갑자기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지요. 외모도, 학벌도, 결혼도 모든 면에서 부러운 조건을 가졌던 그 애가 왜 그렇게 빨리 떠나야 했는지 친구들은 아직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23년 기준 10만 명당 27.3명,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24.3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자살률 1위가 되었을까요? 저의 기억 속 J가 투신할 때만해도 우리나라 자살률은 10만 명당 9.1명이었습니다. 자살이 사회 현상이라기보다는 개인사로 치부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Y의 죽음은 우리가 OECD 자살률 1위 국가가 된 이후의 사건이었지요. 그렇다면 자살은 개인의 문제일까요? 사회의 문제일까요?


자살심리를 연구하는 심리학자 토마스 조이너는 개인이 자살하게 되는 동기로 ‘사회적 단절’과 ‘타인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은 일종의 자기혐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밖에도 이유는 다양합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나만 죽으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분노에 가득 차서 죽음으로 상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처벌하려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고 가려고 자살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연인을 따라가고 싶은 심리에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별적 자살이 이유가 다양하다 하더라도 특정 시기, 특정 사회에서 자살률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David Émile Durkheim,1858-1917)은 사회가 결속력이 강하고 구성원 간에 긴밀한 관계일수록 자살률이 낮다고 보고했습니다. 뒤르켐의 이론은 자살의 개인적 요소를 과소평가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연령대를 불문하고 OECD 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는 꼭 한 번 돌아보아야 할 이론이기도 합니다.


에밀 뒤르켐(David Émile Durkheim), 자살의 사회적 원인으로 '아노미'를 제시하였다


뒤르켐이 제시한 중요한 개념은 ’ 아노미‘입니다. 아노미란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도덕적 규범이 없는 상태입니다. 뒤르켐은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아노미 상태에 빠지면, 구성원들의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자살이 증가한다고 보았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규칙과 한계를 정해놓지 않으면 아이들은 오히려 불안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안정된 사회 규범이 존재하지 않을 때 구성원들은 불안하고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유럽은 중세 시대 막강했던 종교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었습니다. 뒤르켐은 이렇듯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개인주의가 심화될수록 아노미 자살이 증가한다고 보았습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요? 스마트기기의 사용이 일반화된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또 다른 아노미를 낳고 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로그아웃되는 신기루 같은 인터넷 공간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어디인지 헷갈리게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가장 긴밀한 공동체인 가정에서는 대개 스마트기기에 접속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스마트 기기를 통해 접속한 사이버 공간에서 아이들을 지켜줄 일관된 규범이나 가치는 없습니다. 내가 뿌리내릴 곳도, 나를 지켜줄 규범도 없는 이중 부재가 21세기의 아노미입니다. 아이들은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는 파편처럼 떠다닙니다. 무엇에 몰입하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모릅니다.


사실은 살고 싶었던 마음


2024년 청소년 소설 부문 1위를 차지한 중학생 작가 백은별의 ’ 시한부‘는 청소년 자해와 자살을 다룬 소설입니다.


주인공 수아는 윤서와 초등학교 때부터 8년째 친구로 둘 다 자해를 합니다. 어느 날 윤서는 수아에게 학교 옥상의 사진을 보냅니다. 수아는 문자를 받자마자 달려갔지만 윤서의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수아는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기혐오와 우울에 빠지게 되고, 딱 1년 만 살기로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수아도 학교 옥상에 올라갑니다. 윤서가 뛰어내린 바로 그곳에서, 수아는 윤서가 왜 문자를 보냈는지 알게 됩니다.


(윤서는) ’ 살고 싶었구나 ‘
무서워서 살고 싶어서,
아무리 결심하고 각오하고 준비했어도
그 고통이 가늠이 안 되니까
누구라도 잡아줬으면 해서.

백은별, <시한부> 중에서


청소년 자살에는 청소년기 특유의 충동성이 존재합니다. 자살을 감행하는 청소년들도 사실은 살고 싶었는데, 고통에 떠밀리듯 죽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충동성은 청소년 자살의 근본적 원인은 아니지만, 청소년 자살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난과 결핍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자아를 실현할 수 있고 자유와 꿈의 가치를 아는 현대인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에 초점을 둡니다. 삶의 의미에는 원하는 일을 선택할 자유, 가장 친밀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인정과 공감을 받는 일, 그렇게 성장하여 소중한 사람과 애착을 형성하는 일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일상에는 이런 생각들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내신 성적과 입시 결과일 뿐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은 게임이지요.


소설 <시한부>의 수아처럼, 루크레티아와 홀트 차펠도 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죽으면 잊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기억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실은 살고 싶었을지도 모를 그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뜨거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어른들이 먼저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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