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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l 27. 2024

인생은 과연 한 방인가

빛과 어둠을 오갔던 두 화가의 도박 그림들


청소년 도박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toss x 경찰청     


 한 비대면 금융사에 청소년 체크카드를 신청했습니다. 집으로 배달된 우편물에는 제가 주문한 카드와 함께 도박근절 캠페인 광고지가 들어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도 청소년 도박근절 광고를 접하던 중이었는데, 청소년 도박이 왜 이렇게까지 사회적 이슈인지 의문이 듭니다.   

  

 도박 중독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역사에 존재했습니다. 도박이란 결과가 불확실한 것에 가치 있는 무언가를 걸고 하는 행위입니다. '스키너의 쥐 실험'을 예로 들어보면, 버튼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먹이가 나오는 기계, 버튼과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먹이가 나오는 기계, 버튼을 누르면 일정하게 먹이가 나오는 기계, 버튼을 누르면 불규칙하게 먹이가 나오는 기계 중 4번째 기계를 가장 많이 눌렀다고 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뇌는 불확실하게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에 매달리게 될 확률이 가장 크다는 뜻입니다. 도박은 불확실한 보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 했습니다.     


도박 현장을 그린 그림들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카라바지오의 카드도박 사기꾼(Cardsharps)입니다.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바로크 미술을 개척하고 렘브란트, 루벤스 등에 영향을 준 화가입니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과는 달리 빛과 어둠의 대비를 활용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많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화가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던 카라바지오는 도박, 폭행, 살인 등 범죄에 연루되었고,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도망 다니며 살았습니다.  

카라바지오, 카드도박 사기꾼(Cardsharps),1595, 텍사스 킴벨 미술관


두 사람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한 남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카드를 훔쳐보며 손가락으로 신호를 줍니다. 남자의 장갑 손가락 끝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미리 표시해 둔 카드를 손끝으로 만져서 식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상대 편 남자는 뒤쪽 허리 벨트에 카드를 숨기고 있고, 그 옆에는 칼을 차고 있네요. 칼을 차고 게임을 한다는 건 친구 사이에 재미로 하는 카드 게임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등 뒤에 카드를 숨기고 있는 그림이 또 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 – 1652)의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입니다. 테이블에는 세 명의 인물이 앉아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깊이 파인 옷에 장신구를 많이 걸친 여인이 가운데 앉아서 곁눈질을 합니다. 이들 중 유일하게 서 있는 하녀는 술병을 들고 와서 여인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자세와 눈빛은 이 도박판이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임을 암시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왼편의 남자는 허리 벨트 사이에 에이스 카드를 숨기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3명의 인물은 한 패인 듯하고, 오른쪽의 소년은 흔히 말하는 호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운 외모와 화려한 의복, 그의 앞에 쌓인 금화더미는 그가 부잣집 도련님이 아닐까 짐작하게 합니다. 이 그림에는 성경 이야기 <탕자의 비유>에서 경고한 세 가지, 술, 여성(성적인 유혹), 그리고 도박이 모두 들어있기도 합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1636-40, 루브르 박물관


 이 그림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같고 의상이나 구도가 미묘하게 다른 그림이 또 하나 있는데(The Cheat with the Ace of Clubs), 사기꾼이 들고 있는 카드가 하나는 에이스고, 다른 작품은 클로버(club)입니다. 이 그림은 카라바지오의 <카드 사기꾼>과 같은 텍사스 킴벨미술관에 있습니다. 두 그림을 비교하다 보면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듭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클로버 에이스를 든 카드 사기꾼, 1630-34, 97.8x156.2 cm, 텍사스 킴벨 미술관


화가는 왜 같은 그림을 또 그렸을까요? 둘 중 하나는 습작이었을까요? 아니면 이 장면이 화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걸까요? 미술사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킴벨 미술관의 그림이 루브르의 그림보다 2-3년 정도 먼저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루브르의 그림에서는 가운데 여인의 표정과 눈빛이 더욱 음흉해 보이고, 왼쪽부터 세 사람이 보다 밀착되어 있어 한 패라는 것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두 그림을 나란히 비교해 보면, 마치 ‘도박은 중독이기에 한 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라 투르는 프랑스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로 일했고, 리슐리외 추기경이 그의 작품을 수집할 정도로 생전에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1652년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편으로는 말년에 고리대금업자로 고향의 농민들을 괴롭혔기에 살해당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생전의 업적이 무색하게 상당수 소실되었고, 라 투르는 250여 년 간 잊힌 화가가 되었습니다. 1915년 헤르만 보스(Hermann Voss)라는 독일의 미술사학자가 그의 그림을 재조명하면서 라 투르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촛불을 그려 넣어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한 종교화가 발견되었지만, 차츰 도박현장, 세금징수 등 민중의 삶을 담은 풍속화도 많이 그렸다는 사실이 알려졌지요. 

       

카라바지오는 화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귀족의 후원을 받았지만, 도박과 폭력 등 어둠의 세계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라 투르 역시 궁정화가로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지만, 말년에는 고리대금업이나 폭력 등 좋지 않은 소문에 휘말렸습니다. 도박 현장을 생생하게 그림에 담았던 두 화가는 평소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했고, 인생도 빛과 어둠 사이를 오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에드바르드 뭉크,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 1892, 오슬로 뭉크 미술관

       

 뭉크(Edvard Munch,1863-1944)는 1891-1892년 프랑스 남부 니스 지역에 머물면서 가까운 몬테카를로의 카지노에 주기적으로 들렀습니다. 뭉크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룰렛 게임 장면을 관찰하고 후에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위의 그림은 그중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라는 작품입니다.     

 초록색 테이블 위에 붉은색 룰렛이 있고,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얼굴이 상기된 채 둘러앉아 게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림 왼편에는 한 남자가 룰렛의 결과를 받아 적고 있는데 뭉크와 닮았습니다. 뭉크는 이 기간 동안 몬테카를로의 도박장을 경험하면서 돈을 탕진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잠시 도박에 빠져 돈을 잃었지만, 결국 도박의 허무함과 어두운 면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대신 그는 도박장에서 보고 겪은 것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재미나 사교 목적이 아닌 병적인 도박의 특징이 있습니다. 도박에 집착하여 지나간 일을 계속 떠올리고, 다음에는 반드시 이길 것을 예상합니다. 점점 더 큰돈을 베팅하고, 그만하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으며 금단증상이 생깁니다. 현실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을 하고,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도박하고, 도박한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도박으로 인해 대인관계나 일에 부정적인 결과가 생기고, 다시 타인에게 돈을 빌리게 됩니다. 지난 1년 동안 9개의 증상 중 4개 이상을 보이는 경우 도박장애로 진단합니다.  

    

도박 장애를 보이는 사람은 크게 자극추구형(action gambler)과 현실도피형(escape  gambler)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극추구형이 더 흔한데, 저 각성 상태를 견디지 못해 늘 짜릿한 것을 추구하는 성격입니다. 현실도피형은 우울, 불안과 스트레스 등 부정적 정서를 회피하기 위해 도박을 하게 됩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도박으로 곤경에 처했던 음악가가 있습니다. 19세기 초 뛰어난 기교로 ‘악마의 바이올린’을 연주한다고 불렸던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1782-1840)입니다. 파가니니의 아버지는 항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수입이 좋지 못했고, 도박중독이었습니다. 파가니니는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 연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경제적 책임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열아홉 살에 집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파가니니 역시 도박에 빠져 말년에는 아예 카지노 건설에 투자했습니다. 처음 계획은 공연과 도박을 함께 할 수 있는 장소였지만 법적 허가를 받지 못했고, 파가니니는 큰 빚을 지고 바이올린까지 내다 팔아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도박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음에도 본인 역시 도박에 손을 댄 점, 카지노 건설에 섣불리 투자한 점 등을 볼 때 파가니니는 아버지를 닮은 자극추구형 성격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젊은 파가니니의 초상화, 작자미상

청소년 도박은 어쩌다가 공익광고의 주제가 되었을까요? 청소년기에는 전두엽 발달이 아직 미숙하고,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으로 충동성이 높아 꼭 자극추구형이 아니더라도 도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 밖에도 청소년 도박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도박에 접근성이 너무 높습니다. 카라바지오나 라 투르, 뭉크의 그림을 보면 도박을 하기 위해서는 도박판에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온라인에서 도박을 합니다. 특히 청소년은 좋아하는 웹툰이나 게임의 배너를 통해 은근슬쩍 도박에 빠져들게 됩니다. 

 

또, 청소년은 학교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집단 내의 다양한 문제와 연루되어 있습니다. 타학생과의 금전문제, 절도와 학교 폭력, 중고거래 사기, 개인정보 도용으로 불법대출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얽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도박에도 라 투르 같은 고리대금업자가 있습니다. 계좌가 없는 청소년에게 소액을 대리입금 해 주고 폭리를 챙기는 ‘대리입금’입니다. 어찌 보면 카라바지오나 라 투르가 살던 시대보다 경제와 문명이 발달한 만큼, 도박의 세계도 진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뇌의 보상체계에 관여하는 도파민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조절됩니다. 술, 도박, 마약 등 즉각적으로 쾌감을 얻는 방법과, 가치나 목표에 몰입하고 헌신하여 성취감을 느끼는 방법입니다. 전자는 도파민이 즉각 작용하므로 짜릿하지만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되고, 후자는 도파민이 서서히 활성화되기에 오래갑니다. 이 방법은 짜릿함이 덜한 대신 위험요소도 거의 없습니다. 청소년들이 라 투르의 그림 속 미소년처럼 즉각적 쾌감을 추구하는 도박판의 호구가 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서서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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