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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ul 10. 2024

헤르마프로디테는 남성일까, 여성일까?

생물학적 성소수자, 성분화이상

      

그리스 신화에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헤르마프로디테 (hermaphrodite, 또는 hermaphroditus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헤르마프로디테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답게 용모가 뛰어났고, 물의 요정 살마키스는 그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헤르마프로디테가 그녀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자, 살마키스는 신에게 그와 한 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헤르마프로디테는 남성과 여성의 몸이 합쳐진 희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장 프랑수아즈 드 트로이,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테, 뫼-보슈에 미술관(Meaux-Musée Bossuet)


위의 그림은 쟝 프랑수아즈 드 트로이(Jean-François De Troy, 1676-1752)의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테>입니다. 살마키스가 헤르마프로디테와 융합하는 신화 속 장면을 표현했습니다. 살마키스는 한쪽 발을 물에 담근 채 위태로운 자세로 헤르마프로디테를 덮칩니다. 헤르마프로디테는 살마키스보다 체격이 좋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기습에 당황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로 따지면 스토킹 범죄가 아닐까요? 아무리 남성이라고 해도 갑작스러운 여성의 육체적 접근은 공격으로 느낄만 합니다.                 



작자미상, 로마제국시대(BC.20-AD40년 추정, 1901년 발굴), 헤르마프로디테, 보스턴 미술관

                                                                                                                 

위의 작품은 보스턴 미술관에 있는 로마시대의 헤르마프로디테 조각상입니다. 여성의 가슴과 남성에 가까운 외부 성기, 전체적으로는 여성적인 체형으로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헤르마프로디테가 왼손에 에로스의 하반신을 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는 상반신도 있었는데 손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술관의 해설에 따르면 에로스를 들고 있는 것은 모성의 의미를 지니고, 남성의 성기를 드러낸 것은 액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헤르마프로디테와 에로스는 둘 다 아프로디테의 아들이고 미소년의 이미지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합니다.     


헤르마프로디테에서 유래한 성분화이상     

 

성염색체, 생식샘(난소 또는 정소), 외부 및 내부성기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남성 또는 여성으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과거에는 반음양(hermaphroditism)이라고 불렀습니다. 헤르마프로디테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그러나 반음양이라는 용어자체가 애매모호하고, 다양한 질환의 병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하여 최근에는 성 분화 이상(또는 성 발달 장애)이라는 용어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몸을 모두 지닌 헤르마프로디테의 신비로운 이미지와는 달리 사람들은 전형적인 성을 갖지 않은 사람을 불길하게 여겨 경계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이를 괴물로 여겨 티베르 강에 던져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에도 특정 지역에서는 성분화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기도 합니다. 

 

 아래의 조각상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테>입니다. 보스턴 미술관의 조각상과는 달리 누워있는 자세입니다. 17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발굴되었고 누운 모양이기에 침대 부분은 발굴 후 추가로 제작했습니다. 헤르마프로디테는 여성의 신체에 가까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지만, 신체 앞면을 보면 남성의 성기를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테, 고대 로마시대 추정, 17세기 발굴, 파리 루브르 박물관


      

성분화 이상은 다양한 질환이 원인이 된 증상군으로, 첫째 46, XX면서 외부 생식기가 남성화(태내에서 남성호르몬 과다에 노출된 경우)된 경우, 둘째 46, XY 면서 외부성기는 불완전 남성화 또는 완전여성인 경우, 셋째 난소와 고환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세 번째 경우를 진성 반음양(true hermaphrodit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출생 후 외부생식기 모양이 전형적 남아, 또는 여아와 다를 때 성 분화 이상 질환을 의심하지만, 정상 여성 또는 남성의 체형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생아가 애매한 외부 성기 모양을 보일 때 가장 흔한 것은 첫 번째 범주, 즉 46, XX 면서 부신(adrenal gland)에서 형성되는 성호르몬의 이상으로 인해 여아가 남성화되는 것입니다. 선천성 부신과다형성(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이라고 불리는 이 질환은 남아에게 생길 경우 성 분화에는 문제가 없으나, 급성 부신기능부전이라는 응급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생 후 시행하는 필수 선천성 대사이상 검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공의 시절의 일입니다. 신생아실에서 모호한 성기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언뜻보면 여아같지만 남성의 성기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관련 검사를 한 뒤 아이는 XX, XY 염색체가 섞여있는 모자이크형 성 분화 이상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이런 경우 선천성 부신과다형성에 비해 문제가 복잡하기에, 부모님을 면담하면 표정이 어두워지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아버지는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현재 건강 상태에 문제는 없는지 물어보시고는 흔쾌히 진단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는 나이는 많았지만 긍정적인 성격이었고, 어머니는 동남아 여성이었습니다.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분들에게 아이는 존재 자체가 축복이었습니다. 아이는 앞으로 병원에 다니며 검사와 치료를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태도의 부모님을 볼 때 ‘앞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극복해 나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 분화 이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에 아이의 사회적 성(gender)을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에 가서 또래와 어울리고 만 3세 이후가 되면 성별을 의식하기 시작하므로 그전에 아이의 사회적 성별을 결정해 주어야 정체성 혼란이나 낙인으로 인한 불필요한 상처를 피할 수 있습니다. 대개 외부 생식기의 모양이 어느 성에 가까운가에 따라 외과적 수술을 최소로 할 수 있는 사회적 성을 결정합니다.   

  

성 분화 이상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정상 남아의 정상 고환조직 위치에 있지 않은 정소를 제거해 주는 것입니다. Y염색체는 생식샘모세포종이라는 종양이 생길 가능성을 가진 염색체입니다. 여아가 복강 내 정소를 가지고 있거나, 남아가 고환 위치가 아닌 복강 등에 정소를 가지고 있다면 종양이 생길 가능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시기에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성별 스펙트럼과 성정체성 불쾌증     


 우리는 성이 태어날 때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성별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해부학적 요인, 심리학적, 문화적 요인, 타인과의 관계, 환경적 경험 등 다양합니다. 그래서 성 정체성(sex identitiy)이란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자신이 남성이나 여성인지 아는 것을 뜻하고, 성적 정체성(gender identity)이란 자신이 남자 또는 여자라는 느낌을 반영하는 정신적 상태로 정의합니다.

     

헤르마프로디테처럼 성 분화 이상이 있으면 성 정체성의 혼란도 반드시 발생하게 될까요?

태내에서 남성 호르몬의 생성 또는 작용에 불균형이 생긴 성 분화 이상의 경우 성 정체성의 혼란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천성 부신 과다증이 있는 여성이 사회적 성별은 여성으로 성장하였으나,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지 않아 신체적 남성화가 진행되는 경우 성 정체성 불쾌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태내에서 남성 호르몬이 정상 환경이었고 46, XY유전자를 가졌지만 외부성기에 기형이 있어 여성으로 인지된 경우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태내 남성호르몬 불균형이 있었던 모든 경우에 성 정체성 혼란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론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점, 그것이 성별이라는 보편적인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성분화이상인 아이를 살해하는 부모와, 성분화 이상인 아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부모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성분화이상이라는 생물학적 성소수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요?


 최근 독일에서는 호적과 여권에 기재할 법적인 성별을 스스로 결정, 변경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물론 법적인 성별을 자발적으로 정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논란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는 이 제정안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자유와 존엄성을 보장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트랜스젠더와 성 분화 이상, 논-바이너리(non-binary, 스스로를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의미의 성소수자들이 포함됩니다.  마치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처럼 성별조차도 스펙트럼으로 느껴집니다.      

 

스펙트럼이라는 개념과 반대로, 전형적인 범주를 미리 정하고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것을 차별하고 경계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분화하여 악을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멜라니 클라인의 편집-분열 자리와 닮아 있습니다. 편집-분열 자리는 대략 생후 6개월까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기에게서 나타나며, 적절한 양육을 통해 극복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회일수록 근거 없는 의심과 이분법적 사고, 공격과 박해가 일어납니다. 과학과 문명이 충분히 발달한 현대에는 성 분화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차별과 소외를 겪지 않도록, 성별 스펙트럼을 허용하는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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