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명화 속 다운증후군과 다름(장애)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의 그림입니다.
안드레아 만테냐, 성모와 예수(Madonna and Child), 1460년 경, 우) 보스턴 미술관(Boston fine art museum)
만테냐의 <성모와 아기>라는 두 그림입니다. 아기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윗 눈꺼풀이 눈의 안쪽 모서리를 덮는 epicanthal fold가 발달했고, 낮은 코, 입을 벌리고 있는 아데노이드 얼굴, 두드러진 혀 등 외모가 조금 다릅니다. 특히 두 번째 그림을 보면 아기의 새끼손가락이 짧고 굽어 있고(Clinodactyly), 오른발의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의 간격이 넓습니다. 모두 다운증후군의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만테냐는 왜 아기예수를 다운증후군의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만테냐의 그림을 분석한 Stratford 박사에 의하면, 그림 속 아기예수의 실제 모델은 만테냐 자신의 자녀 또는 만테냐의 후원자인 곤자가(Gonzaga) 가문의 자녀라고 합니다. 만테냐에게는 다운증후군 자녀가 있었고, 루도비코 곤자가(Ludovico Gonzaga, 이탈리아 만토바 지역의 통치자, 1412-1478)에게도 다운증후군 자녀가 있어 만테냐를 궁정화가로 고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말하자면 같은 어려움을 가진 아동의 부모 연대 같은 것이지요. 부유하고 지지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곤자가 가문의 다운증후군 아동은 4세 경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다운증후군을 그린 그림이 또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종교화가 Jan Joest of Kalkar(1450s- 1519)의 제자 중 한 명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아기예수를 경배(Adoration of Christ Child>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우측에 있는 소년은(천사로 추정) 다운증후군과 유사한 외모를 보입니다. 소년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함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뒷줄에는 양치기 목동이 있는데, 역시 다운증후군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다른 외모와 상관없이 그들은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아기예수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A. <아기 예수를 경배>, 작자 미상, 151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B, C. 다운증후군의 특징적 외모를 보여줌
다운증후군이란 특징적인 외모와 지적장애, 선천성 심질환 등을 동반하는 염색체 질환입니다. 다운증후군의 95%는 21번 염색체가 1개 더 많아 3개인 유형입니다. 영국의 Down 박사가 처음 발표했다고 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Down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대략 700명 당 1명 정도 발생하며, 산모의 나이가 많을수록 위험이 증가하지만 3-4%를 차지하는 전위형 다운증후군의 경우 산모의 연령과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위형 다운증후군이란 부모 중 한 명(대개 어머니)의 21번 염색체 일부와 다른 상염색체 일부가 자리를 맞바꾼 상태로, 부모는 염색체 수는 일정하여 증상이 없지만 부모의 염색체가 반씩 섞이는 과정에서 21번 염색체가 중복됩니다.
다운증후군은 특징적인 선천성 심질환, 청력 이상, 잦은 호흡기계 감염, 수면 무호흡, 근긴장도 저하 등이 있을 수 있어 의학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수의 다운증후군은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지역 사회 구성원으로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으며, 개인에 따라 강점이 다양합니다.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20대 전후까지를 기대 수명으로 보았으나, 현재는 50-60세까지로 연장되었습니다.
시선은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희 역을 연기한 정은혜 씨는 다운증후군 화가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어린 시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두려움을 느꼈고,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만화가였던 어머니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불안과 공포를 극복했습니다. 화가, 배우로 활동하며 2022년 <은혜 씨의 포옹>이라는 그림에세이를 출간했고, 유튜브 채널 <니 얼굴 은혜 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좌)정은혜 작가, 우) 니얼굴 은혜씨 (이미지 출처: 우리들의 블루스'정은혜 작가' 울산서 초대전 < 전시 < 문화 < 뉴스 < 기사본문 - 울산매일>
당시 드라마에서 영희가 타인의 시선에 불편해하는 장면은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다름'을 가진 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건너편 테이블의 아이가 영희를 빤히 쳐다보며 따라 합니다. 영희는 그것이 조롱의 시선이라고 느끼고 "보지 마!"라고 외칩니다. 영희의 언니가 부모에게 아이를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자 부모는 큰 소리로 "장애인을 놀리지 마라."며 짜증을 내고, 아이도 화를 내며 나가 버립니다. 식당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영희에게 집중됩니다. 이 시선은 과도한 관심과 집중, 약간의 조롱이 섞여 있어 영희와 가족에게는 상처가 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다름'에 주목하고, 다름이 약함으로 보일 때에는 상대가 기분 나쁘게 느낄 정도의 과도한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선은 때론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되어 다름을 가진 사람과 가족을 힘들게 합니다.
이에 반해 만테냐는 다운증후군 아동을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또 <아기예수를 경배>를 그린 화가는 경배의식 속에 다운증후군 아동을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그려 넣었습니다. 마치 박주형 작가의 동생이 큰 누나의 장애를 숨기지도, 과하게 드러내지도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장애란 어떤 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통로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운증후군의 모습을 한 아기 예수는 조금 달라 보이지만 여전히 순수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은 16세기 전후, 장애를 가진 아동을 유기하거나 사회적으로 격리했다고 전해지는 문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화가는 다름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사회구성원으로 포용하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가 보여주고자 하는 사랑이라고 말한 것은 아닐까요?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졸업앨범 사진에 학생이 하고 싶은 말을 한 줄 적어 넣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내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 ‘시간이 될 때 학교를 폭파했어야 하는데.’ 등의 문장을 적었습니다. 그중 다운증후군 학생 한 명은, “진정해, 그냥 염색체 한 개 더 있을 뿐이야. (Keep calm, there’s just an extra chromosome)라고 썼습니다. 다름을 가진 사람이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다름을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회는 얼마나 유연한 사회일까요. 그들의 유연함이 부러워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2016년 기준 연간 200~277명의 다운증후군 아동이 태어났습니다.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는 과도한 시선이 아니라 만테냐처럼 자연스럽게 상대와 발맞추어 주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