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면 고인의 인생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스스로 극단선택을 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내가 가까이서 임종 직전을 지켰던 사람이 있었다. 정식으로 결혼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림책<묘생이란 무엇인가>헌사에서 '남편'이라고 명시했었다. 짧았지만 재혼의 감정으로 연대했었던 기간 때문이다. 노년을 함께 보낼 계획을 꿈꾸며 가까이 지내다가 아쉽게 사별하고 나서는, 한동안 끊이지않게 고인의 인생을 복기해 보게 되었었다.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나와 나눴던 많은 이야기들 중 자신의 감정을 다룬 대목에서 그의 기억 속 지난 시절을 반추해보는 단서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년시절 어머니로부터 매맞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어머니도 저세상 가시고 없지만 정작 어머니 당신은 자신이 아들을 그렇게 '팼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도 전해들었다. 그리고 아들은 어린시절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로는 누구든 어린시절에 안맞아본 사람이 있겠으며 불안없는 어린시절 보낸 사람이 있겠느냐고 독자들은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듣는 내 마음 속엔 드러나지않게 그의 어머니에 대한 반감이 생겨났었다. 아들은 그랬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스스로가 매우 단아하고 흠결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찬란한 착각 속에 사시다 가셨다는 것이다. 그 어머니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단 한가지 오점은 아들이 앞서 타계한 서러움이었다.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의 1주년 기제사를 지킨 후 몇달 지나지않아 당신도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는 온화한 모습에 크게 모난 데 없는 불심깊은 분이셨으나 내 시선으로는 키티 크라우더의 그림책 <메두사 엄마>와 오버랩이 된다. 이 책은 모성애와 과잉보호 사이의 긴장과 같은 주제를 탐구한다. 메두사 엄마는 길고 큰 머리카락으로 딸을 학교도 보내지않는 등 사랑이 많지만 소유욕이 강한 어머니로 묘사된다.
어느 성인병인들 연관된지 않는 질병이 없겠지만 대장암의 주요원인이 '과식'이라는데에서 그의 평소 생활패턴에서 병인의 단서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그가 타계하기 7년여 전이다.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딱히 아픈 곳이 없어보였으나 매우 살이 찌고 둔한 모습이었다. 그 역시 나처럼 이혼한 상태로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나와 사귀고 나서도 어머니댁에 머물며 차로 20분정도 거리의 두 집을 왕래하는 생활로 이어졌다. 대장암 진단을 받은 건 나를 만나고 약 3년이 흐른 후 건강검진과정에서였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으나 수술없이 다른 방법으로 약 3년을 그럭저럭 건강하게 생활했다. 어머니는 매우 소식가이면서도 음식을 대량으로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셨고 음식을 해서 자손들 걷우어 먹이는 것이 일상의 낙이었다. 어느 어머니인들 자식의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보시기 좋지 않으리요. 어머니와 아들이 식사하는 패턴을 보면 어머니는 밥을 먹다가는 자신이 남길 듯한 분량을 아들에게 미루어 처리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아들은 충분히 배가 찬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잔반처리를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근데 이쯤해서 그만해야겠다. 어머니와 대장암을 연관시킬 의도는 없는데 글쓰기의 흐름이 매우 적절치않다. 발병원인과 죽고사는 일에 어느 특정요인을 지목할 수는 없다. 더우기 한 인간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듯한 경향은 취하고 싶지않고 그건 절대 옳지않다. 단지 그러한 일상을 지켜본 나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또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 때의 마음을 어디에 호소할 길 없어 지어놓은 시 한 편으로 기록을 마무리하고 싶다.
내 뱃속 아끼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매의 눈으로 내가 뭘 넣고 있는지 바라봅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내 뱃속은 내가 지킵시다.
내 입단속 내가 합시다.
내 뱃속 관리는 내가 합시다.
내 입이 내 뱃속 말씀에 귀기울이게 합시다.
무엇이 당기는지 물어봅시다.
이제 배가 부른지 물어봅시다.
언제 배가 부를지 물어봅시다.
너무 부르지 않은지 여쭈어 봅시다.
좀 더 먹어도 되는지 여쭈어 봅시다.
좀 덜 먹어도 되는지 여쭈어 봅시다.
꼭 더 먹어야 하는지 여쭈어봅시다.
좀 덜 먹으면 안되는지 여쭈어 봅시다.
내 배꼽 편하시면 남의 배꼽을 살핍시다.
내 배꼽 지키느라 남의 배꼽 부담지우지 맙시다.
내 배꼽 부대끼면 남의 배꼽도 생각해 줍시다.
배꼽 가진 자들이여 진정 그리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