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행생활자 Jan 19. 2022

너의 사주에 돈이 많단다.

그 많다는 돈들은 다 어디 갔을까.

대학을 졸업 후, 아니 솔직히는 유예 상태로 둔 후 나는 한참을 취업하지 못했다. 남보기에 그럴듯한 여행을 했던 것 또한 과거이며, 남들은 "어디라도" 가던데, 그 "어디라도" 가지 못했던 사람이 나였다. 모태신앙이지만, 대학입시 등 자식의 중요 대소사가 있는 날"만" 교회를 찾던 엄마와, 고모의 친구분 자녀들의 입시와 취업을 맞췄다던,  강남 어딘가에 위치한 철학관으로 간 것도 상반기 취업을 실패하고, 하반기가 다가옴에 초조함을 느끼던 6월이었다.


곰방대 같은 담뱃대를 물고 계시던 아저씨는 그러셨다. "너는 삼성은 못 가지", "공기업이나 은행을 가야지". 그리고 일반 대기업에 취업하기엔 꽤 늦은 나이인 (스스로도 생각했고, 남들도 그렇게 여겼던) 그때의 나는 스멀스멀 공기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 때 회계와는 담쌓고 지내온 내가 단시간에 금융공기업 필기를 뚫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 나는 경영학 필기 책만 열심히 보다, 어찌어찌 최종면접까지 올라간 공기업에는 최종에서 탈락했고, 시중은행에 "입행"했다. 

러시 앤 캐시랑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상여금으로 명품백을 살 수 있다던, 시중은행(a.k.a 1 금융권)


다소 슬프게도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날이 나의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 Best에 꼽히긴 꼽힌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최종 합격의 순간이 내 인생 Best 순간에서 약 100위 정도의 위치로 하강하길, "은행 퇴사(... 퇴행?)"의 순간이 인생 Best 순간에 하루빨리 오를 수 있길. 사실 지금도 은행 돈으로, 아니지, 말을 조심해야 한다, 은행에서 번 돈으로 먹고살고 있기 때문에, 내 인생 Best 순간 리스트 중 은행 합격의 순간은 꽤나 상위권이다.


모든 지인들이 나에게 "넌 오래 못 다녀. 너 봐라 일 년도 안돼서 관둘 거야"라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그 응원에 사직서로 답하지 못하고, 2022년 1월 현재 무려 3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은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을 "땡땡이 D+1024"로 장식하던데, 나는 내 프로필을 "입행 D+1024"로 장식하면서, 매일매일이 레전드 갱신 중이라는 걸 자랑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나의 많은 친구들은 한 번씩은 이직에 성공했지만, 나는 근 3년간 내내 "ㅇㅇ은행"으로 외길을 고수 중이다.


사실 그 공기업에 갈 거라던 철학관 아저씨가 당시 해주었던 말들이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나름 많은 사실들을 맞추었기 때문에, 사주라는 것에 대한 신뢰도가 한참 높았던 그 무렵. 나는 아저씨 덕에 돈 많은 남자와 잘생긴 남자 사이에 고민하는 것 마냥 공기업 경영학 책 한 번 보고, 사기업 자소서 한번 쓰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선배 하나가 연락을 해왔다.


"우리 엄마 요즘 문화센터에서 사주 공부하신다던데, 너 사주 볼래? 책만 보면 안 되고 진짜 사람들 사주를 봐야지 공부가 된다더라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던데, 한창 사주에 빠져있던 돈 없는 취준생인 나에게 공짜 사주라니, 바로 생년월일과 매번 가물거리는 생시를 적어 선배에게 바쳤다.


그리고 며칠 후 "야 ㅇㅇ아 우리 엄마가 너 사주에 돈이 많대", 이런 직관적이고 명백하며, 사주에 돈 많다는 나도 돈으로도 수 없는 사주풀이를 듣고 그냥 넘어가면 부정 탈까 봐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야 하겠다는 답을 선배에게 한 후, 극구 사양하는 선배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어머님께 꼭 전해 달라는 말 몇 번을 더했고, 


몇 달 후 정말 은행에 입행했다. 그래 돈이 많다고 했지, 그 돈이 내 돈이란 이야기는 안 했으니까. 은행 돈이 내 돈으로 보이는 순간 정말 쇠고랑을 차는 거다. 공교롭게도 결혼 전 은행원이셨던 그 선배의 어머님께서는 "그 친구 사주로 은행원은 힘든데, 은행원은 힘들어 고생하겠어"라는 축하 인사를 전하셨다. 힘들지만 그러면서도 가야 하는 길이 은행원이었던 건가.


신입 때 누구나 거쳐 간다는 출납(지점 금고담당)을 맡으며, "5만 원짜리 100장은 5백만 원이고, 10묶음(대속)은 5천만 원이야, 그러니까 대속이 2개면 1억이지, 자 세봐"라는 선배님의 설명을 듣고, 남의 돈을 세가며,  내 사주에 돈이 많다던 선배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었다. 남의 돈만 죽어라 세는 하루란.


입행 얼마 후 차장님과 밥을 먹으며 내 사주 이야기를 해 드리니, "나도 대학 때 무당집 가니까 나보고 금, 금속이 많다더라. 근데 내가 입행해서 첨한게 뭔지 아니? 버스회사 가서 동전을 자루로 실어오는 거였어. 스물다섯에 오십견이 오더라" 이쯤 되면 후불 교통카드의 도입과, 버스 환승 제도에 대해 감사를 표해야 하는 건지... 지폐는 종이로 만들고, 종이는 나무로 만드니까, 내 사주에는 목(木)이 많아서 지폐도 많은 건지. 아니지 지폐는 면으로 만든다는데, 목화할 때 목이 나무 목(木) 인지 방금 찾아볼뻔했다.


여하튼 아저씨 말대로 은행에 들어오긴 했으니, 또 아저씨 말대로 안 그만두고 다니고 있으니,

이제는 아저씨 입에서 나온 그 후의 이야기도 좀 맞아떨어지길 매일매일 바라며,

사주에 돈이 많은 은행원은 오늘도 남의 돈만 만지고, 남의 돈만 생각하고, 남의 돈만 불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