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단 하나의 소원
늘몽이는 어느샌가 자작나무숲 가운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 밍카야 웅카야 “
하며 하염없이 자작나무 숲에서 소리쳤다. 그러자 자작나무의 옹이들이 마치 눈처럼 일제히 늘몽이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순간 자작나무 안쪽 숲에서 나뭇잎들이 회오리를 치며 불어와 늘몽이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하늘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소중한 것들를 잃어버렸구나.
나는 단 하나의 소원만 들어줄수 있지. 무엇을 원하느냐??”
하얀숫사슴이 자작나무 사이에서 늘몽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슴은 밍카 웅카와 함께 영험한 기운을 받기 위해 찾아다닌 꿈드림마을의 수호동물 하얀 숫사슴이였다.
늘몽이는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하나 둘 떠올랐다.
하얀 강아지 뭉치, 나의 진정한 꿈, 짝꿍식물 그리고 친구들…
늘몽이는 사슴에게 선뜻 소원을 말하지 못했다. 친구들을 찾아야 하는 마음과 친구들이 찾고 싶어하는 짝꿍식물, 뭉치 어느덧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늘몽이가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하얀숫사슴의 주위는 더 진한 핑크빛으로 물들고 머리의 뿔에는 목련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시인 박목월이 가사를 쓰고 김순애 씨가 작곡한 〈4월의 노래〉다. 1960년대 이후 한때 학생들에게 널리 불리던 가곡이다. 활짝 핀 목련꽃 아래서 연애소설의 백미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던 그 순수함이 정겹다.
목련(木蓮)은 ‘연꽃처럼 생긴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라는 뜻이다. 목련은 봄기운이 살짝 대지에 퍼져나갈 즈음인 3월 중하순경, 잎이 나오기 전의 메말라 보이는 가지에 눈부시게 새하얗고 커다란 꽃을 피운다. 좁고 기다란 여섯 장의 꽃잎이 뒤로 젖혀질 만큼 활짝 핀다. 꽃의 가운데에는 많은 수술과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암술이 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식물학자들은 원시적인 꽃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원시식물이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1억 4천만 년 전, 넓은잎나무들이 지구상에 첫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때 나타났으니 원시란 접두어가 붙을 만하다. 가지 꼭대기에 한 개씩 커다란 꽃을 피우는 고고함으로나 순백의 색깔로나 높은 품격이 돋보이는 꽃이다.
꽃을 피우기 위한 목련의 겨울 준비는 남다르다. 마치 붓 모양 같은 꽃눈은 목련만의 특별한 모습이다. 꽃눈은 두 개의 턱잎과 잎자루가 서로 합쳐져 변형된 것이고, 겉에는 갈색의 긴 털이 촘촘히 덮여 있어서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도록 설계를 해두었다. 《사가시집(四家時集)》1) 에 실린 〈목필화(木筆花)〉라는 시에는 “이른 봄 목련꽃이 활짝 피는데/꽃봉오리 모습은 흡사 붓과 꼭 같구나/먹을 적시려 해도 끝내 할 수가 없고/글씨를 쓰기에도 적합하지 않네”라고 했다. 목련을 두고 목필화라는 다른 이름을 붙인 이유를 설명한 셈이다.
겨울날 붓 모양의 꽃눈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끝이 거의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옛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비롯한 몇몇 문헌에 나오는 ‘북향화(北向花)’란 목련의 이런 특징을 잘 나타낸 말이다.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북쪽을 향하는 꽃봉오리가 더 많은 것 같다. 꽃봉오리의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더 빨리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끝이 북쪽을 향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동의보감》에는 목련을 신이(辛夷), 우리말로 붇곳(붓꽃)이라 하여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따서 약재로 사용했다. 목련은 “풍으로 속골이 아픈 것을 낫게 하며,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코가 메는 것, 콧물이 흐르는 것 등을 낫게 한다. 얼굴이 부은 것을 내리게 하며 치통을 멎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수염과 머리털을 나게 한다. 얼굴에 바르는 기름을 만들면 광택이 난다”라고 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목련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김수로왕 7년(서기48)에 신하들이 장가들 것을 권했지만, 하늘의 뜻이 곧 있을 것이라면서 점잖게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바다 서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목련으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整蘭橈],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아들였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아리따운 공주는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으로 훗날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다. 이처럼 목련은 꽃뿐만 아니라 나무로서의 쓰임새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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