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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4. 2022

'아빠'라는 단어가 생소한 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있을까?

삶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은 불현듯 다가온다. 화창한 여름날 밤, 방어할 새 없이 갑작스레 퍼붓는 소낙비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앞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주황빛으로 익어가던 어느 날.  실컷 뛰놀다 들어와 툇마루에 누워 높디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다를 게 없는 일상의 그런 날이었다. 그날 나는 원치 않게 불쑥 알게 되었다. 내겐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흰 머리카락이 수두룩, 삐죽하게 말랐던 몸매에, 어찌나 괄괄하고 허스키했던지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외할머니가 예고도 없이 말씀하셨다. "너네 아빤 죽고 없어."     


 아빠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러 일본에 가셨던 이모부처럼,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딘지 모르는 나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 시간 헤어졌지만, ‘언젠가!!’ '반드시'!!! '짠'!! 하고 나타나 토끼 인형을 안겨주며 나를 꼭 안아줄 거라 상상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보리라 생각했다.   

        

그런 날이 불현듯 왔어야 했다. 내가 기다렸던 날은 그런 날들이었으니까.....

아니, 그런 날을 맞이하지 못하더라도 아빠는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어딘가에 살아있어야 했다.

내가 원했던 예고 없는 일상은 불행이 아닌, 행복의 순간이었니까.     


흩어져있던 삶의 조각들이 마침내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된 순간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죽음의 비애'.


... 그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돌린 채, 못 들은 척하느라 애썼던 기억이 난다. 고작 9살 난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눈을 감은 채 잠시 잠깐 딴생각을 하는 척, 못 들은 척하는 것뿐이었다. 온 정신을 붙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마당으로 뛰어나가 나를 따르던 강아지를 안으러 가자니 몸이 움직이질 않았기에 그저 눈을 감았다.


 처절한 운명을 한탄하며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가뜩이나 처량했던 내 신세가 땅속에 짓밟힌 개미처럼 처량할 것 같았으니까. 무엇보다 나를 달래줄 그 누군가가 아무도 없었다. 9살, 그 아이는 그래도 눈치가 있는 아이였으니까. 슬퍼할 겨를도 없이 주책없이 흘러나온 눈물 한 방울을 흐르지 않게 꾹 참느라 갖은 애를 써야 했다. 뱃속에는 찰방찰방 눈물이 가득찬 채..


     

하필, 외할머니는 그때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하셨을까?

겨우 9살, 엄마마저 갑자기 떨어져 살아야 했던 그때.

함께 살았지만 무서워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던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던 그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칫밥을 충분히 먹었던 그때.

 왜 하필 그때였을까?..     


그날의 하늘은 참 얄밉게도 푸르렀다.

그날의 공기는 참 야속하게도 선선했다.          

'아빠'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어보지 못한 아이는 세상에 몇이나 될까?     






"삶의 시작을 당당히 알리기도 전에 버림을 받거나 홀로 남겨져 조각나고 소멸되는 것은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이다. (Herman,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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