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자수 Oct 26. 2022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밝히고 싶지 않았던 진실


 



아빠가 없다고, 아빠가 죽었다고 세상이 슬픔으로만 가득 찬 건 아니다. 또래 아이들처럼 노는 걸 좋아했고, 우렁찬 목소리로 여장부 골목대장 역할을 톡톡히 하곤 했다. 마음속에 서러웠던 그 사실만, 평생토록 안고 갈 그 사실만 드러날 일이 없다면 여느 아이와 같은 평범한 나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골목대장을 자처해 동네 아이들을 모아 비석 치기 한판을 하고 있던 때였다. 울트라 파워 눈빛을 비석에 발사하고 초강력 집중력으로 곧게 세워져 있던 비석 하나, 하나를 장렬하게 전사시키던 그때. 황홀감에 젖어 승리의 포효를 부르짖던 그때. 옆집 순이가 쌩하니 지나갔다. 매일같이 고무줄놀이, 비석 치기, 오징어 게임을 하던 친구였기에 반가움에 외쳤다. 나의 강렬한 라이벌 상대이기도 했기에 어제 진 빚을 갚겠다는 일념 하에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야! 비석 치기 한판 하자!!"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왜?"

"몰라!"     


 자다가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잘 놀던 애들도 토라지면 “너랑 안 놀아”를 서슴지 않고 뱉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그럴 테면 그러라지! 더 정교한 비석 치기를 하기 위해 공터로 달려갔다. ‘이 재밌는 놀이를 하지 않겠다니 네가 손해지! 흥칫뿡!’ 속으로 투덜투덜하며 울퉁불퉁한 돌멩이 사이로 매끈한 돌덩어리를 찾는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랑 놀지 말라고 했다고? 왜?’

왜 순이 엄마는 나랑 놀지 말라고 했을까?

'나에겐 아빠가 없어서? 엄마가 아빠가 같이 안 산다는 이야긴 친구들에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나랑 안 놀려고 그럴 거라고.'     

..........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재밌던 놀이도 심드렁해졌다. 순이 엄마에게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갔거나, 예의 없이 굴었다거나, 순이 엄마가 우리 엄마랑 다퉜을 수도 있다. 어른들도 우리처럼 다툴 수도 있으니까. 하고 많은 이유 중에 하필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가 ‘아빠 無’ 였다니.


 차마 그 아이에게 너희 엄마가 왜 나랑 놀지 말라고 했는지 따져 묻지 못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때가 더 많으니까. 속마음을 알게 되고, 속살이 드러나면 더없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그 말이 사실일까 봐 두려웠고 무서웠기 때문에 차마 묻지 못했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 자체에 나란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까 봐 못내 두려웠다. 아빠가 내 곁에 살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 가끔 나는...  이토록 초라하게 무너졌다. 나를 지탱해줄 아빠 없이는, 내 옆에 든든한 언덕이 되어줄 아빠 없이는 세상이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라는 존재도, 우렁찼던 목소리도, 즐거웠던 나의 세상도 작게 또 작게 쪼그라들었다.      


 교복을 입으면서 비밀은 더욱 꽁꽁 숨기고 싶었다. 누군가 나의 비밀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이 떠나갈까 봐, 혹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할까 봐, 동정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볼까 봐.. 속내를, 속살을 다 보여줄 수가 없었다.    

  


때론 굳이 아빠 이야기를 묻지 않았기에 대답하지 않은 것인데도 아빠가 있는 척한다던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없는 게 뭐가 그리 창피하다고 그렇게나 곤두세웠나 싶지만 그때만 해도 속살을 다 들춰보인 양 수치스럽고 창피했다. 적당히 가릴 것은 가리고 보이지 않을 것은 보이지 않는 게 편했던.. 그런 나이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아무렇지 않은 척,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되물을 수 있을까? 그대들은 잘 놀다가도 아빠가 돌아가셨단 이야기 하나에 뭐 그리 당황스러워하냐며 웃어 보일 수 있을까?

 투명한 속내를 다 드러내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만의 비밀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나조차 비밀을 소화할 수 없어서, 혹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할까 두려워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아직까지 못 만난 터라....


다양한 이유들로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겠지.  비밀 없이 속내를 투명하게 다 드러내는 삶 과연 진실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안에 감춰두고 숨겨놓은 비밀만큼 다른 이의 비밀 또한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오늘따라 양파의 하얀 속살이 더욱 두터워보인다.

이전 04화 고작 10개월, 우리가 함께 한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