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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5. 2022

생(生)이 간절했던 아이와 생(生)을 놓아버린 남자






오늘도 배가 아프다.

어릴 때부터 유독 배가 자주 아팠다. 잠시 옆으로 누우면 거짓말처럼 괜찮아지는 배의 감각.

이런 날 보며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기 때 네 아빠가 죽으면서 널 돌볼 수가 없어서..."


나의 장(腸)의 아픈 역사는 아빠의 마지막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그날. 이제 갓 20대 중반이었던 나의 아빠가 생을 마감했던 날.

10개월 된 아기는 어떻게든 생을 이어가고자 울부짖는데 이제 갓 20대 중반이었던 남자는 생을 놓아 버렸던 그날.     


실신해서 쓰러진 엄마는 나를 차마 돌볼 수가 없었을 터이다. 유일하게 엄마 젖만 세계 최고의 음식이다 여기며 먹고살았던 나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배가 고파요! 앙앙앙"

어쩌면 더 이상 목놓아울 수 없었던 엄마를 대신해서 찢어질듯한 날카로운 울음을 내뱉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닥칠 무수히 많은 설움과 노여움을 미리 예견하고 처절하게 울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엔 그냥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구원자가 나타났다.

나랑 한 달 차이로 태어난 사촌 동생을 키우던 이모. 그 이모가 목포에서 경기도까지 달려오셨다.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던 이모는 울고 있는 나를 안았다.


아기들은 엄마 젖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다른 엄마의 젖은 거들떠도 안 본다던데.. 나는 이모 품에 안겨 젖 냄새에 취해 젖을 달라고 더 울어댔단다.

이모는 생의 한복판에서 살겠다고 울부짖는 조카를 위해 기꺼이 젖을 내어주었다. 낯가림이 한창 심할 10개월, 처음 본 이모의 젖을 생존본능으로 물었다. 꿀꺽꿀꺽. 한껏 먹고는 곤히 잠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모와 사촌 동생은 나는 기억에도 없는 이야기를 한다. 생각해보면 사촌 동생 그 녀석도 알지도 기억도 못하면서 옆에서 한 술 더 떠서 얄밉기 그지없다.  

"네가 내 젖을 뺏어 먹어서 내가 머리가 나쁜 거야. 나도 공부 잘할 수 있었는데."

"네가 똑똑한 박사가 된 건, 이모의 젖 덕분이다!"     


.....

어릴 땐 내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를 남의 젖을 뺏어먹는 나쁜 아이로 여기나 싶어 입을 삐죽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살게 해 준 이모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딱 여기까지면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이모는 당연히 자신의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때까지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엄마 젖은 그 후로도 빨 수 없었고, 배고파 우는 나를 달래려 누군가 돌이 되기도 전의 아기에게 딸기우유를 먹였단다. 그때 이후로 탈장으로 고생했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자주 배가 아픈 채로, 내 운명이겠거니.. 하고 살아가고 있다.     


때론 이런 생각을 한다.

지 아빤 벌써 죽음의 길로 들어섰는데..

남은 딸이라곤 살아보겠다고 이모 젖을 힘껏 빨아댔다고 하니...

그렇게 생을 부여잡고 싶었던 내가 표독스럽게 느껴진다고.

뭐가 그리 살고 싶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생을 부여잡았으니!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잘살아보고 싶다.

아빠가 살지 못했던 그 삶을,

누군가에겐 그토록 살고 싶었을 그 삶을...


아빠 없이 살았던 그 삶에 대해 누군가에게 다가가 이야기하고 괜찮다고, 살아나갈 수 있다고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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