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와룡공원 & 백악구간

오르락 내리락 계단길과 나무들의 조용한 수다

by Stella

계획과 현실은 늘 어긋나듯, 계획은 와룡공원에서 백악구간 창의문까지 걷기 였으나 수성동 계곡이 끄트머리에 붙어버렸다.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모두들 휴일이면 늦잠을 잔다는데, 되려 휴일이 되면 이유도 없이 더 일찍 잠에서 깬다는 거고, 이날도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와룡공원까지 가려면 강남대로에서 470/741번 버스 타고 종로 2가 하차, 길 건너 YMCA 앞에서 종로02번을 타면 되는데, 버스 첫차조차 3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하므로 이번에는 420번으로 동대문 하차, 그 자리에서 갈아타고 종로 2가까지 갔다. 버스들이 금새 와서 기다린 건 거의 없었다. 어쨌든 전체 구간은, 와룡공원 - 말바위 전망대 - 촛대바위 - 백악 곡성 - 백악 마루 - 창의문 - 인왕산 자락길 - 수성동 계곡 - 안국역에서 지하철로 귀가. 새벽 도깨비 아줌마는 거의 다섯 시간 동안 걸어다녔다.


2024년 1월 1일에 바로 이 코스를 걸으려고 와룡공원에 갔다가 쌓인 눈이 녹지 않은 상태여서 그냥 일출만 보고 돌아왔으나 5월에는 괜찮을 것 같아서 나선 길이다. 트랙킹화 신고, 스틱은 가져갈까말까 망설이다가 혹시나 싶어서 한 개만 가져갔는데, 그거라도 없었다면 훨씬 힘들었을거다.


종로02번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올라가서 - 꼭 이런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 마을버스는 한번 타보길 추천한다. 가면서 보는 뷰도 좋아요~! - 와룡공원 정류장에서 내린 후, 길을 건너 좀 더 올라가면 공원 팻말이 보이고, 산스장과 정자와 화장실이 있다. 거기서 말바위 전망대로 가는 표시를 따라 가면 길 입구에 도착한다.

20240512_062443.jpg
20240512_062919.jpg
20240512_062946.jpg

1월에 왔을 때는 눈이 잔뜩 쌓여있고 길이 엄청 미끄러웠지만 지금은 초록초록 하다. 가다보면 말바위 전망대가 나오고 거기서 보는 뷰도 정말 좋다.

20240512_064351.jpg
20240512_064327.jpg

전망대에서 내려오자 아래 맨 오른쪽 사진처럼 성곽길이 나타났다.

20240512_064425.jpg
20240512_064414.jpg
20240512_064701.jpg

누가 '악'자 돌림 산이 아니랄까봐 엄청 가파른 계단길이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다. 비슷비슷한 길을 따라 가다보니 숙정문이 딱 버티고 서 있는데, 간밤에 내린 비 덕분에 땅은 촉촉하고 나무와 풀에는 생기가 돌고 맑은 하늘과 더불어 새소리도 맑고 청아하다.

20240512_065151.jpg
20240512_065232.jpg
20240512_070303.jpg

잠시 후 촛대바위 표지판이 나왔다. 참고로 말하자면, 가는 길목에 있는 건 아니고 바위를 보려면 잠시 길을 이탈해서 다른 계단을 잠시나마 오르락 내리락 해야한다. 백악곡성도 마찬가지다. 귀찮아서 그냥 가려다가 맘먹고 나선 길, 날씨도 선선하고 맑아서 가는 김에 다 들려봤다.

20240512_071428.jpg
20240512_071439.jpg

거기서부터 백악곡성까지는 진실로(!)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는데 그걸 보상이라도 해주듯 뷰는 끝내줬다.

20240512_072635.jpg
20240512_072641.jpg

올라갔으니 또 내려가고, 내려갔으니 또 올라가고의 연속이다. 드뎌 백악마루! 342미터라는데 왜 이리 높고 힘든거니? 표지석은 참으로 아담했다. 하하~

20240512_073332.jpg
20240512_075241.jpg
20240512_075428.jpg

백악마루까지도 그랬지만, 거기서부터 창의문까지도 가는 곳마다 군사시설 방향으로 사진촬영 금지라는 붉은색 경고표시가 있는데다, 찍을 수 있다고 해도 비슷비슷할 거 같아서 그냥 내려왔다. 내려오는 계단도 많고 경사도가 정말 찐으로 가파르다. 드뎌 창의문까지 왔다!

20240512_083943.jpg
20240512_080040.jpg
20240512_082854.jpg


창의문 앞에서 살짝 고민했다.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서 귀가해도 되는데, 힘들긴 하지만 아직도 아침이고 날씨도 이렇게 좋은데 그냥 가는 건 날씨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길을 건넌 후 윤동주 문학관앞을 지나 인왕산 자락길로 들어섰다. 언제 와도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길이다.

20240512_084242.jpg
20240512_084315.jpg

초소책방을 지나 걷다보니 어느새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왔다. 간밤에 비가 와서 계곡에도 물이 흐르나보다.

20240512_084606.jpg
20240512_090053.jpg
20240512_090005.jpg

수성동 계곡에 여러번 왔지만 실제 물이 흐르는 걸 본 건 몇번 안된다.

20240512_090537.jpg
20240512_090739.jpg
20240512_090859.jpg

자, 이렇게 새벽 도깨비 아줌마의 뚜벅뚜벅 새벽 여행이 끝났다. 백악구간에서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수성동 계곡에서는 물소리를 원없이 들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좋은 날이다!

keyword
이전 07화태릉 강릉 & 숲길 & 화랑대철도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