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공사 Mar 08. 2022

우리 집을 아지트로

주간 오공사 #8

대학생이 되고 처음 세운 규칙 중 하나는 자취방에 친구를 데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저 규칙은 오래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자취방을 가지게 된 20대 초반에는 내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있는 게 아주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괜히 집에 초대한 사람의 양말 바닥이 더러운지 보게 되고, 밥을 먹다 흘릴 때 내 물건에 튀진 않을지 걱정하곤 했다. 계속 가족들과 살거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공용공간에 익숙해졌있었고,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7평짜리 자취방이 너무 소중했다.  누군가 내 공간에 허락 없이 들어오지 않고, 온전한 내 공간을 가지게 되는 것. 그 해방감과 내 공간이라는 소유욕에 눈을 뜬 것이다. 


시간이 지나 서울에서 3번의 이사를 하고 지금 집에 들어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20대 초반은 20대 후반이 되었고, 우리 집엔 친구들의 칫솔이 늘 있고, 잠옷을 두고 가는 친구도 생겼다. 우리 집은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예전엔 누군가 집에 온다고 하면 대청소를 했지만 이젠 있는 그대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편안한 사람들을 내가 제일 편안한 장소로 부르는 것. 그리고 가장 편안한 나를 보여주는 것. 이것들이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남이다. 


워낙 친구를 발 넓게 사귀는 편이 못돼, 제일 친한 친구를 뽑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 친구들이 바로 내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학교- 기숙사를 오가며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이다. 총 6명의 친구 중 절반인 3명이 나와 같이 서울에 살고 있고 우리는 늘 이 넓은 서울에 왜 우리끼리만 노는지에 관해 한탄하지만 늘 우리끼리만 만난다. 예쁘고 귀여운 파자마가 아닌 체육복 반바지에 목 늘어난 반팔 차림, 짝이 맞지 않는 잠옷 세트를 입고 내 친구들은 나와 같은 모습으로 놀 준비를 한다. 사실 노는 것도 별거 없다.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떡볶이나 먹으면서, 옛날 고등학교 체육대회 이야기를 하는 일. 항상 그게 전부다. 그렇게 내 친구들은 나에게 집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이렇게 집을 개방하고, 아지트로 만들고 난 후 집에 대한 애착이 커져갔다. 그전까지는 이사를 할 때마다 큰 미련이 없었는데, 이번 집은 추억이 많이 남아서 그런지 후유증이 클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곳에 두고 갈 추억이 벌써 그리워지기도 한다. 내 공간엔 따듯한 추억들이 넘치도록 차있고, 나는 그 온기들로 혼자 있던 밤을 잘 견뎠다. 


어떤 공간인지가 중요한 게 아닌, 어떤 추억이 있는 공간인지에 따라 기억에서 차지하는 크기가 달라진다. 나는 부모님과 시골에서 대구로 이사 온 후 아파트를 3번이나 옮겨 다녔지만, 아직도 우리 집을 떠올리라고 하면 시골에 있는 마당 딸린 벽돌집이 생각나고, 내 방을 떠올리라고 하면 자취방, 기숙사 방, 대구 본가에 내 짐이 남아있는 방이 아닌 시골집에 동생과 함께 쓰던 2층 침대가 있는 방을 떠올린다. 이렇듯 내가 간직한 추억의 크기만큼 공간은 나에게 남아있다. 


내 공간이라는 범주에 들어오는 곳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장 편안한 추억들을 쌓는 것. 그건 분명 내가 기억하고 싶은 추억의 한 페이지이다.

이전 06화 리벤지에 강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