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애들은?, 자가격리 시 애들의 학교와 학원은? 내가 어디서 걸린 거지?… 그 후로 나와 밥을 같이 먹었던 내 짝꿍과 우리 팀원들은?, 아~! 임산부도 있는데…. 등등등’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는 동안에도 전화기 너머로 설명은 이어지는데, 뭐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긴 통화는 이어졌고, 통화가 끝난 후, 남편에게 빨리 애들과 함께 보건소로 가라고 하고는 이른 시간부터 전화를 돌렸다. 내가 양성이니, 상대는 괜찮은지, 자가격리로 멈춰질 업무들에 관련하여 통화하고 나니, 내 동선을 묻는 보건소 직원과, 관련 부서 사람들의 통화가 이어지고 이어졌다. 그렇게 오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후에는 내 안부를 묻는 전화가 계속됐다.
그렇게 힘이 쭉 빠질 무렵 옆의 짝꿍한테 톡으로 온 한 개의 파일. 인사예고문이 왔다. 여지없이 이번에도 승진자 목록에는 내가 없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의 악몽은 끝이 났다.
옆에 과에서 3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니, 가운데 있는 우리 부서와 그 옆에 부서 전 직원은 PCR 검사를 받아보라고 해서 나온 검사 결과였다. 우리 집 식구들도 다 음성이었고, 나만 양성이었다. 다행히 무증상이었는데, 아마도 옆의 부서에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났을 일이다. 옆의 부서와는 화장실과 아래층 커피숍의 동선이 겹치다 보니 걸렸나 보다.
그렇게 자가격리 10일을 정말 방과 화장실만 왔다 갔다 했다. 나로 인해 강제로 자가격리하는 남편이 10일 내내 삼시세끼 밥을 했다. 방문 앞에 식판을 올려다 주면 나는 그걸 받아먹기만 했다. 영화 ‘올드보이’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나날이었다. 그렇게 10일 내내 밥만 받아먹고 하는 일이란, 넷플릭스, 유튜브, 방을 청소기로 미는 정도의 일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살만 찌겠구나 했는데, 되려 1kg이 줄어 있었다.
그날부터 남편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살 빠진 거 같지? 그거 살이 아니라 근육량이 줄어든 거야. 네가 면역력이 떨어져서 너만 걸린 거야. 이제부터 운동해. 운동을 안 하니까 몸이 자꾸 약해지는 거 아니야” 등등등. 면역력이 떨어진 아내에게 보약은 안 해줄망정 폭풍 잔소리가 이어졌다.
자가격리 10일을 끝내고 출근 첫날. 하루 동안 3번 두통약을 먹고 집에서 밤새 온몸이 아파 끙끙 앓았다. 자가격리 때는 멀쩡했던 몸이 아무것도 안 하고 10일을 놀고먹다가 일을 하려니 몸살이 난 것이다. 그렇게 몸살을 3일 앓고는 운동하기로 맘을 먹고, 그다음 주에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자가격리 중 드라마 ‘나빌레라’를 봤다. 거기에 나오는 박인환 배우가 더 늦기 전에 꼭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던 발레를 한다는 내용이다. 한 청년의 도움으로 무대에 오르는 꿈도 이루어냈다. 그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기억도 못하기 전에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 홀로 코로나가 확진되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 건강의 마음이 절실해졌기도 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공원에 높은 암벽이 있다. 약 10년 전 거기에서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완전 반한적이 있었다. 민소매 옷에 등근육을 보고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을 올라가 보고 싶었다. ‘하고 싶다’라고 막연히 생각만 하다, 내가 40대 후반이 되었다. 다른 운동은 흥미도 없다. 그렇다고 과연 내가 지금 가능할까?라고 고민은 한참 했었지만, 이번에 이리 걸리고 나서는 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갔다.
보통 사람들은 체험을 해보고 등록을 할 텐데, 3개월 이용료에 강의료까지 한 번에 등록을 했다. 하고 온 첫날 죽을 듯이 아팠다. 한데, 사람들한테 말도 못 하고 그냥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나이에 왜 그걸 하면서 생고생을 하느냐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일 게다. 남편도 자기가 하는 탁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기도 했던 터였다. 그렇게 화, 목, 토 일주일의 3번을 2주 다녀왔다. 첫날의 죽을 듯이 아프던 몸도 익숙해졌는지 더 긴 시간 벽에 매달려 있어도 괜찮다. 이렇게 그 공원의 암벽과 가까워지는 거 같다.
20대 때는 술 먹고 놀던 생각만 난다. 정말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마시던 술고래가, 40대가 되어 수면장애, 고혈압, 면역력 저하로 여기저기 아픈 몸이 되었다. 60대에 잘 노는 것이 내 목표인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야말로 위기상황이었다.
3년 전 친정식구들과 보라카이를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인천공항 면세점 앞에서 머리 하얗고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를 뵈었다. 그때 느낌은 저 연세로 해외 가시기가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돌아오는 칼리보 공항에서 또 그 할머니를 만났다. 새벽시간에 길게 늘어진 줄 사이에서 만난 할머니는 곧 쓰러지실 듯한 모습으로 여행가방 위에 앉아 계셨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깨달은 것 하나, 무조건 건강하기였다.
그럼 뭐하나, 그렇게 깨닫기만 했지. 한 것이라고는 3년간 딱히 없던 차에 이번 일을 겪은 거다. 그것도 그 많은 사람 다 정상인데 나 혼자 확인이 되어서야…
돈이 있어 해외여행을 가도 건강하지 못하면 그것들을 즐길 수도 없다. 퇴직 후 무조건 놀 것이다라고 계획만 짜 놓고 건강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다. 젊어서 일만 하다가 건강을 지키지 못하면, 퇴직 후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평소에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TV만 보고 싶다 노래를 했건만 갇혀 지내는 10일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TV도 자유를 보장받은 상태에서 내가 보고 싶을 때 봐야 재미도 있다.
늙어서 제대로 즐기고, 누리면서 살고 싶으면 무조건 건강이 최고다. 최고급 옷과 장신구로 나를 치장하고 명품백에 사양 좋은 자동차를 사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제일 먼저 미래의 건강한 나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