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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Feb 15. 2021

범죄 집단, 악플러들의 정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경계

부정적인 소수의 세(勢)가 절대다수에 비해 적다면 그들이 부정을 일삼는 걸 저지할 수 있습니다. 애당초 티조차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수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더 확장되면 오히려 다수를 위협하면서 여러 문제를 낳습니다.


가늠하기조차 벅찬 확장세


횡단보도에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10명이 서있습니다. 이때 기다림에 지친 한 사람이 무단횡단을 합니다. 나머지 사람은 어떨까요? 그저 무단횡단을 한 자가 다치지 않고 무사히 건너기만 바랄 뿐 그의 행동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뒤따라 2~3명이 무단횡단을 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자신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게 되고 다른 이들도 하나 둘 선을 넘기 시작합니다. 결국 남아 기다리는 사람은 소수가 되고 말죠.


심리학, 사회학에서 다루는 '3인의 법칙'입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가상공간에서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이런 추세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온라인을 이용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아예 댓글을 보지 않고 해당 내용만을 보고 이탈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나 의견이 궁금해 확인만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기사와 같은 콘텐츠에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은 이용자 중 소수에 그칩니다.


그리고 댓글을 다는 사람 중 악플러는 극소수에 불과했'었'습니다.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에 동참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선을 넘고 커뮤니케이션 환경 자체를 망가뜨리다 보니 기준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넘어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이 확장되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댓글창은 온갖 욕설과 비속어, 부정적인 신조어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건전한 토론 문화를 기대했던 소통 도구는 그저 감정을 쏟아내는 창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오염의 속도는 강제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있습니다.


누가 악플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세상

어떤 사람이 악플을 달까요? 과거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연세대학교 정신의학과 송동호 교수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송 교수는 나쁜 사람, 불만이 많은 사람, 약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비겁한 사람이라 설명했습니다. 악플러들은 누군가를 시기하고, 불만만을 표출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내뱉죠. 익명성이라는 시스템 뒤에 숨은 겁쟁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심리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약자임에 불과하죠.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다섯 부류가 현대의 악플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닙니다. 하나의 결핍만 있어도 온라인 상에서 악플러로 활동하는 지킬 앤 하이드가 여럿 존재합니다. 일상에서는 남 부럽지 않은 사람도, 많은 존경을 받던 사람도 악플러가 되곤 합니다. 그만큼 이 사회, 환경이 병들었다는 걸 방증하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인터뷰 도중 송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사회가 건강하지 못했을 때 ‘개인의 병리(악플러들의 심리적 문제)’가 튀어나오게 된다고 말이죠. 


다양한 사회 문제와 대립, 각종 위기와 고난으로 현대 사회는 병들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청년들은 터전을 '헬조선'이라 비하하며 소중한 가치들을 하나씩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과거보다 엽기적이고 잔인한 범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려스럽게도 코로나19 시대를 맞으며 병세는 더욱 심각해지고 말았습니다. 거리두기 등 지침을 지키는 자와 이를 무시하고 이기적인 일탈을 일삼는 자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실물 경제와 국가 재정건전성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으며, 많은 자영업자의 꿈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성장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습니다. 이 시대의 우울감인 '코로나 블루'가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거죠. 한창 또래와 어울려 성장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치명적인 2020년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도 말이죠.


2020년 5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9~24세 청소년 자녀를 둔 보호자 198명과 청소년 9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었습니다. 


결과에서는 자녀와 부모 모두 불안·걱정을 가장 많이 느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녀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기에 자녀(59.8%)에 비해 부모가 느끼는 불안감은 82.8%로 강했죠.


반면 청소년들은 부모보다 '화/분노'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부모 중 14.7%가 느낀 감정인 데 반해 자녀들은 2배에 가까운 28.1%가 화와 분노를 느낀다고 답변했습니다. 미래를 이끌어갈 새싹들의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한 겁니다.


일상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전환돼버린 이 시기에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곳은 온라인 한 곳만 남았습니다. 당연히 이곳엔 더 많은 부정적 표현들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고 마냥 행복만을 기대할 순 없을 겁니다. 과거부터 이어졌듯 새로운 전염병이 등장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회문제가 거론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건전치 않은 방법으로 감정을 쏟아낸다면 우리 사회가 간직하고 있는 병세는 더욱 악화될 게 뻔합니다.


전반적인 개선이 요구됩니다. 송 교수는 댓글 시스템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됐다는 아쉬움도 드러냈습니다. 여과 없이 불만을 터뜨릴 수 있는 도구로 변질된 데에 대한 지적이죠. 


지금의 익명성은 태초의 익명성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서는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자신의 얼굴, 신변 등이 즉각적으로 노출되지 않는다는 착각은 그대로 존재합니다. 이 착각으로 많은 악플러가 범죄 행위를 일삼고 있는 겁니다.


이들의 세력을 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정의가 바로 서지 않는 한 개선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그들에게 악플을 다는 일탈은 이미 하나의 취미, 더 나아가 자신을 증명하고 인정받는 행위로 인식돼있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라지만 그들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그들 역시 잘못된 시스템이 만들어낸 피해자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들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구원할 계도 체계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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