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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Feb 16. 2021

악플러의 탄생 배경

원초적 목적의 회복을 기대하며

인간이 만든 모든 발명은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를 악용, 오용하려는 움직임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시작하죠. 그리고 이 어긋남은 사회와 그 구성원을 병들게 합니다. 큰 피해를 낳고서야 제자리로 돌아오곤 합니다만 그 과정이 길어지면 손댈 수 없는 수준으로 확장됩니다.


태초의 순기능, 아고라

  

과거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인기를 끌었던 서비스인 '아고라'를 기억하시나요? 아고라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이상향이었습니다.


서비스명이었던 아고라(Agora)는 고대 그리스 광장에서 차용한 명칭입니다. 최초 도시가 형성되면서 그리스인들은 이 광장에 모여 다양한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국가를 운영하고, 마을을 꾸려가기 위해 논의해야 하는 모든 사항을 이곳에서 합의했죠.


사회가 발전하고 그 규모가 커지면서 아고라는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구성원 모두가 이 광장에 모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대표자를 선출해 대신 광장으로 보냈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발전해온 체제의 현주소가 지금입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는 엄연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대표자들이 구성원 모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개인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인터넷이 등장했고, 시공간 제약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토론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이와 함께 등장한 아고라는 큰 각광을 받았습니다.


기원이 그랬던 것처럼 아고라에서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부조리 해결을 기원했습니다. 그렇게 열띤 토론이 펼쳐질 수 있도록 기여한 장치 중 하나는 '익명성'이었습니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현대 사회에도 엄연한 계급이 존재합니다. 직위, 자산, 학력 심지어 외모까지도 발언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익명성은 이런 현실적 제약을 걷어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리지 않고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억눌려있던 소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잣대로 인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은 아고라에서 다양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른 '현실의 목소리'가 아고라를 통해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긍정적인 기능을 기대케 했던 아고라는 2008년 정점을 찍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 당시였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신조어 '아고리언'까지 등장했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고라는 미래에도 조명될 만큼 눈에 띄는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토론이 현실에 반영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요. 현재에도 도처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운영되는 청원대 민원실은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누리꾼의 건강한 지적과 비판은 조금씩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모든 의견이 단시간에 해결될 수는 없지만, 미진했던 부분들은 정부의 정책이나 법 등으로 보완됐습니다. 


SNS 등 대체 산물이 등장하고, 청와대 민원 게시판이 활성화됨에 따라 2019년 아고라는 서비스를 종료하며 여정을 끝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대적 흐름만이 아고라를 역사 속으로 밀어낸 건 아닙니다. 익명성에 기인한 악플러들의 기승 역시 아고라의 순기능을 약화시켰습니다.


토론과 건설적 비판의 장은 악플러들에게 놀이터처럼 비쳤습니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들은 이곳이 제 세상인양 활개를 쳤죠. 누군가, 무언가를 공격하는 곳이라는 인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순기능을 가릴 만큼 그들의 언어가 도배되면서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은 그 자리를 잃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고라뿐 아니라 다양한 문명의 이기(利技)는 그릇된 익명성의 인식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엉망이 되고 있습니다. 

 

최초의 익명성에 비해 현재의 익명성은 단지 얼굴을 비롯한 최소한의 신상정보만을 가리고 있습니다. 워낙 익명성의 위협이 거 새지다 보니 실명제와 같은 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악플러들을 비롯한 병든 커뮤니케이터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추세입니다.


언제든 선을 넘는 범죄자들을 색출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과거처럼 익명성에 기대 우둔한 행동을 하다가는 뼈아픈 결과를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성세대 중에서도 악플러로 활동하는 사람이 꽤나 많습니다. 하지만 현재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오염시키는 이들 중에는 1020 세대도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관심 갖지 않는 이상 30대 이상 성인의 그릇된 행동을 바로잡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교육을 받는 젊은 세대에게만이라도 옳고 그름을 명확히 인지시켜줘야 합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꼭 알려줘야만 합니다. ID 혹은 캐릭터로 대변되는 자신이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온라인 속 자아는 허상이 아닙니다. 2진법으로 구성돼있지만, 사용자와 똑같은 유전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가상세계 속 자아는 현실 속 '나'와 오롯이 동일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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