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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빛날희 Aug 21. 2021

안녕하세요 유치원 교사입니다.

만 4세 유아 24명과 지내며 느끼는 점이 참 많습니다.

직업이 유치원 교사라서 세상의 무서움, 불공평함, 불편함을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세상은 안전하고 재미있고 좋은 곳이라고 어쩌면 이상적인 모습만을 보여줘야만 하는 이상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입버릇처럼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괜찮아 다시 해보자 다시 만들면 되지,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이다. 유아가 만든 블록을 다른 친구가 부섰을 때 그 절망감, 별거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는 가장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 일 것이다. "그깟 블록 무너지면 어때,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싶어도 안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도 쉽지 않아,  일하면서 놀고도 싶어, 쉬운 일만 하면서 살고 싶어, 누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아, 혼자 해야 돼, 모두에게 너그럽게 이해를 바란다는 건 있을 수 없어, 그런데 그런 게 다시 만들면, 다시 노력하면 될 것 같니? 아니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아! 그깟 블록 무너진 게 뭐 어떠니? 아무런 책임질 것도,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도 않지, 그냥 네가 다시 만들면 되는 일이야 울지 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괜찮아? 선생님이 다시 만드는 거 도와줄까?"로 그 순간의 절망을 일시적으로 무마시킬 뿐이다.


예측 불허한 복잡 미묘한 교실에서 24명의 다른 세상이 만나 부딪히면서 나오는 파도의 너울이 크다.

아직 자기 중심성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 어리석은 작은 생명들이 재잘재잘 자기 이야기만 하며 아웅다웅 혼합되고 있는 파도 속에서 유치원 교사는 방향을 잘 잡고 잘 헤엄쳐 나가야 한다. 파도가 사람 말을 듣지 못하듯이 유아들도 교사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유치원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그래서 끈기인 것 같다.


뒷목이 당기고 머릿속이 텅비고 귓속이 멍해지는 신비한 경험을 24명의 6살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빈번하게 겪을 수 있지만  여기가 어디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를 느낄 때쯤 순수함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어깨를 토닥여 준다. 다행히 유아들은 순수하다. 너무 순수해서 나랑 결혼하겠다는 여자, 남자 친구들이 많다. 내가 엄마가 있다는 것에 놀라는 귀여운 녀석들이다. 


감성과 이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누군가는 감성에 에너지를 쏟는다.

둘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나는 감성에 가까운 사람이다. 유아들에게 따뜻한 세상, 포근한 마음, 사랑받는 안전한 세상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등원하는 유아들에게 다시 한번 힘차게 인사하며 맞이해준다. 사랑하는 우리 반 친구들아 오늘 하루도 다치지 말고 재미있게 보내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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