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들마다 보이는 관상
영화 관상의 명대사인 "내가 왕이 될 상인가?"가 한동안 유행어처럼 퍼질 때쯤 정말 타고난 성격이 얼굴에서 나타날까에 관심이 생겨 관상과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관상이란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분위기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눈코입 눈썹 어디 어디 하나하나 한자어로 설명되어 있는 괴상한 책을 읽고 있잖아 적지 않게 머리가 아파와 금방 덮어버렸다. 뭐 어찌 되건 사람들의 타고난 성격, 성향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작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3월 처음 유아를 맞이하면서 나도 모르게 유아들의 관상을 보며 아 말을 잘 들어주겠구나와 조금은 에너지를 쓰겠다로 나름대로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지내와 본 유아들의 성향과 성격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얼추 맞다는 것에 또 놀랐다.
눈두덩이가 두툼하고 눈이 째져 있는 유아들은 확고한 자기주장과 함께 고집을 갖고 있고 있으며 쌍꺼풀이 짙게 있거나 눈이 큰 유아의 경우 똑 부러짐을 가지고 있으며 눈꼬리가 쳐진 유아의 경우 부드러운 심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재는 왜 저럴까?'라고 찾을 수 없는 정답을 찾고자 노력하면 허무함만이 남는다. 그럴 땐 유아를 착하다. 못됐다로 구분하기 보다는 저 유아가 가지고 있는 타고남이라고 바꿔서 생각한다.
착하다. 못됐다로 가치를 판단하기보다는 능력치로 바라봐주는 것이 내가 그이를 위해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이렇게 관상이라는 관점으로 유아의 능력치를 바라본다면 유아가 가지고 있는 성향은 타고난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이해되지 않는 유아를 이해해보려고 쓰는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기에 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축한 에너지를 유아에게 주는 애정에 쏟아부으면 된다.
깊은 애정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탄탄하다.
깊은 애정은 깊은 신뢰를 만들고, 탄탄한 내구성으로 강한 삐걱거림도 견디는 힘을 만들어준다.
24명이라는 유아와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유아중심과 놀이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유아의 자유로움을 강조한다지만 안전과 일정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와의 호흡이 잘되려면 유아들은 교사에게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에너지를 더 써야 하는 유아들과 1년이라는 시간을 편안하게 지나가기 위해서는 더욱이 필요한 노력이다.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게 되는 유아들이 있다. 정리 시간에 슬그머니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간다거나,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 뒤돌아 이야기 듣고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건다거나, 친구가 놀고 있는 장난감을 그냥 뺏는 유아, 친구가 화장실에 가서 대변을 본다고 하면 가서 노래 부르면서 놀리는 유아 등등 가지각색으로 도움이 필요한 유아들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이유'를 계속해서 설명하고 또 설명하다 보면 처음에는 교사 마음속이 피멍이 들지 언정 나중엔 유아와 교사 사이에 애정이 생겨나 있다. 유아들이 의도를 가지고 남을 해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일 뿐이기에 차차 알아가면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려면 자신부터 이해받아보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기에 유아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유치원 교사로서 가장 잘해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크게 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나는 커다란 눈과 처진 눈매로 활발하고 착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해서 산만한 것 같다는 말도 듣는다. 사람을 옳다 그르다로 가르기보다는 모두가 타고난 관상으로 가진 강점과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다양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 세계를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는 작은 발자국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