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 일본유학 시절 살림살이를 사러 간 곳은 바로 100엔 샵이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도 다이소가 많아져서 익숙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다양한 상품을 100엔이라는 가격에 파는 곳은 우리나라에는 없었기에 굉장히 파격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릇도 100엔,
조리도구도 100엔,
세탁망도 100엔,
이 예쁜 나무 바구니들도
100엔이라니!!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을 좋아해 한때 인테리어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에도 관심을 가졌었던 나는 저렴한 가격에 질도 나빠 보이지 않은 물건들이 즐비한 것을 보고는 마냥 신나 했다. 다 100엔이라니, 일일이 가격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이런 재미가 있구나~ 이런 건 아직 한국에는 없는데~ 이것 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네~' 하면서. 어느 외국이든 우리나라와 다른 무언가를 만나면 생소하면서도 신기해 잠자고 있던 도파민이 샘솟는 법.
여기 있는 물건은 다 made in Japan이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찬찬히 둘러보는데 의외로 made in Korea가 눈에 띄어 놀랐다. 외국에 나와 고국의 물건을 보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다이소에서 모든 생필품을 산다고 하는데, 유학생이었던 그 시절의 나 역시 거의 모든 살림살이를 그곳에서 장만했다.
일본에는 인테리어 소품샵이 곳곳에 있다. 그래서 쇼핑몰에 가면 꼭 가게들을 둘러봤고, IKEA(그 당시에는 아직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이었다), LOFT(일본의 유명한 대형 생활잡화점), 신주쿠 지하철 역사 내에 있던 500엔 샵(다이소보다 조금 더 예뻤다),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가게들로 유명했던 기치조지, 에비스, 다이칸야마, 지유가오카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게 유학 내내 나의 소소한 취미였다.
인테리어 잡지를 보고 예쁜 공간을 동경하며 집 꾸미기를 좋아했었는데 예쁜 물건들로 나만의 공간이 채워져 가는 것에 뿌듯해하며 행복해했던 유학 시절이었다.
지금은?
지금도 이케아에 가면 즐겁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다. 이미 집안이 꽉 채워져 있기도 하고(관리 또한 만만치 않은 노동이기에 비워내야 할 판) 신기한 게 많이 줄어들기도 했고(20대 때와 40대는 많이 다른 거 맞죠?) 물건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꽤 시니컬한 기조가 나올 때도 있고(미니멀리스트를 지향했던 적도 있지만, 때로는 물건이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요). 뭐 복잡하게 얽힌 삶의 경험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도 같다. 그리고 체력도...
그래도 그때 그 시절에 샀던 물건들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옆에 함께 하는 걸 보며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꼈던 그 말랑말랑했던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ㅎ 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