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닐이 대체 뭐길래
출장 기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주한 마약중독자들은 대부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거나 보행보조기구를 사용했고, 몸을 축 늘어뜨린 채 휘청거리며 걷는 사람도 꽤 많았다. 이른 아침 길을 걷다 보면 상인들이 도로에 호스로 물을 뿌리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었는데 물에 떠내려가는 것들 중에는 주사기도 종종 보였다.
사람들을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만든 것은 바로 펜타닐이다. 펜타닐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근육 강직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곳곳에서는 대마 냄새가 나고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표적인 마약은 대마나 코카인과 같은 전통적인 마약이 아닌, 합성마약 펜타닐이다.
샌프란시스코 주정부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약물남용으로 매년 600~700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보고 있다. 이 중 펜타닐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다. 샌프란시스코 주정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약물남용으로 사망한 사람은 총 343명이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수준이다. 5월 한 달 동안 발생한 사망자는 74명으로 202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주정부는 올해 사망자수는 작년을 훨씬 능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펜타닐, 대체 뭐길래
펜타닐은 통증 완화 효과가 뛰어나 처음에는 진통제로 유통됐었다. 우리에게는 코로나19 백신으로 잘 알려진 얀센에서 만든 약물로, 극심한 고통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어 암환자나 수술 등에 주로 사용됐다. 펜타닐의 등장으로 처음에는 장시간의 수술이 가능해지는 등 의학적인 발전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펜타닐이 '죽음의 마약'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특유의 중독성과 쉬운 생산 방식에 있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환각 작용이 최대 50배 정도 강력하면서도 분자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손쉽게 유사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200분의 1 정도 용량으로도 마약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한 줌의 가루만 가지고도 몇천 명분의 펜타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셈이다.
펜타닐을 활용한 합성마약의 금단현상은 다른 약물들보다 강력해, 단순히 약물을 갈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온몸을 기름에 튀기는 것과 같은 고통이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호기심에라도 마약에 손을 대게 된다면 그다음에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약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특히 위험한 것은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마약에 순수 펜타닐이 어느 정도로 들어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마약중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펜타닐 남용으로 사망할 수 있다.
미 정부는 중국을 주목한다
"펜타닐은 중국 정부의 묵인 하에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7월 펜타닐 생산에 중국이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미국 정부는 꾸준히 펜타닐 유통에 중국이 연관돼 있다고 주장해 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펜타닐 생산 원료의 미국 유입을 막는 조건으로 일부 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논의했을 정도다.
미 정부는 펜타닐의 주요 원료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2019년 모든 펜타닐 유사체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지만, 전구체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펜타닐은 손쉽게 유사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만큼 재료만 있다면 마약을 합성해 제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국에서 생산된 전구체가 전 세계로 판매되고, 멕시코 등을 통해 미국으로 넘어온다는 게 미국 정부의 시각이다.
물론 중국은 원료 공급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왕량 중국 외교부 중남미국 부국장은 지난달 "미국 펜타닐 사태의 원인은 미국 자신이며 스스로 반성하고 국내에서의 마약 수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비난하기보다는 무분별한 펜타닐 처방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