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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9. 2023

바닥에 떨어진 1달러,
함부로 주워선 안 되는 이유

어떤 약이 묻어있을지 모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바다를 보러 갔다. 하루는 산책하다 너무 힘들어 아무 데나 앉으려 했는데, 근처에 다 쓴 주사기들이 나뒹구는 게 보였다.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만약 미국에서 다 쓴 주사기들을 보게 된다면 주워서 대신 버릴 생각 말고 그냥 피하는 게 좋다. 마약 중독자들은 주사기를 돌려 쓰기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고, 어떤 약이 묻어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지 주사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웠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에 감염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작년에는 테네시 벨뷰에서 한 여성이 1달러짜리 지폐를 주웠다가 급성 마약중독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가족과 함께 텍사스로 가던 도중 맥도널드에 들어가 음식을 먹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줍자 곧바로 온몸이 마비됐고, 병원에 실려갔다. 다행히 치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했으나 병원에서는 급성 마약 중독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다른 지역의 주유소에서도 마약 성분의 흰색 가루가 묻어있는 1달러짜리 지폐가 연이어 발견되기도 했다. 지폐는 공통적으로 여러 번 접힌 상태였는데, 검사 결과 대부분 메스암페타민과 펜타닐이 묻어 있었다.



치사량 고작 2mg인 펜타닐


마약상들은 순수하게 한 종류의 마약만 판매하지는 않는다. 헤로인, 코카인, 메스암페타민, 펜타닐 등 어떤 종류의 마약이 어떤 비율로 섞여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펜타닐과 코카인은 모두 흰색 가루라 섞을 경우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 주정부는 펜타닐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유통되는 모든 종류의 약에 어느 정도의 펜타닐이 섞여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펜타닐의 치사량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소량이라는 점이다. 펜타닐의 치사량은 2mg으로, 연필로 찍어 끝에 묻어나는 정도다. 펜타닐이 과량으로 들어가게 되면 호흡 중추가 마비돼 숨을 못 쉬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마약 단속에 나섰던 경찰이 바람에 날린 펜타닐에 노출돼 그대로 기절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바닥에 약이 묻은 지폐가 떨어져 있을까. 오하이오 마약 정보 센터는 마약 중독자들이 주로 달러를 활용해 마약을 흡입하므로, 민간인들은 과하게 겁먹을 필요하 없다고 말한다. 민간인이 마약이나 기타 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달러를 활용해 마약을 거래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하이오 마약 정보 센터는 "지폐를 활용한 마약 노출이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의학독성학회는 접힌 지폐 안에 들어 있는 마약을 접촉하더라도, 어떻게든 흡입하거나 섭취하지 않는 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다만, 실수로 공기 중으로 날아간 펜타닐을 흡입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떨어진 지폐를 발견하면 조심해야 한다. 물론 가장 안전한 방법은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 것이다. 


한편, 주사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보니 필라델피아에서는 정부가 직접 마약 중독자들에게 깨끗한 주사기를 나눠주기도 했다. 오염된 주사기로 인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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