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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2. 2023

100만원어치 훔쳐도
잡혀가지 않는 도시

'안전한 학교 법안'의 아이러니

최근 샌프란시스코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노숙자와 마약, 범죄율 증가는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치안을 악화시킨 원인은 많지만 특이하게도 그중 하나로 법안이 꼽힌다. 바로 2014년 11월 캘리포니아 주민투표에서 통과된 '주민발의47호'다. 


주민발의 법안은 주민들이 직접 법안을 내고 일정 규모 서명을 받아 투표에 부쳐 통과시키는 법안이다. 법안이 발의될 당시 주민들은 '안전한 동네 학교 법안'(The Safe Neighborhoods and School Act)이라는 이름으로 이 법안을 홍보했고, 민주당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찬성 59.61%로 통과시켰다. 다만 통과 당시에도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뜨거웠다.



주민발의47호, 왜 문제가 됐나


이 법안은 절도와 마약 소지 및 투약의 처벌 수위를 크게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발의될 당시 캘리포니아주 교도소 시설은 포화 상태였다. 이에 주민들은 절도와 마약 범죄의 처벌 수위를 낮춰 교도소 포화 문제를 해결하고, 교도소에 투입되는 예산을 줄여 교육 재정에 투입하자고 주장했다. 경범죄로 인해 교도소에 가는 일을 방지하고 이들에게 교화와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법안이 통과되며 경범죄의 기준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매장절도 범죄 기준 400달러(약 54만원)까지가 경범죄의 기준이었다. 주민발의47호가 통과되며 경범죄 기준은 950달러(약 128만원)까지 높아졌다. 물가 인상을 감안해 피해액 기준을 두 배 가량 높인 것이다. 법 통과에 따라 연간 1억5000만 달러(약 2029억원)에서 2억5000만 달러(약 3382억원) 정도의 예산이 절감됐으나, 처벌이 약해지며 상점들의 피해는 커졌다. 


마약 소지 및 투약에 대한 처벌 수위도 큰 폭으로 낮아졌다. 기존에는 마약 소지 및 투약이 중범죄였다. 경범죄로 낮아지며 처벌 수위도 최대 1년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1000달러(약 135만원) 이하의 벌금을 납부하는 정도가 됐다. 처벌이 가벼워지니 마약에 가볍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마약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약 투약자가 많아지니 처벌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지난여름이 대표적인 예다.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경찰을 동원해 대표적인 마약 거리인 텐더로앵 근처를 단속했다. 이 과정에서 마약상 390명과 마약을 투약한 노숙자 58명을 체포했으나, 대부분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12시간 안에 풀려났다. 나머지 마약 투약자들도 병원으로 보내졌을 뿐이다. 마약상들의 처벌 수위도 벌금 부과에 그쳤다. 풀려난 이들이 다시 무엇을 할지, 뻔한 셈이다. 


사실 주민발의47호로 인한 문제는 샌프란시스코만 겪고 있는 건 아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등 근처 도시들도 절도, 마약, 차량 도난 등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내부에서는 주민발의47호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더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경찰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더 안전한 샌프란시스코' 주민투표안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투표안이 통과될 경우 경찰은 용의자를 추격하거나 감시하는 데 더 많은 권한을 갖게 되며, 서류 작업 요건도 줄어든다. 경찰이 최신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브리드 시장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범죄를 막는 것은 몇 가지 큰 변화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며 "시민들을 직접 찾아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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