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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29. 2024

미디어 속 마약의 위험성

한국은 과연 마약 청정국일까

기자로 일하던 시절 기업 대표를 취재하기 위해 법원에 간 적이 있다. 법정에 조금 빨리 들어가 다른 재판들을 보고 있었는데 많아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모습의 누군가가 구속 상태로 법정에 섰다. 저렇게 어린 친구가 대체 왜 구속됐을까 궁금하던 찰나 "마약 유통"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앳된 모습만큼 정말로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마약사범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재판을 취재하며 많은 마약사범을 마주했지만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적은 없다. SNS를 통해 10대와 20대 사이에서 마약이 퍼지고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사실 얘기만 들었을 땐 심각성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어린 누군가가 마약을 유통하다 걸려 구속된 걸 보니 심각성이 와닿았다. 


요새는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 관련한 내용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마약 중독자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서영석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마약 중독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22년 치료를 받은 마약 중독자 수는 총 721명에 달했다. 마약 중독자수는 20대에서 특히 높은 증가율을 보였는데, 2022년에는 2018년 대비 무려 170% 증가해 162명에 달했다. 


그렇다면 치료를 받지 않은 마약 중독자 숫자는 얼마나 늘었을까. 명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마약으로 인해 처벌받은 마약사범 숫자는 현재 약 2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최대 30배에 달하는 암수범죄율을 더하면 숫자는 큰 폭으로 증가한다. 경찰에서도 더 이상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고 말한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마약 중독자가 20명 정도면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36명 정도로 추정된다. 



사회문제가 된 마약


우리나라에서도 마약은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다. SNS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인터넷 접근성이 높은 10대와 20대는 언제든 마약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이다. 게다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연예인 마약 범죄는 연예인을 선망하는 어린 친구들로 하여금 마약에 대한 호기심이나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마약이 '힙'하게 여겨지다 보면 1020세대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창구로 마약을 활용하게 되거나 마약 자체가 하위문화로 여겨지게 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한 해결 방법은 없겠지만 전문가들은 법적인 관점에서 공급을 차단하고 수요를 억제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공급을 차단하고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균형을 이뤄 재범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마약 투약이 치료나 재활에 대한 국가의 관여 없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현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단순 투약이나 단순 마약 소지는 구속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구속이 안 이뤄지는 게 현실"이라며 "아무런 치료나 재활에 대한 국가의 관여 없이 그대로 집행유예로 나가게 되면 사실상 단약에 대한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몸속에는 중독 현상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활 인프라를 대폭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마약사범을 막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 속 가볍게 다뤄지는 마약


어쩌면 미디어가 마약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건 아닐까.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B씨는 마약을 쉽고 재밌게 묘사하는 미디어가 사람들로 하여금 마약을 쉽게 생각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한때 마약에 중독됐던 B씨는 오랜 시간 재활을 거쳐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마약중독자를 위한 봉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시트콤이나 영화를 보면 파티를 할 때 대마초를 피우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려지곤 한다. 미디어에서는 마약 부작용이나 금단현상에 대해 다루지 않고 그냥 파티를 더 재밌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런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각인돼 대마초와 같은 마약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미국 드라마 HIMYM에서는 대마초 피우는 것을 샌드위치 먹는 것에 비유했다.


B씨는 소프트 드러그로 마약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하드 드러그로 이동하기도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수위가 높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약에 중독돼 버린다는 설명이다. B씨는 "마치 봄방학에는 마이애미에 가야 하는 것처럼 파티를 하면 소프트 드러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디어에서 약물을 소재로 다룰 때 훨씬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지난해 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미디어가 마약 문제를 무분별하게 다루고 흥미 위주로 풀어내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디어 비평 등을 통해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사회 분위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미디어가 순기능을 하도록 이끄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마약사건으로 파동을 일으킨 연예인들이 빠르게 복귀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방송법과 방송심의규정에 마약사범의 출연정지와 관련해 강제성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자체 심의를 통해 출연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10대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우상화해 바라보는 만큼, 연예인들의 마약에 관대한 모습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마약사범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큰 만큼 이들의 출연 여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일반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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