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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29. 2024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엇을 보았나

정리하는 글: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나름 즐거웠던 샌프란시스코 출장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을 때, 지금 당장 지갑을 도난당할 것만 같아 굉장히 긴장했다. 출국하기 전부터 치안이 안 좋다며 걱정 어린 시선을 많이 받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르며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위험하긴 위험하다. 하지만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샌프란시스코는 반전운동과 히피 문화가 크게 자라난 동네라고 한다. 미국 중에서도 분위기가 자유롭고 진보적인 편이라고 들었는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무지개색 깃발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어느 식당을 가든 비건 메뉴를 하나 이상 찾을 수 있었다. 퇴역군인을 응원하는 가게도 꽤 많았는데 이 또한 좋게 보였다. 해외 여러 국가를 여행했으나 인종차별을 이렇게까지 느끼지 못한 곳도 샌프란시스코가 처음이다. 


건물 근처에 놓인 폴리스라인


그럼에도 출장 기간 내내 긴장하고 있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단 짐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에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왔는데 경찰이 업무를 보던 건물 근처에 노란 폴리스라인을 치고 서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다른 지역의 살인자가 샌프란시스코를 통과해 도주하려다 체포됐다고 했다. 총격 위험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아찔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를 볼 수 있었다. 마약 중독으로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거나 보조 기구를 짚고 돌아다니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스타벅스는 손님이 앉을 수 없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한편에 쌓아 올린 모습이었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4월, 노숙자가 직원과 손님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좌석 수를 줄이고 화장실 사용을 금지했다. 홀푸드, 노스스트롬, 세이프웨이, 올드네이비 등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철수했다. 실제로 아침 일찍 좌석이 있는 카페에 가면 자리를 점령한 노숙자를 볼 수 있었다. 


노숙자들이 텐트를 치고 사는 거리


왜 이렇게 됐을까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를 만든 건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주민발의47호, 부동산 정책의 실패, 코로나19, 어디서부터 유통됐는지 모를 펜타닐 등을 꼽는다. 무엇 하나가 잘못됐다기보다는 각각의 요소가 정교하게 맞물려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2014년 캘리포니아 주민투표에서 통과된 주민발의47호는 절도와 마약 소지 및 투약의 처벌 수위를 크게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절도와 마약 범죄의 처벌 수위를 낮춰 교도소 포화 문제를 해결하고, 교도소에 투입되는 예산을 줄여 교육 재정에 투입하자는 취지로 발의됐다. 


법안이 통과되며 경범죄의 기준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매장절도 범죄 기준 400달러(약 54만원)까지가 경범죄의 기준이었다. 주민발의47호가 통과되며 경범죄 기준은 950달러(약 128만원)까지 높아졌다. 마약 소지 및 투약에 대한 처벌 수위도 큰 폭으로 낮아졌다. 기존에는 마약 소지 및 투약이 중범죄였다. 경범죄로 낮아지며 처벌 수위도 최대 1년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1000달러(약 135만원) 이하의 벌금을 납부하는 정도가 됐다. 


처벌이 가벼워지니 마약에 가볍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마약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약 투약자가 많아지니 처벌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상점들의 피해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빼가지 못하게 자물쇠로 진열대를 잠가놓은 상점을 종종 볼 수 있었다. 950달러 이하로 훔쳐가면 처벌 수위가 낮기 때문에 절도범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샌프란시스코의 집값


집값을 감당할 수 없었던 주민들이 길거리로 몰려났다는 분석도 있다. UCSF 베니오프 노숙자 주거계획 연구팀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22년까지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이 거리에 내몰리기 전 6개월간 월평균 960달러(약 128만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넘비오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방 3개짜리 아파트 월세는 평균 5950달러(약 794만원)였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비교적 좁은 지역으로, 주택 공급에 한계가 있다. 월세와 임대료는 계속해서 올라갔고 그 가운데 코로나19가 터졌다. 재택근무가 가능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와 산 호세, 팔로알토를 떠났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 수많은 직장인이 해고됐다. 그럼에도 월세와 임대료는 이전처럼 낮아지지는 않았다. 도시가 그저 공실로 남은 가운데 노숙자와 마약중독자가 거리에 가득하니, 다른 지역 이사를 택하는 주민들은 더 많아졌다. 


UCSF 베니오프 노숙자 주거계획 연구팀은 노숙자의 20% 정도만 거리로 내몰리기 전 시설에 살았다고 분석한다. 시설에 입소하지 않았던 노숙자 중 60%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살다가 노숙자가 됐다.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은 취업 시장에 단절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50% 정도는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마약은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약에 노출된 노숙자도 적지 않다. 문제는 길거리에서 유통되는 마약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 주정부는 어느 순간 길거리에 유통되는 마약 중 펜타닐이 섞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펜타닐의 치사량은 2mg으로, 연필로 찍어 끝에 묻어나는 정도다. 펜타닐이 과량으로 들어가게 되면 호흡 중추가 마비돼 숨을 못 쉬어 사망에 이른다.


펜타닐은 현재 미국 18~49세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미국인은 약 10만6699명으로, 2015년 5만2404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지난 6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북미에서 발생한 약 9만건의 오피오이드 과다복용 사망 사건 중 대부분이 불법으로 제조된 펜타닐과 관련이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샌프란시스코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마약에 대한 가벼운 접근을 차단하는 등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공급을 차단하고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균형을 이뤄 재범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마약 투약이 치료나 재활에 대한 국가의 관여 없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현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단순 투약이나 단순 마약 소지는 구속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구속이 안 이뤄지는 게 현실"이라며 "아무런 치료나 재활에 대한 국가의 관여 없이 그대로 집행유예로 나가게 되면 사실상 단약에 대한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몸속에는 중독 현상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활 인프라를 대폭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마약사범을 막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마약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마약사범이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돌, 배우, 래퍼 등 청소년이 선망하는 연예인이 마약에 노출될 경우 청소년들은 마약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미디어에 그려지는 마약의 모습이 지나치게 흥미 위주여도 그렇다. 미디어가 청소년에게 마약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지난해 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미디어가 마약 문제를 무분별하게 다루고 흥미 위주로 풀어내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디어 비평 등을 통해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사회 분위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미디어가 순기능을 하도록 이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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