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고 보니 알콜중독이었다
술을 좋아한다. 소주, 맥주, 소맥, 와인, 위스키, 막걸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술을 다 좋아한다. 술을 더 잘 만들어 마시기 위해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땄을 정도다. 엄밀히 말하면 술을 마시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한다. 모두가 취한 상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좋다.
대학시절부터 동아리 회장이든 뭐든 '장'을 맡는 걸 좋아했었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술만큼 가성비 좋은 매개체가 없었다. 그 습관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이어졌다. 동기모임, 후배들과 모임, 같은 나이대 직원들 모임, 취미 모임, 스터디 등 정말 많은 자리를 만들었고 참여했다. 끝은 간단한 맥주 한 잔부터 내일 없이 노는 술자리까지 다양하게 이어졌다.
모임이 많은 나, 알콜중독일까
사실 대학시절부터 술자리는 많았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건 2021년 말부터다. 30대 초반,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같이 살던 사람과 헤어졌다. 이별 후 부동산 문제로 크게 갈등을 겪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다. 이후 분노와 슬픔이 찾아왔고, 그다음에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정말 물 밀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만나야 할 사람도, 참여해야 할 술자리도 너무나 많았다.
숙취가 없는 편이기 때문에 만취할 때까지 마시고도 다음날 아침 멀쩡하게 출근할 수 있다. 당시 같이 살던 A의 주량은 소주 반 병 정도. A는 술 마시는 걸 힘들어했고 퇴근 후 집에서 운동하는 걸 훨씬 선호했다. A는 나도 운동을 함께 하기를 바랐었는데 그 때문에 자연스레 술 마실 일이 없었다. 주말에 와인 한 잔 마시는 게 전부였다.
약 1년간의 절주 기간을 지나 2021년 여름 A와 헤어졌다. 회사에 다시 혼자 살게 됐음을 밝혔다. 동기들은 내가 다시 술자리에 합류할 수 있게 돼 진심으로 기쁘다고 했다. 나를 잡아주는 사람이 사라지자 억제기가 없어진 것처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오히려 해방감 때문에 이전보다 더 마시기도 했다.
회사 동기들과 주중이든 주말이든 맛집 투어를 다니는 데 열을 올렸다. 소주, 맥주, 와인, 위스키, 막걸리, 전통주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술이란 술은 다 마셨다. 동기들과 술 마시지 않는 날에는 친구들을 불러 모임을 가졌다. 축하할 일도 파티를 열 일도 너무나 많았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술집들이 많다니, 마실 술이 많다니. 즐거움에 취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직은 옳은 선택이었나
그 가운데 좋은 기회가 생겨 이직을 했다. 새로 옮긴 회사는 외부 업체와의 술자리가 많은 곳이다. 면접에서부터 면접관이 "주량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술 마시는 건 내게 큰 부담이 아니었고, 외부 업체와의 술자리든 내부 회식이든 사회생활을 하며 단 한 번도 부담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게 그 회사는 큰 기회였기에 술자리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이직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