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중독, 어쩌면 산재가 아닐까
기자의 거의 유일한 장점은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 써야 할 발제기사를 마감하고 내일 쓸 기사 취재만 완료해 놓으면 어디에서 뭘 하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루는 오전에 큰 행사가 있었고 빠르게 기사를 마감했다. 같은 출입처에서 취재를 하는 친한 동기 기자가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난 오늘 마감 끝났는데 낮술 할 사람?
이런 반가운 소식을 마다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카톡을 보자마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빠르게 마감을 마친 뒤 쾌재를 외치며 근처에 열려있는 술집을 찾고 또 찾았다. "모니터링도 해야 하니까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마시는 거야." 인당 소주 1병 이상 마시지 않기로 약속하고 술집에 들어갔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소주가 한 병, 두 병 늘어나더니 결국에는 또다시 셀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쌓이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그날 챙겨야 할 큰 이슈가 없었다는 점이다. 틈틈이 스마트폰을 통해 체크했으나 별 일이 없었다. 회사 몰래 술 마시고 놀기에 너무나도 적절한 날이었다.
낮에 시작된 술자리는 2차로, 3차로,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노래방에서 체력을 소진하고 나면 다시 술집으로 향해 술을 찾았다. 결국 오후 1시에 시작된 술자리가 밤 11시에 끝나고 말았다. 약 10시간 동안 술을 마신 셈이다. 친한 기자들은 모두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우리는 왜 이렇게 살까"를 외치며 헤어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까
문득 7~10년 전쯤, 신입사원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가 모두 처음부터 이렇게 술을 마셨던 건 아니다. 오히려 20대 초중반 신입사원일 때에는 술자리를 피하기에 급급했다. 과하게 술 마시는 저녁미팅은 사업자와 함께 해야 했기에 기자들끼리 마시는 술자리는 맥주 한 잔 정도가 적당했다. 누군가 소주라도 시키려 하면 "주량이 약해서",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라는 변명이 따라붙었다. 낮술은 상상도 못 했다.
우리는 정말 왜 이렇게 살까. 매일 술을 마시면서도 왜 술 안 마시는 그 순간을 참기 힘들어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모두가 술에 중독됐다는 것이다. 매일 저녁 술 마시는 패턴이 고착화되다 보니 술약속 없는 날을 참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일단 술이 들어가면 술이 술을 부르고, 그다음 날 해장을 위해 밥을 먹을 때에도 반주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술자리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매일같이 술을 찾는 건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같은 업계에서 뛰고 있는 또래 친구들 모두가 비슷한 문제를 호소했다. 만나면 커피를 마시자던 친구들은 이제 소주를 찾는다. 술자리에서 소주 각 2병씩 마시고 "적당히 잘 마셨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마셨는지, 마음이 힘들어졌다.
우리는 언제쯤 술의 굴레를 끊을 수 있을까. 술을 마셔야만 취재원과 친해질 수 있고, 취재가 가능한 이 업계의 문화는 계속해서 기자들을 알콜중독으로 몰아넣는다. 술을 잘 마시는 기자가 훌륭한 기자고 늦게까지 남아 놀 수 있는 기자가 좋은 기자라는 인식이 계속해서 젊은 기자들을 힘들게 한다. 이런 업계 문화는 대체 언제쯤 끊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알콜중독은 업계가 만들어낸 산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