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tvN 드라마 <작은아씨들>에는 알콜중독에 걸린 인경이 회사에서 정직 처분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기자인 인경은 술 마시고 기사를 쓰는 등 술 취한 상태로 근무했고 그 사유로 징계를 받는다. 만약 인경이 드라마가 아닌 실제 우리 사회에서 근무하는 기자였다면 과연 정직 처분을 받았을까.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다 기자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놀란 점은 바로 술자리 문화였다. 기자들은 술을 정말 많이 마신다. 거래처 미팅과도 같은 취재원과의 만남이 매일 있고, 그중 술자리 비중도 적지 않다. 근무 중 낮술을 마신다든지 매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등 다른 직업군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기자 세계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물론 기자도 직장인이기 때문에 회사마다, 부서마다, 사람마다 술자리 빈도나 강도는 모두 다르다. 이직 후 배치된 출입처는 술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업계였다. 어느 정도는 예상도 각오도 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열심히 일하고 싶었던 건데
취재원을 소개받기 위해 부장과 함께 나간 첫 술자리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술을 마셨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모두가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도 3차, 4차를 외쳤다. 부장과의 첫 술자리였기 때문에 취한 상태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부장은 내게 "주량도 정신력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술 잘 마시는 이미지가 한 번 굳어지니 그 이후에는 술자리만 생겼다. 어디를 가도, 어떤 취재원을 만나도 모두가 "기자님이 술을 그렇게 잘 드신다는 소문이 있던데"라고 말했다. "술 잘 마신다더라"는 말이 마치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웃어도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랑도 언제 술 한 잔 마셔주세요"라고 말하는 취재원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부장은 술자리에 나가 내가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시는지 보여주고 싶어 했다. 숙취가 없는 체질 탓에 새벽까지 놀고도 아침에 일어나 보도자료를 처리하고 있으면 모두가 놀라워했다. 부장은 내가 술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 생각하자 적극적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취재원들을 소개해주고 싶어 했다. 술자리가 계속해서 생겨났다.
꽤 오랫동안 일주일에 5번씩 술약속을 챙겼다. 술자리 하나가 취소되면 다른 약속이 금세 자리를 채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의지로 만드는 약속보다도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약속이 더 많았다. 단순히 친한 취재원들 혹은 기자들과 즐겁게 놀기 위해 나가는 약속도 많아졌다. 1주일에 2~3번 정도로 약속을 조절하려 해도 몇 달 뒤로 쭉쭉 밀리는 약속들을 바라보면,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술자리를 가진다고 해서 무조건 취재가 다 잘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점심에 만나 밥 한 끼 먹는 것보다 저녁에 술 마시는 게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을 훨씬 많이 준다고는 늘 생각한다. 점심에 만나면 1시간밖에 못 만나는 사람들을 저녁에 만나면 최소 3~4시간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원과 술을 마시고, 기자들과 술을 마시고, 부장이 잡아놓은 술자리를 챙기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캘린더에는 술약속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