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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3. 2023

잦은 회식, 결국 술자리에 중독됐다

일 때문에 소진된 나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던 알콜중독자들의 모습은 나와 거리가 꽤 있었다. 방 한 구석에 술병을 가득 쌓아두고 하루종일 술만 마시는 사람, 손을 벌벌 떨며 소주를 찾는 사람, 소주를 마시기 위해 거리낌 없이 외상을 하는 사람 등을 떠올렸다. 술 때문에 일상이 망가지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야 알콜중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회사를 잘 다니고 있었고, 술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일도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이었다고 자부한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도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다녔고, 점심에는 골프 레슨을 받았으며 주말에는 영어와 제2외국어 학원도 다녔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게는 괜찮은 핑계가 두 개나 있었다. 1) 일 때문에 마시는 술이다 2) 업무상 만나는 자리가 아니면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사실 술을 끊기 직전에는 일에 매몰돼 취미 동호회를 할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 일주일에 다섯 번씩 잡힌 술자리는 모두 업무와 관련된 자리였다. 주말에 술 마시는 경우가 생긴다면, 80%는 골프 때문이었다. 



무서운 건 습관


무서운 건 습관이다. 일 때문에 마시는 술도 술은 술이었다. 초반에는 술자리가 끝나면 집에 들어가 쉬기 바빴는데 이 패턴으로 약 1년을 지내니, 어느 순간부터 술자리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술을 마셔도 잘 취하지 않았고 맨 정신에 집에 들어가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새벽까지 술 마시는 패턴이 굳어지니 술자리가 일찍 끝나면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술을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었다. 22시에서 23시 사이에 술자리가 끝나면, 그 이후 함께 술을 마실 다른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주위에 비슷한 패턴으로 살고 있는 동료들이 많았다. 새벽에 부르면 바로 나올 친구들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술 마시는 습관이 한 번 굳어지니 고치기 쉽지 않았다. 새벽 3~4시까지 술을 마시고, 몇 시간 쪽잠을 잔 뒤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출근하고, 마감하고, 다시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됐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면 주말에는 집 밖으로 나갈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꾸역꾸역 학원에 다녔지만, 즐거워서가 아닌 의무감이 훨씬 컸다. 


다음 주 발제를 하며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내게 남는 게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허무했다. SNS를 보면 다들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일하고 술 마시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꽤 오랜 기간 일하고 술 마시느라 운동 외 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취미생활을 할 시간도, 업계가 아닌 다른 분야 친구들을 만날 시간적·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연애는 생각도 못했다. 



쉼표가 필요하다


이렇게 일만 하며 살면 내게 남는 게 대체 뭘까. 기사는 휘발된다. 오늘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내일이 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기 일쑤다. 포트폴리오에 올릴 기사 몇 개 쓰기 위해 이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사실 일주일 내내 일만 하고 술을 마실 땐 내가 알콜중독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맨 위에서 언급했듯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던 알콜중독자의 모습과 내 모습에는 차이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휴식이 필요하다고는 느끼고 있었다. 일과 술은 업무 외적인 내 삶을 통째로 망가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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